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P Feb 26. 2023

물 속의 영원


  k&d 수영장에 다닌 지 9개월쯤 되었는데, 이번 달에는 주 2회 끊어두고 2번 갔다. 주 2회인데? 2번이 아니라? 그렇다. 기부 천사였다. 새로 들어온 수업 스케쥴 때문에 재등록은 하지 않게 되었다. 아쉽다. 물 안에서도 밖에서도 멋진 할머니들, 그 사이의 재롱둥이 막내가 되었던 날들, 감사하고 기뻤는데.


  주말마다 자유 수영이라도 가기로 했다. 새로 생겼다는 대정 중학교 수영장에 갔다. 가면서, 오늘 2000m 수영 해야지, 아니, 1500m으로 하자, 생각했다. 그리고 수영했다. 1600m, 한 번도 쉬지 않고(????). 다음 일정이 있어서 수영장을 나왔지만, 500미터를 지나온 후부터는 이대로 영원히 수영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고장난 장난감 배처럼 앞으로만 향했다. 벽에 부딪히면 고개를 돌려 다시 앞으로 향하는, 동력은 있고 방향은 없는 배. 지루한 일이다. 재미를 잃은 장난감인 셈이다.


  물 속과 반쯤 잠긴 수면 위를 번갈아 보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없었다. 손과 발은 알아서 움직이는 거였다. 수영이 이렇게까지 부드럽고 매끈한 일이라고 느껴보지 못했다. 너무 매끄러운 일은, 역시 재미 없다. 온 몸을 움직이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고 느꼈다. 심장조차 빨리 뛰지 않았다. 물 속에서 발을 네 번 차고, 숨을 들이 쉬면서 세번 찼다. 느리고 빠른 것은 없었다. 어린 시절 배웠던 발레를 떠올렸다. 20년이 지나 물 속에서 발레를 하고 있어요, 선생님, 속으로 말했다. 속으로 혼자 말하고 대답하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없었다.


 수영하기를 멈춘다면 따분함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이상하지도 않은 기분을 어떻게 글로 쓸까. 생각이 옮겨 갔다. 구룩, 타, 과라락, 흡, 수영하는 소리를 묘사해야겠다. 전에는 들리지 않았던 소리가 들렸다. 역시 글로는 소리의 방울 방울을 묘사할 수 없지만.


  이 영원함을 어떻게 글로 쓸까. 영원한 것은 없다고 말하기를 좋아했다. 처음이었을지도 모른다, 영원의 안에 갇혀버린 것만 같은 마음. 소리를 글로 쓸 수 없는 것처럼 영원도 글로 옮길 수 없다. 누구도 하지 못했다. 영원은 존재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물 속에서의 찰나에 나는 지진한 영원을 보았다. 그걸 잡아다 내 글의 연못에 풀어 두고 싶다는 생각만, (훨씬 더 많은 생각을 했지만 물 속에서는 시리를 불러 메모할 수 없었다.)


  1600m 수영을 하고 물 밖에 나와서 숨을 몰아쉬지 않았다. 1.6km 거리의 동네 카페로 산책한 것 같았다. 산책을 하고 나면 양 볼과 눈이 상기된다. 머리 꼭대기에서 온기가 느껴진다. 입고 있던 겉옷을 허리춤에 묶어 두곤 한다. 그렇다면 수영과 산책은 같으면서 다르기도 했다. 반 쯤 수영해 왔을 때부터 조금씩 추워졌다. 내가 가지고 있던 온기를 수영장 물에 다 풀어 낸 것만 같았다. 영혼이 빠져버린 몸이 되어버릴 것 같았다. 이미 내가 한계를 넘어선 것은 아닐까? 머리가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거라면? 아픔을 느낄 수 없는 사람의 갑작스런 죽음처럼, 어느 순간 물 속에 잠겨 버릴 지도 몰랐다.


  이 모든 것을 글로 기록하고 싶었다. 수영하던 나는 왠지 내가 아닌 것만 같아서. 방문자의 기록.

작가의 이전글 집과 초콜렛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