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겸(Gyeom), 대체로 우직한 사나이라지만 연말의 분위기 속에서 마음이 붕 뜨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듯하다. 크리스마스지만 마땅한 약속 없이 스터디 카페에 앉아 크립토 차트와 블록체인 리서치를 들여다보던 와중, 흐트러진 심신을 정리하기 위해 2023년 한 해를 돌이켜보는 글을 적어보고자 한다.
CAREER
1. 졸업
학교 앞, 주 3일 먹던 꿀닭을 못먹는 건 참으로 통탄할 일이다
아아, 올해엔 2018년부터 재학 중이던 학부과정을 마쳤다. 본인은 예술 대학에 재학했는데, 2021년 군대를 전역하고 나서부터는 단 한 번도 졸업을 고대하지 않은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휴학을 포함한 6년 남짓의 학교 생활은 나에게 꽤나 많은 배움을 주었다. 재수까지 하며 힘들게 들어간 학교 입학은 나의 인생에서 처음으로 괜찮은 성공의 경험을 느끼게 해주었고, 그 경험은 때때로 힘에 부치는 시기마다 상기하며 의지를 얻는 원동력으로 역할해왔다.
예술 대학에서 예술학과 예술경영을 전공하면서 예술에 대해 얼마큼 알았냐 하면, 그건 잘 모르겠다. 1학년 때를 제외하고는 블록체인과 크립토, 창업에만 매진해왔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이 학교는 나에게 자유롭게 생각하는 방법을 알려준 듯하다. 사람들의 머리가 빨주노초파랑색이거나 가지각색의 생각과 창의력, 상상력이 오가던 곳은 다소 편협하게 세상을 바라봐오던 나에게 다양한 관점을 여는 기회를 주었다. 학교 생활을 돌이켜보면 불편한 마음으로 수업 시간에 붙잡혀 몰래 하던 회사 일과 별 관심이 없는 예술에 대해 리포트를 쓰는 괴로운 기억이 대부분이지만, 나에게 좋은 영향을 준 사람들을 만나고 좋은 책들을 접했던 소중한 기억으로 남겨놓고 싶다.
2. 논문
아오, 졸업하려고 논문을 두 편이나 썼다. 본인이 재학한 과는 졸업까지 두 편의 논문을 써야 하는데, 회사 다닌다고 바쁜 척을 좀 하느라 올해 하반기에 두 편을 몰아 쓰는 차력쇼를 감행했다. 2주마다 한 편씩 마쳤으니 그다지 남에게 보여주고 싶진 않은 완성도지만, 블록체인과 예술 분야를 어떻게든 연결지어 완성하여 졸업을 위한 문턱을 넘을 수 있었다.
의자에 앉은 채로 온몸을 비비꼬고 세상 온갖 인상을 다찌뿌리며 썼는데, 이 인간은 하기 싫은 일을 정말 잘 못하는 구제불능 녀석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학교 다닐 적, 한 교수님이 하고 싶은 것을 업으로 하지 말고 잘하는 것을 업으로 하라 하셨는데 거절해야 하겠다. 하고싶고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고 우직히 하여 잘하게 만드는 것이 나에게 백번 천번 낫다. 내가 잘하고자 하는 영역에서는 최고로 잘하는 사람이고 싶어 나름의 안간힘을 쓰며 살아가는 편이다. 앞으로도 손 닿는 데까지는 그냥 이렇게 살리다.
3. 루디움
루디움은 내가 22년부터 1년 6개월 동안 창업멤버로 참여하여 만든 스타트업이다. 블록체인 재단과 기관 및 기업을 대상으로 교육 솔루션을 제공하는 서비스를 만들어왔다. 이 업계에서 대학과 일을 병행하는 경우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지만서도 비교적 이른 시기에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었다고 자신있게 말할 만하다. 아무것도 없는 데서 시작하여 비즈니스를 기획하고 실행하는 과정, 협업 구조를 만들거나 서비스 대상을 유치하는 과정, 팀원들과 논의하고 자금에 쪼달리는 과정 모두 대단히 값진 경험이었다.
결론적으로는 올해 8월쯤, 중도하차라는 결정을 내렸다. 가장 우선으로는 개인적인 역량이 아주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고, 이리저리 치이고 쪼들리는 과정에서 확신이 옅어져 갔다. 좋은 경험을 했다는 자기위로를 제쳐놓고 객관적인 평가를 내리자면 많은 부분에서 미진한 성과를 냈으며 최선의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성장의 모멘텀을 놓쳐버린 것 같다. 물론 남은 팀원들 몇몇은 여전히 열심히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있어 응원을 보내는 바이다.
창업의 난이도는 소름 돋게 높다. 오롯이 나를 포함한 소수 팀원들만의 힘으로 어떠한 문제를 해결하고 지속가능한 비즈니스를 만드는 것은 대단히 값진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적어도 지금의 미약한 역량으로는 역부족이라는 판단을 내렸고 중도하차라는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 개인적인 차원에서 절반은 분명한 실패이고 나머지 반은 성공적인 경험이었다는 결론을 스스로 내리고, 12월 현재는 마지막 학기를 마무리하며 다음 여정을 준비하는 와중이다.
학교와 일을 병행하며 짧지 않은 시간동안 심신미약 상태로 있었던 것 같다. 다른 것보다 수면 시간이 너무 적어 꽤나 지치기도 했으나 그만큼 밀도 높은 시간을 보내온 것이 분명하고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을 주변에 만들었으며 나름의 인사이트와 역량을 구축했다. 아쉬움이 정말 정말 많이 남으면서도 인생의 유의미한 하나의 페이즈를 만들었음에 만족을 느끼기도 한다.
4. 블록체인 학회
1년 반동안 실무를 해오면서 배움에 대한 갈망이 솟구쳤다. 지적 욕구 혹은 지적 허영심 그 사이의 어딘가를 채우면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으로서 진득하게 앉아 블록체인과 크립토 공부를 하고 싶었고, 가을쯤부터는 고려대학교 블록체인 학회인 블록체인 밸리에 참여하며 다양한 리서치를 진행해 왔다.
Yield-Bearing Token, Metamask Snaps, NEAR Protocol-KaiKai, LSD(유동성 스테이킹 프로토콜), 총 4편의 리서치페이퍼를 작성했다. 본래 흥미분야가 디파이나 크립토 마켓에 쏠려있어 인프라 영역이나 블록체인 아키텍처까지는 그다지 열심히 들여다보지 않아 왔는데, 다양한 흥미분야를 가진 사람들이 각자 아는 바를 열심히 공유해준 덕분에 편식쟁이 크립토 보이인 나의 지식을 많이 채울 수 있었다. 블록체인을 관련하지 않더라도 똑똑하고 신중하게 커리어를 만들어나가는 친구들을 통해 많은 조언을 접하면서 리스크로 점철된 나의 커리어에 보다 신중한 접근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LIFE
1. 건강
이상하게 올해는 1월 내내 아팠다. 근데 잘 아팠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작년(2022년) 여름부터 위스키나 와인을 사와서 혼술하는 취미가 생겼는데, 이게 매일매일 일정을 마치고 집에 와서 술을 먹는 고약한 습관으로 이어졌다. 하루도 빠짐없이 위스키를 먹으니까 어느 순간부터 음식을 먹으면 속이 아프고 매쓰껍기 시작했다. 나는 평생 건강 보이로 살아온 터라 누군가 위가 아프거나 속이 안좋다고 하면 걱정이 되면서도 무슨 느낌인지 몰라 난처했는데, 이제 알아버렸다.
심각성을 느끼고 혼술을 줄여가는 참에 1월에 독감에 걸려서 열로 며칠 내내 앓은 다음, 제철 굴을 잘못먹고 노로 바이러스에 걸려 앓다보니 자연스럽게 금주를 달성해버렸다. 그 이후로는 한 달에 한 번이나 있으면 많은 셈인 술자리를 제외하고는 일체 술을 안 먹게 되었다. 하등 신경도 안 쓰고 살아오던 건강이라는 것을 돌이켜보는 기회였고 특히나 심신미약 상태가 잦았던 올해는 더욱이 틈틈이 건강을 신경쓴 듯하다. 알고는 있었지만 본인은 중독에 매우 취약하다. 술이고 담배고 몸에 안좋은 거는 다하는 편이다. 이제 돌도 씹어먹을 나이는 지난 것 같고 운동도 계속 꾸준히하며 건강을 유지해야 하지 않겠나.
2. QWER
내 가앨범을 사게될줄은 꿈에도 알지 못했다. QWER은 크리에이터 김계란 씨가 기획한 타마고 프로덕션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아이돌 밴드이다. 각자 크리에이터 혹은 아이돌로 활동해 온 4인이 모여 밴드를 구성하는 성장스토리를 유튜브 콘텐츠로 제작하였는데, 콘텐츠의 힘은 실로 대단하다. 우연히 접한 콘텐츠를 보고 단숨에 팬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드럼을 전공한 초단의 드럼 실력은 말을 덧붙이기에 입이 아프며 무엇보다 일본의 NMB48 출신인 보컬, 시연의 실력이 상당하다. 올해가 지나기 전에 링크인한 무대 영상을 감상해보길 바라며 QWER과 함께 따뜻한 연말을 보내기를 권해본다.
Crypto
2021년, 루나와 FTX 파산과 함께 시작된 베어마켓은 길게 이어졌고 비로소 불마켓의 조짐이 주춤하며 크립토의 분위기는 낙관적인 듯하다. 앞으로 리서처라는 직무로 커리어를 그려나갈 계획이 있기에 블록체인의 테키한 영역부터 새로 나오는 Defi 프로토콜의 구동원리, 그리고 L2 · Perp Dex · LSD · Game-fi · RWA · Real Yield 등 내러티브마다의 추세를 열심히 관찰하고 있다. 한편으로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불마켓에 대비해 Solana, Cosmos, Eigenlayer, 신생 L2들을 중점적으로 하여 에어드롭 작업을 부단히 하고 있다.
2024년의 크립토 마켓은 개인적으로도 매우 기대가 된다. 다양한 프로토콜의 런칭과 규제 상황 등으로 인해 시장 및 산업이 어떻게 변화하고 그러한 변화가 나에게는 어떠한 실익으로 작용할지에 대해 말이다. 그러한 변화를 기민하게 관찰하기 위해 꽤나 많은 정보들을 흡수하려고 노력하는 편인데, 최근에는 그 과정에서 휘발되는 정보들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텔레그램 채널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매일마다 인상깊게 본 리서치의 요약과 코멘트, 시장 정보 등을 올리곤 한다. 올해가 가기 전에 100명 구독자를 만들고 싶었는데, 홍보 작업을 열심히 하지 않았더니 10월에 시작한 이래로 현재 77명의 구독자로 그치게 되었다. 관심있는 분들은 들어와 주시길 바란다!(압도적 감사) 텔레그램 링크
2023, 토닥토닥
여기까지 긴 글을 읽어준 사람이 있다면 더없는 감사함을 보낸다..!
누군가는 뿌듯하고 의미있는 한 해를 보냈고 또 누구는 때때로의 실패를 경험했을 수도 있다. 살면서는 무수히 많은 고민과 자기불신이 찾아오는 듯하다. 2023년 올 한해도 역시나 심히 의심스럽고 고민과 후회 혹은 뿌듯함이 교차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도 무엇 하나 무용함은 없는 것 아니겠나. 그러니 오늘은 자기 전에, 해가 지나기 전에 "나, 꽤나 잘살았을지도"라고 생각하고 스스로를 다독여주자. 나 자신을 포함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모두가 건강하고 자유로운 삶을 향해 나아가는 2024년을 보내기를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