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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yeom Jun 24. 2021

NFT, 쓰레기 예술도 예술인가?

Superrare, "64 GALLON TOTOER" 검열 이슈

 최근 NFT 플랫폼 SuperRare에서 NFT아트와 관련해 재밌는 이슈가 있었다. 크립토 아티스트 커뮤니티 사이에서 ‘Trash GIF’라는 예술운동(?)이 일어났던 것인데, 사건의 발단은 Robness라는 아티스트가 Superare에 “64 GALLON TOTER”이라는 작품을 올리고 그 작품이 플랫폼에 의해 삭제되면서부터 시작된다.



Robness  <64 GALLON TOTER>




 미국의 ‘HOME DEPOT’ 웹사이트에서 퍼온 쓰레기통 이미지를 글리치 앱으로 살짝 변형을 준 GIF형태의 작품이다. 이러한 Robness의 작품을 superrare 측에서 저작권을 문제 삼아 삭제한 것이다. 또한 SuperRare가 평소에 한 작품의 중복 민팅이 안되고 단일 버전으로만 발행할 수 있는 것과 같이 큐레이팅을 철저히 하는 편이기 때문에, 위처럼 플랫폼의 퀄리티를 낮출 위험이 있는 불성실한 태도의 작품을 삭제한 것이다. 많은 공을 들였다고 해서 좋은 작품이고, 만드는데 5분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하여 구린 작품이 아니긴 하지만 다분히 정량적인 측면에서 플랫폼은 그러한 결단을 내린 듯싶다.  




 여기서 발생하는 논쟁은 이렇다. “Robness”의 작품이 ‘예술’인가?” 그리고 “그건 누가 결정하는가?”미술사에서 수세기에 걸쳐 있어 온 케케묵은 논쟁이 NFT 아트에서 다시 제기된 것이다.

이런 이슈로 인해 크립토 아티스트들은 또 다른 'Trash GIF'를 SuperRare, KnownOrigin 등의 Curated 플랫폼에 올리고, 한동안 트위터와 유튜브 등의 채널에서 Trash Art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었다.




Robness  <64 GALLON TOTER>를 레퍼런스한 'Trash GIF'들



크립토 복셀 Trash 아바타


 







 이러한 현상들이 벌어졌고 NFT 아트에서 저작권, 플랫폼의 중앙 집중화된 운영, 플랫폼에서 아티스트의 자율권, 콜렉터의 과도한 플랫폼 운영 개입 등 중요한 논의의 계기가 된다. 아티스트와 플랫폼 양측의 입장이 첨예하게 갈리는데, 정리하자면 이렇다. 

 


 아티스트 입장은 당연히 이것 또한 예술 작품이며, 플랫폼 측의 일방적인 삭제는 부당하다! 기존의 이미지를 변형시키는 작업은 예술작품이라 할 수 없는가. 그리고 ‘예술’과 ‘비예술’을 어떤 권리로 플랫폼에서 결정하느냐 라는 입장. 

마르켈 뒤샹 <샘> / 앤디 워홀 <캠벨 수프캔>

 이 얘기와 같다. 18세기 프랑스의 파인 아트스쿨도 아니고 21세기에 와서 누가 뒤샹의 <샘>을 보고 예술이 아니라 칭할 수 있을까. 즉 "뒤샹이 욕실 제조업체 Mott Works에서 가져온 변기는 예술이고, Robness가 HOME DEPOT에서 가져와 변형한 이미지는 왜 예술작품이라 할 수 없는가"라는 것이다. 


 그리고 플랫폼의 중앙 집중화된 운영과 콜렉터의 플랫폼 운영 개입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다. Robness는 한  인터뷰에서 문제의 핵심에 대해 이렇게 밝힌다. 콜렉터가 플랫폼의 큐레이션에 과한 영향을 끼치고, 그 운영에 있어 지나치게 많은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정 콜렉터는 본인이 이용하는 플랫폼에 시간과 공을 들이지 않은 듯한 'Trash GIF' 작품이 게시되는 것이 못마땅했을지 모른다. 플랫폼의 질이 떨어짐으로 인해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작품의 가치도 떨어질 수도 있고, 어쩌면 단순히 일부 콜렉터들의 고상한 미적 취향에 부합하지 않았을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에는 물론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다.

 

 현재로써는 콜렉터가 극히 적기 때문에 플랫폼이 단 한두 명의 주요 구매자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면 자금 흐름이 중단되고 있다고 그는 말한다. 플랫폼 측에서 콜렉터의 의사를 의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알겠지만, 그럼에도 플랫폼은 수집가를 경계하기보다 아티스트를 조금 더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을 표한다.



Let the collectors do their thing: let them buy. But don’t let them start curating stuff. Don’t let them start telling you what to do.






  그러나 플랫폼 SuperRare 측도 나름대로의 입장이 있다. SueprRare는 개인 사업체이고, 서비스에 대한 액세스를 허용하고 거부할 모든 법적 권리를 갖고 있다. 무엇보다 잠재적인 저작권 침해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할 권리가 있다.

 

 SueprRare의 CEO인 John Crain은 "플랫폼은 분명히 예술품을 거래할 수 있는 분산화된 P2P 시장을 제공하고 있다. SuperRare가 어떤 이유로 폐쇄되더라도 아트워크 토큰은 Ethereum에서 계속 유지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작가 권한을 주는 큐레이팅 과정을 팀에서 자체적으로 심사하고 있듯이 현재 플랫폼 운영에서 어느 정도의 중앙 집중화가 있음은 인정하지만, 플랫폼이 계속 성장함에 따라 가장 중요한 결정을 커뮤니티에 의해서 운영하도록 하는 것이 목표이며 그것이 가장 대규모로 성장하는 가장 지속 가능한 방법임을 인지하고 있다고 밝힌다. 그럼에도 이제 막 시작한 초창기 시장이며, 디지털 아트 시장이 향후 10년 동안 점점 자리를 잡아나가고 확대될 수 있도록 도모하는 중요한 결정을 임시적으로 담당하고 있다는 것.








 양측의 손을 모두 들어주고 싶을 만큼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예술'에 대한 미학적 논제, 탈중앙화라는 Crypto 내러티브, NFT 플랫폼 경영 등 다양한 문제가 얽혀있는 이슈로 보인다. 

   

 

 탈중앙화의 측면에서 보면 이렇다. 소수의 컬렉터들의 개입이 플랫폼의 큐레이션에 영향을 줘(Robness의 주장이 맞다는 가정하에) 위와 같은 이슈가 일어났듯 현재 NFT 플랫폼의 운영은 한정된 자본가에게 의존적이다. 플랫폼이 기존과 같은 중앙 집중화된 운영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대중 채택을 받아 더 많은 자본과 인구가 유입되어야 한다. 플랫폼 내에서 다수의 유저들의 영향력이 세져야 소수의 '빅머니' 콜렉터들에게 휘둘리지 않고 커뮤니티에게 플랫폼의 운영 의사를 맡길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대중 채택을 받기까지는 소수의 사람들이 신봉하는 크립토 내러티브가 아니라 대중적인 어법으로 플랫폼을 운영할 필요가 있다. 위 사례와 같이 플랫폼 측에서 '저작권'이라는 사법권의 시스템을 자꾸 의식하는 것도 그러한 데 있을 것이다. 기존의 사회 시스템에 반하는 탈중앙화를 표방하기보다는 '아트'의 영역에서 NFT의 다채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게 플랫폼이 먼저 갖춰야 할 스탠스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렇게 하여 NFT 아트의 가능성과 매력을 확인한 다수의 대중들이 유입되어야 탈중앙화를 외치는 골수 크립토 아티스트들의 바람과 같이 시스템의 민주화를 이룩할 수 있으리라.



 한편으로 '저작권'에 방점을 두고 생각해보자! 물성이 있기에 기존의 Physical 아트가 가지는 확장성의 한계가 디지털 아트에는 없다. 물론 그에 따라 광범위하고 무분별하게 확장되어 원작자가 그 확산을 통제할 수 없게 되고, 저작권이 침해되는 큰 부작용도 생긴다. 그럼에도 이제 막 NFT를 통해 시장이 형성되는 디지털 아트에는 저작권에 있어 기존과 다른 문법이 통용될 필요가 있을지 모른다. 이러한 것들을 실험하는 단계에서 플랫폼의 과도한 개입은 오히려 디지털 아트가 가진 바이럴, '밈'화되는 이점을 억제하는 것 아닐까.



 '저작권'의 개념에 대해 재고해보는 건 어떨까. Robness는 인터뷰에서 자신의 작품을 수집 카드인 'Marble Card'로 만들든 뭐를 하든 상관없다고 얘기한다. NFT 아트마켓에 매우 잘 부합하는 영리한 전략이라고 생각하는데, 디지털 아트의 특성상 확산과 재생산이 매우 빠르기 때문에 작품이 바이럴 되기에 용이하다. 그렇게 작품의 이미지가 다수에게 각인되고 소비되다 보면 원본 NFT의 가치가 오를 수밖에 없게 된다. 



 물론 예술작품의 '가치'를 결정짓는 요소는 매우 다양하다. 작품의 크기, 작가의 연륜, 우연성, 작품의 내용(독창성, 심미성), 자본의 원조, 평단의 비평, 역사적 및 문화적 흐름 등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예술의 영역에서는 셀 수 없이 그 기준을 달리한다. 그런데 NFT 아트마켓에서 가치가 결정되는 기준은 꽤나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자본과 유명세이다. 자본주의의 끝단에 있는 예술의 영역에서 작품과 아티스트, 콜렉터, 플랫폼 등 마켓을 이루는 모든 객채들의 기준은 숫자 그리고 명성과 지극히 긴밀한 관계에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렇다면 파인 아트 갤러리나 작가 개인전이 아니라 NFT 아트마켓에 작품을 올리는데 자신의 작품을 '나의 작고 소중한 예술작품'으로 남겨 놓을 필요가 있을까? 그리고 NFT라는 새로운 예술 작품 유통 시스템을 실험해나가는 과정에서 현실에서 통용되던 '저작권'이라는 문법을 그대로 가져올 필요가 있나? 



물론 사람마다 창작의 의도가 다르고 작품 구현 능력이 다르기 때문에 정답은 없는 문제이다. 여차저차 할 필요 없이 작품의 퀄리티만으로 콜렉터들을 설득할 자신이 있다! 그러면 그저 작품의 '아우라'만을 잘 관리하고 앉아서 사람들의 열띤 반응을 기다리면 된다. 반면에 나는 NFT라는 매개체 안에서 여러 실험을 통해 독특한 작품세계를 구축해보고 싶은 생각이라면, 커뮤니티가 굉장히 활성화되어있다는 NFT아트의 특성을 이점으로 삼아 작가 개인이 콜렉터와 직접 계약을 맺을 수도 있다. 여기서 계약이라 하면 가령 작품의 소유자가 작품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되 수익의 일부를 원작자와 나눠가진다는 라이센스를 발행하거나, 원작자가 콜렉터에게 작품의 소유권과 함께 저작권을 완전히 양도하되 소유자가 작품을 상업적으로 사용할 때마다 허락을 맡는다는 등의 계약 말이다. 이밖에도 저작권을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바이럴을 극대화시키는 방법도 있다. 저작권이란 원작자의 지적재산권을 보호하는 최소한의 안전장치일 뿐이지 양자 간의 계약이 우위에 있다. NFT를 기회삼아 저작권과 소유권의 개념을 새로 쓰는 다양하고 재밌는 시도들은 매우 해볼 법하지 않은가?







 재밌는 것 같다. 최근 이중섭, 김환기, 박수근 작품의 NFT 경매에서 저작권 이슈가 일은 것도 그렇고 NFT 아트계에서 저작권에 대한 잡음이 끊이지 않는다. 플랫폼과 아티스트, 아티스트와 콜렉터, 그를 둘러싼 커뮤니티 등지에서는 여러 의견들이 충돌한다. 예술적 이념, 자본, 탈중앙화 이러한 것들이 모여 갈등하고 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가장 많은 사람들을 설득하는 주류 담론은 있을지언정, 모두가 납득하는 완결될 논쟁이란 없다고 본다. 다소 이상적인 결론이지만 결코 완결되지 않고 계속해서 이견들이 충돌하는 미완의 상태가 이미 완결이 아닐까. 그럼으로써 이념 간의 갈등과 협의, 그로부터 나오는 다양성 그 과정 자체를 완결 상태로, 예술의 본질로 봐야 한다는 것이 나의 예술관 중 하나이다.





참조: https://www.theouterrealm.io/blog/a-short-history-of-nft-trash-art

https://nfts.wtf/what-exactly-is-trash-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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