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ADHD 검사를 받았다. 집중력에 대한 고민을 해본 적 없었지만 뜻하지 않았던 기회로 진행했다. 결론적으로 ADHD가 아니었으나 충동성이 높다는 의사의 소견을 들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부턴 충동적 감정을 제어할 수 있는 이성의 방향키를 쥘 수 있었다. 그러나 이 기능이 늘 올바르게 작동하는 건 아니었다. 내면이 섬약하거나 불안이 엄습할 적에는 멋대로 속도를 높였고, 뒤늦은 후회로 마음 벽을 그슬렸다. 그 흔적은 ‘에라 모르겠다’라는 심정으로 저질러 버린 결과였다. 쥐고 있던 키를 놓고, 어떤 곳으로든 가버려도 좋다고 생각한 건 철없는 오만이었다.
대개 휘청이며 멋대로 향한 결론은 이롭지 못했다. 혐오 섞인 자책을 할 것을 알지만 냉장고에서 꺼내 먹은 야식. 혼자인 게 두렵다는 이유로 자존감을 갉아먹는 관계를 기어이 다시 시작하여 지속한 날들. 상처받지 않기 위해 송곳 같은 말로 누군가를 찌른 일. 수많은 결과는 나에게 아픈 교훈을 남겼다.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시작하는 건 결코 용기가 아니야.
난 몸소 실천하여 얻은 괴로운 깨달음을 곱씹었다. 내면이 불안하게 흔들릴수록 후회할 일을 충동적으로 행할 위험이 있다. 마음과 일상을 올바르게 관리하는 기준을 갖되 앞뒤 가리지 않고 발진하는 욕구를 절제할 줄 아는 건 중요하다.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게 속 시원하다고 느낄 수 있지만 그 후련함은 일순간이다.
용기란 앞뒤 안 가리고 뛰어드는 무모함이 아니다. 진짜 용감한 사람은 아니라는 결론을 냈을 때 본능이 이끌려도 단호하게 끊어낸다. 이들은 자신만의 확실한 기준을 갖고 있다. 이 결론은 여러 후회를 반복하며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이 배움이 더 아프게 다가온다.
굳이 많은 과정을 거치며 아파하지 않아도 됐을 텐데, 오래 헤매지 않고 가려던 길을 확실하게 가야 했는데.
여러 상념이 머릿속을 맴돌 때마다 “이성과 절제의 키를 통해 자신을 단속하는 방법을 배우는 중이야.’라고 되뇄다. 또다시 같은 후회를 반복하지 않는 게 지금의 내가 실천할 수 있는 가장 지혜로운 방법이라는 것을 이제는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