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이거나 혹은 자격지심이거나
은재는 고양이를 두 마리 키우고 있다.
그러다보니
은재의 삶에 고양이란
일부보다 더 큰 것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그래서
은재의 SNS를 들어가보면
절반은 고양이 사진들이다.
누군가 자신이 키우는 고양이를 자랑하는 사진부터
유기묘나 구조된 고양이들의
입양 홍보를 하는 게시글까지 다양하게
알고리즘이 형성되어있다.
그런데
어제 은재는 그런 게시글을 보았다.
어떤 고양이에 대한 입양 홍보 글이었는데,
그들이 추구하는 입양 조건이
목록화되어 있었다.
그 중 눈에 띄던 한 가지.
'정신질환이 있으신 분의 입양 문의는 받지 않습니다.'
소위 말해 은재는 그 말에
긁혔다.
5년 째 우울증과 불안장애,
기타 등등의 정신질환 약을 복용 중인 은재는
현재 각각 4살, 3살이 된 고양이를 키우고 있다.
그것도 잘 키우고 있다.
기본적으로
밥을 굶기지 않으면서,
이틀에 한 번은 물그릇을 바꿔주고,
양치도 주기적으로 시키고,
2주에 한 번씩 발톱도 깎이고,
화장실 청소에도 신경을 쓰고,
다이어트 때문에 자주 주진 못하지만
간식도 종종 챙겨준다.
고양이는 강아지와 다르게 산책을 시키지 않아서
편하다고 생각하지만
스트레스에 굉장히 취약한 편이라
스트레스를 받으면 표정부터 달라진다.
그래서 아이들을 자주 관찰한다.
자율배식이 아닌 제한급식을 하는 이유도 그것이다.
얼마나 먹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라고
은재는 제한급식을 고집했다.
그리고
은재는 두 아이를 키우면서
사랑의 최고 경지는
헌신이라는 것을 배웠다.
더 자고 싶은데 일어나야 하고,
피곤하고 해야 할 일이 많지만 나이트 케어를 해야 하고,
날짜를 잡아 화장실 전체 갈이를 해야 하고,
수건은 또 따로 빨아야 하는
그런 수고로움 말이다.
그러니
'정신질환 환자는 입양 문의를 받지 않는다'
는 말은 은재를 난도질했다.
그만큼 잠에 들기 전까지,
아니,
아침에 일어나서 이 글을 쓰기까지
저 말은
은재의 머릿속을 유영했다.
은재는 그들의 그런 생각을 편견이라고
생각했고,
고집했다.
(그러고 싶었다)
하지만
은재가 아무리 위처럼 아이들에게 노력하고
헌신해도
그 말이 편견이라고 주장하는 게
변명이나 자격지심이 될 수밖에 없겠구나,
생각했는데
그 이유는..
은재는 돈이 없으니까.
계절을 타지 않고 늘 가난하니까.
그래서 어떤 달은 엄마가 사료를 사주고,
어떤 달은 아빠가 모래를 사줬으니까.
아, 이게 헛점이구나.
은재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그렇게 말하는 그들의 우려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럼에도
은재는 이런 생각을 했다.
굶기지도 않고,
누구보다 부지런히 케어하는데..
애들 표정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만큼 사랑하는데..
이런 마음은 중요하지 않은 건가?
그들은 얼마나 아이를 사랑해줄 수 있는지보다도,
고양이가 잘 자랄 수 있는
조건들을 더 고려하는 것 같았다.
이건 마치 이런 조건으로 소개팅을
원하는 것과 같았다.
저는 상대가 엄마와 아빠가 모두 있고,
그 분위기가 화목하며,
수입도 보장되어 있고,
원룸이나 반지하엔 안 살았으면 좋겠고,
적어도 해가 잘 드는 32평이나 38평 집을 가지고 있고,
차도 외제차를 몰았으면 좋겠고..
그러니
아무리 생각해도
그들은 누군가 가끔 굶지 않게 사료도 사주고,
모래도 사주며 도와준다는 말을
좋아하지 않을 것 같았다.
은재는 이미 탈락인 것이다.
그래도 은재는 SNS에서 그런 영상을 본 적이 있다.
교도관이 몇 십 마리의 유기된 고양이를 교도소로 데려왔는데,
자연스럽게 죄수들이 고양이를 케이하고 사랑하며,
심지어는 고양이와 놀기 위해,
고양이와 함께 퇴소하기 위해,
모범죄수의 역할을 톡톡히 하며 갱생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동영상이었다.
그러니까
은재가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을 우려하는지 알고 있지만,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이라고 무언가 키울 수 없고,
책임질 수 없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세상에는 항상 변수가 있으니까.
재혼 가정이나 이혼 가정에서 자란 아이라고 해서
무조건, 백퍼센트 엇나간다고 볼 수 없지 않은가?
결핍이야 있을 수 있겠지만,
세상에 결핍 없는 사람이 어디 있으며
결핍은 때로 사람을 더 강하게 만든다.
그러니 너무 색안경을 끼고 보진 말아주세요.
우리도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