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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회전문가 Sep 18. 2022

ㅇㅇㅇ에게

알려줬으면 좋겠어

어젯밤에, 세수를 하고 고개를 들었는데 눈가 주변이 간지럽더니 벌겋게 부어올랐어. 뭔가 싶어서 손으로 더듬어보니 부은 게 아니라 두드러기지 뭐야. 그렇게 하루아침도 아니고 1분 만에 얼굴이 엉망이 되었어. 아주 갑자기, 예고도 없이.


억울했어. 화장품을 바꾼 것도 아니었고, 잘못 먹은 것도 없고, 평소와 다른 하루를 보낸 것도 아니었거든. 근데 이게 무슨 일이지. 나는 학생 때에도 여드름 한 번 나지 않는 사람이었단 말이야. 그러니 얼마나 당황스러웠겠어. 할 수 있는 거라곤 거울로 빨간 점들이 눈가에서 턱으로, 이마로 퍼져가는 걸 보는 일 밖에 없어서, 한참을 서서 "이게 뭐야"라는 말만 되뇌었어.

울고 싶었는데, 울면 열이 올라 더 번질까 봐 눈물을 꾹 참으면서.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지겠지라고 생각하면서.


근데 하나도. 전혀. 나아지지 않았던 거야. 아 - 그때의 기분은 정말, 모든 게 끝난 기분이었어. 그래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얼굴이 이 지경이 돼서 아무도 못 만나고 아무 데도 못 나가겠다고 말했지. 여전히 울지 못한 채.

맞아. 그깟 뾰루지 하나로 그랬어. 웃기지. 나도 웃겨. 그깟 게 뭐라고 저렇게까지 우울해 하나 싶어서. 근데 아마 다시 피부가 뒤집어진다면 또 똑같이 힘들어할 것 같아. 나는 작은 불행에도 쉽게 겁을 내고 무너지는 사람이니까.


생각해 보면 늘 그랬던 것 같아. 모기가 물고 간 자리 하나에도 눈과 입을 구기면서 화를 내고 살을 쥐어뜯고 긁어대면서. 여기가 얼마나 간지러운지 설명하면서 내게 생긴 모든 문제들에 태연하게 굴지 못했어.

나는 그래. 작던 크던, 경험해봤던 일이던 아니던 항상 똑같이 놀래고, 괴로워하고, 불안해해. 우왕좌왕하고 한숨을 몰아 쉬면서 어떻게 하면 차분하게 있을 수 있는지, 한숨을 안 쉴 수 있는지 고민해.


있잖아. 나는 혼자 있으면 누군가가 보고 싶어. 조금만 소음이 생겨도 머리가 아파. 불안할 땐 안아주었으면 좋겠어. 그러다가도 의지하는 내 모습이 한없이 나약해 보여서 싫어. 날씨가 좋으면 밖에 나가고 싶은데, 날 좋은 날 집에서 커피 한 잔 하는 게 여유 같아서 고민하다 해가 져버려. 자전거 타고 동네 한 바퀴 돌고 싶지만 땀나는 건 질색이야. 예뻐지고 싶은 욕구는 한없이 달게 느껴져서 늘 먹고 싶고, 먹으면 구역질이 나. 어려운 책을 보면 짜증 나는데 읽어보고 싶어. 사랑하기 싫은데 사랑받고 싶어. 징징거리는 사람이 싫은데 정작 나는 이렇게 구질구질한 말들을 길게 늘여 놓게 돼.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너도 이럴 때가 있어? 너는 어때? 너는 마음이 시끄러울 때, 원하는 걸 원하면서 원하지 않을 때, 불행이 다가오는 게 보일 때, 태풍에 눈에 갇힐 때, 도망치고 싶은데 도망칠 수 없을 때.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알려주면 안 될까. 어쩌면 그런 방법은 나도 안다고 짜증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그래도 한번 더 말해주면 안 될까. 슬픔이 사라지거나 걱정이 해결되는 건 아니지만 이 생각을 나누었던 타인이 있다는 생각만으로 아주 잠깐은 안심이 되기도 하거든. 그럴 때 나는 혼자지만 혼자가 아닐 수 있다는 걸 느껴. 알고 있어? 내가 너의 답장을 기다리고 찾아 헤매고 있다는 거. 나는 언제나 너의 손으로 엮은 여러 검은 그물망에 들어가기 위해 열심히 헤엄치는 중이야. 그러니 이야기들을 아무 때나 아무 곳에 던져줘. 언젠가 너로 인해 들어 올려질 수 있게. 깊고 깊은 우울의 바다에 가라앉지 않게.

친애하는 너에게 부탁할게. 미리,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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