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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회전문가 Sep 22. 2022

나도 덕질하고 싶어

나도 좋아하고 싶어

너는 네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하루 종일 떠들 수 있다 말했지.

하루 종일을 넘어, 마음을 다 쏟아내려면 함께 2박 3일 여행을 떠나야 한다고도 말이야.

나는 그 말을 하는 네가 무척이나 신나 보여서 속 좁게도 질투가 났어. 좋아하는 걸 좋아하는 모습이 반짝반짝해서. 너의 몸 위로 분홍, 노랑, 하늘빛의 오로라가 덮인 것 같아서 부러웠어.  


혹시, 게임 좋아해? 지금은 아니더라도 어릴 때 많이 해본 적 있어? 게임 때문에 밤을 새본 적은?

나는 한 번도 없었어. 학교 친구들의 헤어짐 인사가 '메이플에서 만나'일 때도, 포션이니 물풍선이니 하는 게임 속 단어들을 일상 속 농담으로 쓸 때도, 서로의 포지션을 나누고 팀을 짜는 친구들 옆에 앉아 듣기만 할 때도 게임을 하지 않았어.


그 표정 뭐야. 자랑하는 거 아니거든. 그래. 뭐. 솔직히 말해서 게임에 빠지거나 연예인에 빠진 친구들을 한심하게 생각할 때도 있긴 했지. 근데 지금은 진짜 아니야. 그렇게 생각 안 해. 왜냐하면 나는 그때 게임할 시간에.....


잤으니까. 게임할 시간에도 자고, 공부할 시간에도 자고, 수업시간에도 자고, 방학에도 잠만 잤어. 과장이 아니고 정말로 밥 먹고 화장실 가는 시간 빼고 자기만 했어. 자면서도 제발 그만 자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로 잤어. 금요일 밤에 자서 일요일 저녁에 일어난 적도 있다니까. 아. 덕분에 키는 좀 컸다. 하하. 그래 봤자 평균이야. 아무튼 난 정말로 네가 부럽다. 뭔가에 빠진 경험은 귀하잖아. 그리고 추억도 있고.


그때 막 유행했던 것들 기억나? 등골 브레이커라 불리던 패딩, 찡이 잔뜩 박힌 브랜드 가방, 왕발처럼 보이게 하는 하이탑 슈즈, 지금 보면 웃음만 나오는 MC몽 선글라스, 롤리팝 핸드폰, 미키마우스 MP 플레이어, 버디버디 같은 것들. 이런 걸 떠올리면 괜스레 마음이 좀 몽글몽글해지잖아. 그때 분위기, 감성이 스쳐 지나가면서 어릴 때 생각도 많이 나서 아련해지잖아. 물론 나도 그렇지. 근데 좀 다른 아련함이야.


내 아련함은... 조금 비어있거든. 왜 그런가 생각해봤는데, 이게 다 빠지지 않아서 그렇더라고. 다 같이 떠난 물놀이에서 너희들은 신나게 수영도 하고 잠수도 하는데, 혼자 모래사장에 앉아 구경만 한 탓에 넘어가는 태양을 보며 마냥 웃을 수가 없어. 분명 너와 같은 곳에서 같은 시간을 지나왔는데 나만 텅 빈 기분으로, 온몸이 젖은 채 정말 재미있지 않았냐고 묻는 너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엉덩이의 모래를 털어.


얼마 전에 이런 글을 읽었어. 내가 좋아하던 사람이 날 좋아하게 될 때 그 사람이 싫어지는 건, 스스로를 싫어하기 때문이래. 내가 나를 우습게 보고 싫어해서, 누군가가 날 좋아한다고 하면 그 사람의 안목이나 가치도 떨어지고 우스워져서 마음이 식는 거지.  

이 이유가 100%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맞는 것 같아. 뭔가와 사랑에 빠져 애정을 부어도 돌아오는 게 없을까 봐, 상처받을 까 봐, 실패할까 봐 무서워서 좋아하는 마음이 커지기 전에 얼른 고개를 돌렸거든. 멋져 보일수록 애써 별로라고 생각했지. 그러다 보면 정말 저 말처럼 흥미가 떨어져서 괜찮았어. 멍청이. 좋아하는 마음이 얼마나 귀한 줄도 모르고. 그건 노력한다고 얻어지는 게 아닌데. 이제 네가 부럽다고 한 말이 이해가 되지?


후아-그래서 이제는 조금이라도 좋아하는 마음이 차오르면 헐레벌떡 쫓아가려 하는데, 마음을 주지 않는 게 너무 익숙해진 탓에 쉽지가 않네. 그러니까 더 얘기해도 돼. 너무 나만 얘기하는 건가 하며 머쓱해하지 않아도 돼. 그게 왜 좋은지, 어떤 점이 매력인지, 뭐가 그렇게 널 설레게 하는지 궁금한 걸. 어쩌면 내가 너의 얘길 듣고 그것을 좋아하게 될지도 모르잖아? 나는 너를 좋아하니까 네가 좋아하는 걸 좋아하면 좋을 것 같아. 그러다 좋아하게 되면 이번엔 피하지 않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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