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책임지는 행동
언젠가부터 심심함을 견딜 수 없게 되었다.
가만히 있질 못하겠다. 아니구나. 가만히는 있는다. 가만히 누워서 또는 앉아서 핸드폰을 쥔 손만 가만히 있지 못할 뿐이다.
하루종일 인스타그램과 유튜브를 들여다본다. 최근 빠져있는 것은 각종 썰이다. 여기저기 난무한 자극적인 커뮤니티 글들을 캡쳐해 재생산하는 게시글들에 하루의 반을 쓰고 있다. 읽다 보면 화가 나는데도 계속 본다. 욕하면서 본다. 뭐 저딴 사람이 다 있어. 아니 근데 왜 이혼을 안 하는 거야.
유튜브 영상 또한 엄청 재미있거나 유익하지 않다. 옛날 드라마들의 하이라이트를 보거나, 주말에 보았던 예능 프로그램을 다시 보는 것뿐이다. 간간히 웃기도 하지만 곱씹을 만큼 즐거웠던 건 아니다. 그러는 사이 스크린 타임은 어느새 8시간을 넘어간다.
어제는 간만에 책을 읽었는데, 전과 달리 30분도 채 읽지 못하고 여러 번 들었다 내려놨다를 반복했다. 영상도 숏츠로 보는 게 너무 익숙하다 보니 일반 영상은 클릭조차 안 하게 되었고, 매일 쓰던 일기는 안 쓴 지 벌써 몇 개월이 지난 건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친구의 생일을 맞이해 편지를 쓰는데 문장력이 엉망이어서 몇 번을 다시 써야 했다. 뭐야. 나 왜 이렇게 되어버린 거야.
어쩌다 이렇게 되긴, 자유라는 이름으로 나를 방치했으니 이 모양 이 꼴이 된 거지.
자유라는 단어는 참 달콤하다. 뭐든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것 같고, 해도 되는 것 같다. 이건 내 인생이고 내 마음이야!라는 외침 속에는 언뜻 쾌감이 비친다. 마치 요리할 때 유용한 만능간장소스처럼 어떤 상황, 어떤 선택에서든 정당한 이유가 되어준다. 그러나 그것이 정당했던 정당하지 않았던 중요한 핵심은 자유에는 늘 책임이 따른다는 사실이다.
한 연애프로그램에서 어떤 남자가 자신을 좋아해 주는 여자와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를 사이에 두고 고민하다 중요한 순간에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를 선택한다. 하지만 그는 그녀와의 데이트에서 자신과 더 맞는 건 자신을 좋아해 주었던 그 여자임을 느끼게 된다. 그렇게 돌아온 그는 자신을 좋아했던 여자에게 다가가"내 마음을 확인하기 위해 다녀왔어."라고 말하며 다시 잘해보자고 말한다.
그러자 한없이 다정했던 그녀는 차갑게 거절하며 "그래, 그건 네 자유지. 하지만 네가 그 순간에 그 여자를 선택함으로써 내 마음이 변할 거라는 것도 예상을 했었어야 해."라고 대답한다.
나는 이 장면을 보며, 저 말은 단순히 연애에서 해당되는 게 아니라 삶의 모든 것들에 해당되는 문장이라고 생각해 박수를 쳤다. 맞다. 하루종일 핸드폰만 하는 건 내 자유지만 그로 인해 삶이 지루해지는 것은 책임을 져야 한다. 글을 읽고 쓰지 않는 것도 내 자유지만 문장력과 문해력이 떨어지는 것도 내 책임이다. 하고 싶은 말을 거르지 않고 하는 것 또한 내 자유지만 내 말을 듣고 상처받은 누군가가 나를 싫어하거나 떠나는 것도, 먹고 싶은 만큼 다 먹고 운동하지 않아 살찌는 것도 모두 내 책임이다.
그러니 지금의 심심함을 견뎌야 한다. 어쩌면 인생은 조삼모사일지도. 지금 쉽게 살면 나중에 어렵게 살고, 지금 어렵게 살면 나중에 쉽게 살 테니까. 어떡할래. 지금 편할래. 나중에 편할래.
내 선택은 -
인스타를 지웠다.
유튜브는 차마 지우지 못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만 보여주는 알고리즘을 방지하기 위해 로그아웃을 했다. 추가로 핸드폰 메인 화면에서 앱을 지워 생각 없이 클릭하지 않게 해 두었다.
핸드폰 충전기를 방문 옆으로 옮겨 침대와 멀어지게 했다. 침대 머리맡에는 책을 올려 두었다.
이번주 목표는 스크린 타임 4시간으로 줄이기.
이것이 나를 책임지고자 하는 나의 작은 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