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일의 썸머 (2009)
이번 연도엔 어떤 일이 있을까 부푼 마음을 가지고 제야의 종소리를 들은 지도 벌써 반년이 넘게 지나버렸다. 이제는 반도 남지 않은 2016년에서 아마도 가장 나를 가슴 설레게 했던 건 다름 아닌 이 영화의 재개봉이었다. 이미 로맨틱 코미디물 좀 봤다고 하면 다 알법한 그 영화, 500일의 썸머였다.
나 홀로 영화관을 가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번 기회를 놓친다면 또 언제 그 커다란 화면에서 500일의 썸머를 다시 볼 수 있을까, 평일 오후여서 였는지 개봉 첫날의 영화관은 텅텅 비었었다. 광고 내내 뜨문뜨문 앉아 있는 사람들을 보니 대부분 혼자 와서 자리에 앉아 있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별다른 이유를 콕 집어내진 않겠지만 아마도 한번 이상 이 영화를 본 사람들임에 분명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커플이고, 이 영화를 봐야 할지 고민한다면 참으로 행운인 것이다. 절대 당신의 애인과 이 영화를 보는 것은 추천하지 않는다. 절대로. 세 번째쯤 영화관을 찾았을 땐 이미 입소문이 퍼진 후였는지 관객이 꽉 차있었지만 크레딧이 올라갈 때쯤엔 단 한 커플도 웃고 있지 않았다.
500일의 썸머는 다른 로맨틱 코미디와는 달리 처음 시작부터 이 영화가 사랑이야기가 아님을 강조한다. 그 유명한 This is not a lovestroy라는 문구와 함께. 아마도 처음 영화를 본다면 시간을 넘나드는 이야기 구조에 당황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굳이 사건이 일어난 순서대로 이야기를 맞출 필요가 없다. 그저 당신이 생각해야 하는 건 그 남자와 그 여자의 이야기일 뿐이다.
당신이 어느 시선에서 영화를 보느냐에 따라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사랑은 '운명'을 통해 찾아온다는 남자와 사랑은 의미가 없는 단어일 뿐 그저 행복하기만 하면 된다는 여자의 차이는 명확하다. 영화를 보는 내내 당신은 톰일 수도 있고, 썸머일 수도 있다. 영화가 끝나고 떠오르는 질문인 "과연 누가 잘못했냐"의 답이 썸머가 어장관리녀였는지, 톰이 찌질한 남자였는지는 역시나 당신의 시선에 달렸다.
500일의 썸머는 남녀의 이별에 대해 과장하지도 생략하지도 않았다. 아주 평범한 커플이 만나 헤어지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담았다. 아마도 이 영화가 흥행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싶다. 또 영화는 로맨틱 코미디의 주 시청층이 여성이라는 편견을 뒤틀어버렸다. 기존에 존재했던 수많은 로맨틱 코메디물처럼 여자의 시선에서 바라보았던 연애가 아니라 톰의 시선으로 연애를 바라보게 함으로써 남자의 입장의 연애를 그려내는 것이다.
우리는 완벽했던 연애 뒤에 찾아오는 이별에 아파하고 고민한다. 그 사람을 내가 잊을 수 있을까? 그 사람과 같은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차단했던 메신저를 풀어보고 헤어진 연인의 인스타그램을 찾아보고 가끔은 지루한 표정을 짓는 친구를 앞에 세워두고 그 사람이 다시 연락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 혹은 내가 먼저 연락을 해야 할지 수도 없이 물어보기도 한다.
생전 모르던 두 남녀가 만나는 이야기는 무궁무진 하지만 싸우는 이야기는 참 간단하기 마련이다. 우연히 던진 농담 한마디에 상대방이 기분 나빠하고, 또 평소와 다를 것 없는 행동을 했는데도 상대방이 토라진다. 복잡하게 꼬여버린 연애를 풀어보려 노력하지만 서로는 이미 지쳤고 갈라진 사이를 메우려 노력하지만 술도 시간도 사랑도 소용없기 마련이다. 이 영화가 수작으로 꼽히는 이유는 바로 이 평범한 남녀의 '이별'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영화가 시작할 때의 인트로는 아주 당연한 이야기지만 중요한 뜻을 담고 있다. 톰과 썸머의 유년기를 같은 화면에 담은 연출은 우리에게 있어 가장 단순하지만 중요한 연애의 법칙을 일깨워준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란 남녀가 만나 서로를 이해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당장은 그 사람을 바라보는 내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질진 몰라도 결국에 서로가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이야기를 하기를 바라는 것에 지칠 때가 온다.
사회는 사람을 둥글게 만들고 그 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둥글게 살기 위해 자신을 그럴싸하게 포장하곤 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속마음을 비추는 것이나 상대방의 속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일임과 동시에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 사람과 더 발전된 관계를 원한고 그 사람이 자신의 세계에서 가장 커다란 존재가 되길 바란다면 우리는 한 발짝 더 앞으로 내디뎌야 할 때가 온다. 서로의 속마음을 이해하고 공유하는 것이 연인이라는 관계가 성립하기 위한 첫걸음인 것이다.
아주 거창하게 써놓았지만 사실은 매우 간단한 이야기 이기도 하다. 너를 사랑한다.라는 한마디가 세상 그 어떤 말보다 진심을 될 수도 있는 것이니까. 하지만 반대로 우리는 이 이야기를 너무나도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사랑에 빠진 연인들이 흔히 착각하는 ' 바로 내가 이렇게 생각하니 너도 이렇게 생각하겠지 '라는 마음이다.
영화는 '링고 스타'라는 소재를 통해 이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행복한 커플 생활을 이어가던 톰과 썸마가 오디오 가게에 들린다. 링고 스타를 좋아한고 말하는 썸머를 보며 톰은 링고 스타를 좋아하는 것이 이해할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톰이 생각하기에 링고 스타는 최악의 가수였기 때문이다. 장난스레 링고 스타가 최악이라고 말하는 톰과 자연스레 웃어넘기는 썸머를 보면서 관객들은 그저 흔한 커플의 의견 차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영화를 본 많은 사람들도 단순히 톰이 '링고 스타'를 좋아하지 않아서 썸머와 헤어졌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링고 스타는 이 영화를 두 번 세 번씩 보지 않을 관객들을 위해 감독이 풀어놓은 직관적인 해답지다. 우리가 얼마나 상대방의 가치관에 대해 무심한지 보여주는 소재인 것이다. 행복해 보였던 커플은 사실 영화 내내 서로의 연애관과 가치관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권태기가 찾아왔을 때 다시 찾은 오디오점에서도 , 정말 운명적으로 다시 재회하게 된 직장동료의 결혼식장에서도 톰은 링고 스타를 좋아하는 썸머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 사소한 의견 차이는 마지막에 썸머의 입에서 '네가 나의 짝이 아닌 것뿐이야'라는 말을 하게 만들었다.
당신이 운명인 상대방을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할까? 썸머를 운명적인 여자라고 말하는 톰은 영화 내내 수동적인 모습을 보인다. 복사실에서 격렬한 첫 키스를 했을 때에도, 커다란 다툼 이후에 화해의 손길을 내미는 장면에서도 오히려 서로의 관계를 가볍게 생각한다던 썸머가 먼저 움직이는 모습을 보이곤 한다. 그저 톰은 그녀가 '운명적인 여성 이기 때문에 라며 이 모든 일을 설명하려 했다. 그리곤 썸머가 자신의 목소리를 내었을 때에는 항상 자신이 썸머에게 맞추어 사랑을 해왔었다며 화를 내버렸다. 사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는 단 한 번도 능동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으니까.
운명적이라는 말은 아주 달콤하고 환상적인 단어지만 결국 세상에서 가장 쉬운 핑곗거리가 되어버린다. 이별 이후 운명적인 사랑에 대해 회의감을 느낀 톰에게 그녀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 책을 읽고 있는데 어떤 남자가 다가와서 나에게 물어봤어 , 그리고 그 사람이 지금의 내 남편이야 "라고. 운명적인 사랑은 없다며 웃었던 그녀가 운명을 믿게 된 것은 우습게도 톰때문이였다. 결과적으로 그녀가 톰과의 연애에서 깨달은 것은'자신의 가치관을 이해해주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운명적인 사랑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인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톰은 다시 한번 운명적인 사랑의 기운을 느끼지만 애써 무시하려 한다. 이별 이후 썸머와는 반대로 세상에 운명적인 것은 없다며 생각해버렸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결국 돌아서서 그 운명적인 사랑의 기운을 향해 다가간다. 그제야 그도 깨달았던 것이다. 누군가가 내 운명이 되는 것이 운명적인 사랑이 아니라, 내가 그 사람에게 있어 운명적인 사랑이 되는 것이 진짜 운명적인 것이라고. 썸머가 톰과의 연애를 통해 성장했다면 , 톰 역시도 썸머와의 연애를 통해 성장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둘의 연애 이야기가 그려진 이 영화가 사랑이야기가 아닌 이유다. 두 남녀가 연애를 통해 진짜 자신의 연애관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리는 영화라는 것이 옳은 표현이다.
6년 전 영화를 처음 봤을 때에는 나에게 썸머는 아주 나쁜 Bitch였다. 사실 연애를 끝낸 직후에 추천받았던 영화라 톰에게 감정을 이입했던 게 분명했으리라. 그리고 매년 두 번 세 번씩 찾아볼 때마다 썸머에게 감정을 이입하곤 했다. 썸머가 정말 톰을 사랑하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곤 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수도 없이 이 영화를 보고 대사까지 줄줄이 외울 정도가 된 지금에도 확실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아마도 그녀 역시 톰을 사랑하지 않았을까, 그저 사랑이라는 단어 앞에서 자신이 받아온 상처들과 부모님의 이혼으로 인해 그 감정을 애써 숨기고 상처받지 않으려 '여자친구'라는 수식어를 달기 싫었던 건 아녔을까 한다.
결국 지금 와 생각해보면 그녀 역시도 자신이 믿었던 가치관 때문에 톰에게 모든 것을 보여주진 못했다. 그녀가 진짜 톰을 사랑했는지는 그녀의 시선에서 바라본 영화가 나와야겠지만, 단연코 그녀가 톰을 가지고 소위 말하는 어장관리를 했던 것은 아니었다. 작중에 나오는 소개팅녀의 말대로 썸머는 바람을 피지도 , 그를 이용하지도 않았으니까. 그러나 그녀도 그를 사랑했지만 결과적으론 사랑한다 이야기하지 못했다. 어찌 보면 톰이 썸머의 사랑을 느끼지 못하고 그렇기에 그 관계를 정립하려 했던 것 또한 당연한 일이었다. 썸머도 이별 후에야 운명적인 짝을 만나는 방법과 사랑한다고 말하는 방법을 배우게 됐으니까 말이다.
부디 영화 관람을 끝내고 썸머가 잘못했는지 톰이 잘못했는지에 관한 논쟁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누군가 그렇게 물어본다면 톰은 찌질했고 썸머는 어장관리녀였다라고 답한 뒤 꼭 다시 한번 그 영화를 시간 내서 봐달라고 부탁하길 바란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누가 잘못했는지도 이별을 대하는 남녀의 시선의 차이도 아니다. 그저 자신의 남자친구, 여자친구가 아니라 연애관과 가치관을 넘어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사랑할 수 있냐는 것뿐이다. 그리고 그러지 못했다면 내가 '운명적인 만남'이라는 단어 뒤에 숨어 모든 것을 뒤로 미루어 버리진 않았을까 하는 질문을 던지길 부탁한다.
결국 지나갔던 그 인연도 운명은 운명이였을 것이다. 내가 그 자리에 가지 않았더라면 , 혹은 10분만 늦었더라면 세상은 우연과 운명으로 가득차 있지만 운명이 가져다주는 것은 만남뿐이다. 그리고 스쳐지나가는 그 사람을 붙잡아두고 내 짝으로 만드는 것은 이제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선택일 뿐이다. 연애를 하고있다면 혹은 시작할 것이라면 그 운명의 짝에게 한발짝 먼저 내딛어 보는 것이 어떨까. 그리고 만약 행복했던 연애를 끝내야만 했다면 내가 그 사람에게 톰은 아니였을지 혹은 썸머가 아니였을지 되짚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