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라 랜드 (2016)
늘 회색 빛으로 가득 찼던 집 앞 거리에 반짝이는 전구들과 커다란 성탄절 트리가 들어서고 나서야 한 해의 끝자락임을 깨닫는다. 비록 길거리에서 캐럴이 울려 퍼지던 시절은 오래전 이야기가 되었지만 그래도 크리스마스 하면 세대를 불문하고 로맨틱한 계절이 아니던가. 손을 마주 잡은 커플들의 따스한 온기라도 느낀 건지, 혹은 솔로들의 옆구리 시린 그 마음을 아는 것인지 코 끝에서 맴도는 겨울 향을 타고 온 마법 같은 영화 한 편이 있다. 바로 라라 랜드다.
꽤 늦은 시간에 관람한 영화였음에도 상영관 내부는 빈자리를 찾기가 힘들었다. 사실 그리 놀랄 일도 아니었다. 일 년에 영화 한 편 제대로 보시지 않는 어머니에게서 까지 라라 랜드가 그리 재밌었다는 이야기를 하실 정도였으니 말이다. 꼬깃하게 접힌 영화 관람표를 주머니에 쑤셔 넣고 두근 거리는 마음을 간직한 채 마법과도 같은 영화가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혹여 매표소 앞에서 애인 몰래 이 리뷰를 보고 있는 마음 급한 당신을 위해 미리 결론을 이야기하겠다. 당신이 이 영화를 관람할 기회를 놓친다면 반드시 후회할 것이다.
여태껏 봐온 할리우드 로맨틱물은 80-90% 정도가 뻔했다. 참신한 소재들을 섞어놓은 듯했지만 결국 가볍기 그지없었다. 주말에 방에 틀어박혀 시간을 때우기엔 딱 좋은 그런 영화들. 인정하기 싫지만 인정해야겠다. 오랜만에 제대로 한방 먹었다.
낭만이란 단어 자체가 주는 감상은 의외로 단순하다. 우리 모두 말로 내뱉진 못해도 각자의 낭만 섞인 사랑 하나쯤은 가슴에 품고 살지 않는가. 로맨틱 코미디는 사람들 마음속에 숨겨진 낭만에 비슷한 판타지를 먹고사는 장르다. 그런 의미에서 '라라 랜드'가 우리 가슴속에 채워주는 낭만은 조금 색다르다. 영화가 비추는 낭만은 타오르는 불꽃 같이 시작해서 너무나도 아름다운 눈송이 마냥 흩뿌려진다. '낭만' 이란 단어가 왜 '낭만' 이겠는가, 그저 눈을 감으면 떠오르는 첫사랑의 얼굴처럼, 잡힐 듯하면서도 잡히지 않기 때문에 낭만인 것이었다. 그리고 현실도 영화도 그리 다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을 때쯤에는 당신도 모르게 짧은 감탄사를 내뱉을 것이다. 물론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작은 한숨과 함께.
서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남녀가 사랑의 불씨를 태우는 일들은 의외로 간단하다. 서로의 외모에 반했거나, 성격에 반했거나, 혹은 상대방이 가진 무언가에 반했거나. 영화 속 두 커플도 그리 다르지 않다. 남자는 낭만에 젖어 허우적거리는 철부지였고, 여자는 현실이라는 파도에 밀려 저 밑바닥까지 쓸려내 온 지 오래였다. 인생의 밑바닥에서 만난 두 남녀의 눈동자가 바라보고 있는 것은 같았다. 바로 '꿈' 이였다. 운명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짧은 만남들 속에서 세바스찬과 미아는 서로의 꿈을 보곤 한다. 남들이 손가락질하고 조롱해도 그들에게는 삶을 살아가는 이유이자, 나아가야 할 목적지였다.
불꽃같이 사랑만 한다면야 로맨틱 코미디 영화가 왜 있겠는가, 남자 친구 가족과의 식사도 뒤로 한채 달려 나온 미아와 미련하게도 약속 시간에 오지도 않은 여자를 기다리며 혼자 영화를 관람하던 세바스찬의 사랑에도 시련이 찾아온다. 정통 재즈에 대해 이야기하면 항상 눈을 빛냈던 세바스찬이 재즈의 현대화를 추구하는 친구의 제안을 받아들이게 되면서 아름답던 두 커플은 서서히 갈라지기 시작한다. 미아는 세바스찬이 달라졌다 비난한다. '꿈'을 쫓는 남자의 열정을 보며 사랑에 빠진 그녀는 세바스찬의 눈동자에서 정통 재즈라는 '꿈'이 사라지는 것을 보았을지도 모른다. 사랑의 불꽃을 낭만으로 태웠으나 이제 남자의 눈동자에서 그 낭만이 사라지고 만 것이다. 아마 영화를 관람하는 관객들 중에서도 세바스찬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잠시 미루어 둔 것이다."라는 핑계는 나라도 뱉을 수 있으니까. 과연 그가 그리 지키고자 했던 낭만을 그렇게 쉽게 내려놓은 것일까. 미아는 알아채지 못했다. 세바스찬의 꿈은 바로 그녀였다는 걸.
아마 '꿈'에 관해서만 그려낸 영화였다면 '라라 랜드'를 가지고 이렇게 글을 쓰진 않았을 것이다. " 꿈을 가져야 한다"라는 주제의 영화는 차고 넘치며, 그런 영화의 대부분은 아동용 영화이거나 진부하기 마련이다. 무난하게 진행되던 영화는 마지막에 가서야 꽃을 피운다. 이별 선고를 받은 뒤 미아를 찾는 전화에 신경질을 내던 세바스찬이 단숨에 차를 몰고 달려 나가던 그때에야 , 우리 모두는 이해하게 된다. 이 남자의 꿈이 무엇인지를. 끊임없는 조롱과 현실의 벽에 부딪힌 그녀를 바라보며 그는 이야기한다. 나의 꿈이 곧 당신의 꿈이라고. 다시 일어서지 못할 것 같던 그녀의 꿈을 마지막까지 지탱해준 그를 바라보며 그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세바스찬과 미아가 손을 잡고 다시 불과 같은 사랑을 나누는 것으로 영화가 끝났어도 충분히 좋은 영화였다고 이야기했을 것이다. 미아는 세바스찬 덕분에 유명한 배우가 되었고, 세바스찬은 미아 덕분에 꿈에만 그리던 재즈바를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들이 사라진 뒤였다.
원하는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다면 모두가 행복했을까, 세월이 흐른 뒤 눈동자를 껌뻑이며 마주한 두 남녀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까. '미아'라는 인물이 주인공인 듯했던 영화에 속았다 라고 이야기하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세바스찬'의 시선을 통해 그려지는 마지막 장면은 그보다 더 '낭만'이라는 단어를 잘 표현하지 못할 것이다. 지나온 세월 속에서 한순간 한순간의 선택이 옳았더라면. 그는 모든 것을 이룰 수 있었을까, 아름다운 재즈바에서 그녀와 함께 있을 수 있었을까? 그래서 그가 보여주는 그 꿈과 같은 장면들은 너무나 가슴 아픈 '낭만'이 되었던 것이다. 세바스찬이 이루어낸 반짝거리고 아름다운 현실에 박수를 보내며, 그리고 그가 이제는 가슴에 새길 수밖에 없는 낭만에 눈물을 흘리며 영화는 끝을 맺는다.
영화의 여운은 생각보다 길었다. 별다른 쿠키 영상이 없는 영화임에도 끝까지 남아 크레디트가 올라가는 것을 바라본 영화가 참 오랜만이었다. 극장 안의 사람들 역시 다르지 않았다. 아름다운 재즈 선율 속에서 몇몇 관객의 작은 흐느낌만이 들렸다. 나 역시도 영화가 끝나고 나서 펑펑 울고 말았다. 그렇게 아름다운 영화를 보았음에도 무엇이 그리도 가슴 아팠던 걸까. 결국 나도 저렇게 되겠지 라는 생각?, 이루지 못했던 낭만에 대한 후회?
낭만이 현실이 되는 그 순간이 찾아온다면 어떤 기분일까. 원하던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세상이라면 그런 단어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꿈을 꾸기 때문에 나아갈 수 있고 또 지나온 세월들이 낭만적이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었던 것이다. 누군가는 미아처럼 현실의 벽에 가로막혀 조롱받고 있을 수도, 또 누군가는 세바스찬처럼 꿈을 좇고 있음에도 미련하다며 주위의 조롱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당신이 가진 그 꿈만큼이나 아름다운 것이 세상에 없다는 것이다. 꿈이 가진 가치가 곧 당신의 가치이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낭만에 젖을 수 있는 것이다.
힘을 냈으면 좋겠다. 당신도 나도.
'도서관 앞'이라는 말 하나만 가지고 지나온 모든 동네 도서관 앞에서 경적을 울렸을 세바스찬을 생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