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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시 Jun 22. 2017

사랑에 이유가 있나요?

나는 왜 너를 사랑하는가 (알랭 드 보통)



 ' 너는 왜 나를 좋아해? ' 혹은 '너는 왜 나를 사랑해?' 한창 불타고 있을 청춘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애인에게 들어 봤을 법한 이 대사에 무엇이라고 대답해야 할지 고민한 적이 있었는지 묻고 싶다. 누군가는 웃으면서 넘길 것이고 누군가 한 번쯤은 또 진지하게 그녀 혹은 그의 매력을 찾으려 노력했을 것이다. 반대로 당신의 애인에게 묻는다면 어떨까. 이 농담과 진담을 반쯤 섞은 질문에 당신이 이런 대답을 내놓는다면  '나는 너의 마르크스적 관점이 좋아'라고 당신은 과연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까. 







  <나는 왜 너를 사랑하는가>라는 책 자체의 소재는 무척이나 흥미롭다. '사랑'이라는 감정 앞에 이성적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당신에게 빠지는 그 순간부터 당신에게 빠져나오는 그 순간까지, 나는 왜 그래야만 했고, 너는 왜 그래야 했는지를 하나하나 누군가 설명해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바로 그 해답이 이 책에 나와있으리라 믿었다. 아니 그렇게 믿어도 좋다. 물론 당신이 낭만을 꿈꾸는 로맨티시스트라면 이 책을 읽고 난 뒤엔 조금은 신선한 충격을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첫 챕터부터 책이 끝날 때까지 주인공의 연애는 너무나 평범했다. 비행기라는 공간에서 우연히 만난 여성에게 사랑을 빠진 남성이 사랑을 찾는 과정과 그리 특별하지 않은 연애담 그리고 헤어짐을 담은 소설은 현실적이다 못해 연애담이라 말하기에도 무안하다. 그러나 작가는 이 평범한 사랑이야기에 독특한 주인공의 시선을 끼얹었다. 그녀의 행동부터 자신의 감정 하나하나 철학적 관점을 통해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려낸 것이다. 그녀를 처음 만난 그 순간부터 자신이 사랑에 빠지게 됐다는 것을 인지하는 순간까지 , 운명론적 사랑론과 그녀가 비행기 옆자리에 앉을 확률까지 계산하는 주인공을 바라보며 우리는 각자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사랑은 감성의 끝자락에, 철학은 이성의 끝자락에 있다. 감성을 이성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이 발칙하고 엉뚱한 상상만큼이나 매력적인 책일 수밖에 없다. 머리 아픈 철학적 이론들로 딱딱해질 수도 있을 법한 내용들은 너무나도 평범하게 느껴졌던 연애담 속에서 말랑말랑하게 녹아내렸다. 경계가 명확했던 두 영역의 기준선이 흐려지고 책을 고르고 머리를 묶는 그 사소한 모습까지도 놓치지 않는 작가의 세심함 속에서 자연스레 그 길을 따라 걷게 되는 것이다.


   소재는 흥미로웠고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 역시 실망시키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난 뒤엔 기분이 참으로 묘했다. 왜 나는 너를 사랑했는지. 이제 그 해답을 손에 넣고도 찝찝함과도 같은 감정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이렇게 까지 '사랑'이란 감정을 들추어낼 필요가 있을까. 우습게도 이 책을 흥미롭게 만들었던 소재가 실망감을 안겨주었던 것이다. 처음 받아보았다며 선물을 안고 한아름 웃고 있는 너를 보며 혹은 이별을 말하는 너를 보며 우리가 이렇게 많은 이유를 달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 운명적인 만남의 경우의 수를 계산하고, 너를 선택한 그 이유가 옳았는지 아녔는지를 판단하는 그 순간에 어쩌면 사랑은 이미 끝나버린 게 아닐까 싶었다. 어쩌면 이런 생각들이 '왜 나는 너를 사랑했는가'에 대한 대답일지도 모른다. 작가의 주인공처럼 이성적인 관점에서의 사랑에서 이유를 찾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감성의 영역에서 사랑을 찾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똑같은 사람은 너밖에 없고 똑같은 사랑은 그때 그 순간 밖에 없다. 세상엔 무수히 많은 사랑의 형태가 존재하고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그 순간 속에서 '왜 너를 사랑할까'라는 대답엔 그 사랑의 수만큼의 대답이 달릴 것이다. 누군가는 너의 외모가 누군가는 너의 성격이 , 물 마시는 모습부터 손가락까지도. 우리가 묘하다고 느낄만한 이성적인 영역에서의 사랑 또한 그중 하나 일뿐이다. 정답도 오답도 아닌 하나의 대답. 결국 '사랑'의 형태는 각자의 마음속 깊숙이 박혀 있다. 적어도 나는 사랑에 주인공처럼 무수히 많은 설명들을 달아 놓진 않을 것이다. 완벽한 사랑이 있다면 우리가 다가올 사랑에 설렐 필요도 없을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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