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서로를 알파벳으로 불렀다.
서로 모일 때면,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이 얼마나 고단한 일인지 혹은 혐오하는 것이 얼마나 비루한 일인지 ㅡ누군가는 쇼팽을 쵸핀으로 부르는 것에 대하여, 또 누군가는 젊은 나이에 요절한 천재들에 대하여 ㅡ 오고가는 시시콜콜한 대화들 속에서 다행인 것은, 우린 적어도 서로에게 유해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겨울향이 코 끝을 맴돌고 두어 번의 여름밤을 지날때쯤 우리는 길쭉하게 자라버렸다. 한 문장 담아내기조차 어려워 지친 얼굴을 하고 비스듬히 기대어 지하철에 비친 모습을 볼 때 즈음엔, 우리는 언젠가 떨어져 서로의 바다로 돌아가야만 하는 사실을 깨닫곤 했다.
애틋하게 부르던 이름들이 스쳐가고 나서야 정신이 들었다. 뒤늦게 점멸하는 기억을 더듬어 간신히 도착한 끝에는 빈 탁자만이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너무 많은 것들을 지탱하고 또 너무 많은 것들을 부여잡고 내가 사랑하는 것들과 사랑하려는 사람들,
그렇게 후회하는 동안 변해버렸던 색색의 조각들이 뭉쳐 회색빛 응어리가 되었지.
나는 우리라고 불리던 것들에게 더 많은 약속을 했어야 했다. 적어도 누군가는 우리의 이름을 입에 담았어야만 했다.
아니 멍청하게라도 누군가를 사랑했어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