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딘가에 있을 당신의 이야기
늘 비루한 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월부터 3월 중순까지 못난 일기장 속 문장들을 이 곳에 모아두려 합니다.
제가 쓰는 문장들은 대부분 스스로 마주하기 부끄러운감정의 응어리들 입니다. 활자 속에 숨은 제 가난한 마음을 용서해주세요.
어디에서 무얼하던 당신의 하루가 행복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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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2.27(월)
S에게 쓴 편지
끝없는 언덕을 오르다 올려 본 까만 밤하늘에 콕 박혀 있는 별 하나가 보여서
고생 많았어요!
때론 너무 쉽고 가볍게 흘러가는 한마디지만 오늘만큼은 꼭 이렇게 말하고 지나갔으면 좋겠어요.
서로가 서로에게, 내 스스로 나에게
어제도, 오늘도 정말 정말 고생 했다고
그 짧은 만남과 인연에도 우리 모두 서로의 우주에 담긴 어여쁜 별들이 되었는걸요.
속절없이 흐르는 밤 위에서 하는 자맥질도, 때로는 모두모여 시간가는줄 모르고 떠들었던 그 날 밤도. 그 순간 모두를 사랑하고 살아가야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쩌면 오늘 밤도 , 내일 하루도 힘든 순간들이 오겠지만 그럴때면 밤하늘을 올려다보아요. 분명 한가득 담아둔 별들이 고생했다고 말해줄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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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3.01(수)
어느새 다가온 봄에 괜히 울적한 마음이 든다.
이번 겨울은 지나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유난히도 춥고 아팠던 계절에 미운 정이라도 들어 버린 걸까, 아직 얼어버린 마음 조각들이 채 녹지 못한 탓일까
어느덧 다들 괜찮냐고 묻지 않을 만큼의 시간이 흘러도 사실 많은 것이 바뀌어버린 삶을 마주하기란 어렵다. 아직 누군가 대하는 것은 서툴고 스치는 모든 것에 너무 쉽게 상처를 받는다.
혼자 맞이하게 되는 첫 번째 계절이 봄이라는 사실이 어색하게만 느껴진다. 괜스레 그리운 마음에 옷장 안 꺼내지 못한 봄옷의 소매 끝만 문대보았다.조금만 더 코 끝에 겨울향이 맴돌길 간절히 바라면서
따듯한 사람들과 문장들 속에서 나는 왜 그리 바보같이 외로워할까. 따스함이 당연해지는 계절이 오고 나면 내가 쥔 그 미약한 온기마저 사라질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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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3.03(화)
우연히 마주한 질문들이 아프게 느껴질때가 있다.
어찌 그리 가슴팍을 콕 찌르는 질문들만 할까
나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라는 질문을 받고선 한참을 천장만 바라보았다.
글쎄요.
어쩌면 이번 모임에서 가장 아픈 질문이 아니었을까
스물엔 두려울게 없었고, 스물 다섯엔 불같은 사랑을 하고, 때로는 오만함 가득한 단어들과 문장속에 살았다. 스쳐지나가는 만남부터 운명 같은 인연까지 모두 잃고 나서야 서른의 나는 무엇을 그리워 하는걸까
나의 한계는 결국 다른 누군가의 기대치만큼이었다. 사실은 모두의 기대치보다 단 한발짝 앞에 있었다. 부모님 혹은 지인들 그리고 너의 기대치만큼 이었다. 그래서 열심히, 조금만 더 열심히라고 다독이며 살아갈 수 있었나보다.
미안해요.
가끔은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어 그런 표정을 지었어요.
변하지 않은 것은 솔직하지 못한 마음 뿐인 걸 안다. 가끔은 지쳤다고 이야기해도, 이렇게 버티고 서있지 않아도 괜찮을텐데. 조금만 더 완벽하고 싶은 오만과 욕심을 놓아주지 못한 나의 탓이다.
여전히 긴 밤은 잠들기 어렵고 아침이 오지 않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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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3.06(월)
가시에 찔려 행복하게 죽는 그날까지,
온 힘을 다해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서로 삶을 모르는 사람들이 모여 10시간이 넘게 즐겁게 이야기할 수 있다는 건 참 기적 같은 일이다. 인생에 스쳐 지나갈 수도 있는 사람들이 모여 서로를 인연이라 부르고,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고 슬퍼하고 기뻐하는 모습들이 너무나도 예쁘게만 느껴진다.
늘어지게 취한 그날 밤, 집에 돌아와 그 어느 때보다 예쁜 별들이 반짝이는 우주에 쪼그려 앉아 다른 행성들을 마주 보았다. 칼 세이건이 이야기했던 창백한 푸른 점처럼 나는 누군가의 우주에서 어떤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을까 싶다. 부디 따스한 온기를 가진 행성이길 바라요. 제 우주에선 이 글을 보는 모두가 찬란하게 빛나는 별들이랍니다.
우연히 보게 된 고슴도치 이야기의 그림책이 너무나 슬프게만 느껴진다. 고슴도치들은 추위에 떨며 따스함을 찾아 서로 꼭 껴안길 바라지만, 늘 서로의 가시에 찔려 아프기를 반복했다는 이야기, 그렇게 우리 사이의 거리를 맞추어가며 살아야한다던 그림책의 결말에 사랑하는 사람들이 내 가시에 찔려 아파했을 모습이 떠올라 엉엉 울뻔했다. 내 욕심에 힘껏 끌어안았던 모두가 어쩌면 가시에 찔려 아프다는 말을 꺼내지 하지 못하고 나에게 따스함을 전해주려 곁에 있었던 건 아닐까. 혼자 지내지 못해 또 누군가를 가시에 찔러야만 살아갈 수 있는 삶이 바보 같다고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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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3.11(토)
입춘, 이제 정말 첫번쨰 봄을 시작해야해요.
사실 조금 두렵습니다. 아니 어쩌면 많이
나른한 하루 끝에 마주친 모두의 얼굴엔 미소가 가득했답니다. 더 이상 누군가의 따스함에 기대지 않아도 되는 계절이 찾아왔으니까요. 조금은 설레는 마음이 들었어요. 붙잡을 따스한 품은 없더라도 자그마한 꽃 한 송이는 손에 쥐고 싶은 날이었으니까요.
활자를 토해내는 게 어려워서 하얀 설국 속에서 방황 했어요. 눈 위로 어지럽게 찍힌 발자국들이 겹겹이 쌓여 마음에 얼룩이 되었답니다. 그러다 문득 언제쯤 겨울잠에서 깨어난 개구리가 울까 기다리며 봄이 오길 바랐는지도 모르겠어요.
사랑하는 밤의 끝자락에 서서 천장에 빛나는 별을 세었어요. 포근한 아침엔 겨울옷은 서랍 깊숙한 곳에 넣을 준비를 하고 쭉쭉 기지개도 켰답니다. 어쩌면 이제는 봄을 마주할 준비가 된 걸까요?
위로받았던 겨울도 한껏 설레는 봄도, 제가 갇히길 바랐던 것도 나아가고 싶었던 것들도, 돌아오는 계절처럼 제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버린 나이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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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답을 찾지 못했다면 당신이 조금만 더 그곳에 있길 바라요. 더 많은 기억의 파편들을 남기고, 빛바랜 사진이 될 그 순간에 행복을 한껏 머금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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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3.12(토)
봄비가 내리던 나른한 오후
누군가의 춤이 기억나서
봄비가 때맞추어 내린 것이 얼마 만인지 모르겠어요. 세차게 내리는 비를 사랑하지만 때로는 온 세상을 축축하게 적시는 비도 좋아한답니다. 하루 종일 비가 내리기 바라는 건 제 욕심이겠죠?
그때를 떠올려요. 비 오던 어느 날 밤 가로등 밑에서 춤추던 당신을, 겨울 색으로 얼룩진 도화지를 두 뺨처럼 발갛게 물들이던 당신의 색을 기억해요. 오늘 내린 봄비처럼 천천히 스며들어 썰물처럼 빠져나가버린 그 따스함과 공허함을 사랑해요.
이제는 비 오는 날 저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답니다. 어느새 흐른 시간만큼 서로 다른 색의 따스함으로 채워지고 있으니까요. 그래도 그 말은 전하고 싶었어요. 당신이 물들였던 그 기억들이 적어도 제가 언젠가 들려줄 이야기의 고작 한 페이지로 남진 않을 거라고. 이제 더는 반짝이진 않아도 충분히 아름다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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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3.16(목)
쓰고 지우길 반복하다보면
꼭 못난 글이 나온다.
꿈꾸던 하루가 찾아오고 나면 무엇이 남을까요. 따스함이 온전히 닿지 못한 계절 끝에 아직 채 마르지 않은 마음을 창틀에 곱게 널었습니다. 그래도 오늘은 외롭지 않은 마음입니다.
응어리진 것들이 뭉쳐 생각 한켠에 자리했나 봅니다. 모처럼 기다렸던 소식들이 가득 찬 우체통을 보고도 비루한 마음에 조소를 머금었습니다. 떠나갈 것들에 또 정을 주지 않으리라 다짐했는데도 누구 말처럼 그 많은 일을 겪었음에도 덜 아픈가 봅니다.
해묵은 편지를 꺼내어 툭툭 먼지를 털었습니다. 사실 이 편지 열어보진 못했습니다. 말을 흐리며 코끝을 매만지던 당신의 어깨를 감싸 안고 싶은 하루였습니다. 그럴 때면 말없이 고개를 주억거리던 모습이 얼마나 예뻤는지 알까요? 울음을 삼키던 바보 같던 습관임 알기에. 시들기 싫어 피어나지 않기로 결심하였던 흑백 사진 속 당신이 그립습니다. 아직 낯선 행복보단 짙고 선명했던 그 우울을 사랑합니다.
여즉 그날 이후로 손을 덜덜 떨곤 합니다. 누군가 왜 그러는지 물을 때면 헤죽 웃곤, 너무 취해서 그렇다고 흘려보내며, 그때에 우리 행복했던 하루들을 떠올리곤 두 눈을 꾹 감고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