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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멜 Oct 27. 2019

타이밍을 놓치면 1년 내내 개고생이다.

CPSM이 알려주는 구매 부서 적응 비법(11)


오늘은 점심을 회사 밖에서 해결했다. 협력업체 사장님이 발주물량을 납품하기 위해 사무실을 방문했기 때문이다. 회사 인근 식당에서 나와 소싱 담당자 그리고 협력업체 사장님, 이렇게 셋이서 함께 식사를 했다. 오늘 방문하신 사장님은 이른바 창업 세대다. 우리 회사와 거래한 지도 벌써 30년이 넘었다. 내가 입사하기 훨씬 이전부터 거래를 해 왔다. 내가 원부자재 소싱 담당자로 일할 때 많은 도움을 받았고 또 많은 도움을 주었다. ‘요즘 회사는 어떠세요?’라고 물었더니 힘들다고 너스레를 떠신다. 그리고 하시는 말씀이 ‘구매팀에서 발주를 많이 좀 줘요.’라고 얘기를 하신다. 역시 예상했던 답변이다. 이런 질문에 대한 답변은 어느 협력업체나 마찬가지다.   

 

점심을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와 양치를 마치고 책상에 앉았다. 책상 위에 결재문서가 수북하게 쌓여있다. ‘뭔 놈의 결재서류가 이렇게 많지?’라고 생각하면서 맨 위에 있는 결재판을 들여다보았다. 부품 소싱 담당자가 생산팀에 구매요청을 제 때 해달라고 보내는 협조 공문이다.       


                                              ◆ 업무협조(건) ◆        


발신 : 구매팀                                                수신 : 생산팀/영업팀 

참조 : 기획팀/품질관리팀                                   일자 : **19. 09. 01    

제목 : 조달기간 장기소요 부품 구매 협조/요청    


 **21년 판매 예상 물량에 소요되는 조달기간 장기소요(Long-Term) 부품 자재에 대하여 아래와 같이 조기구매 대상 현황을 통보하오니 구매요청이 적기에 진행될 수 있도록 협조 바랍니다. 


1. 대상 자재 : **21년 1월 판매물량 대비 **20년 생산(소요) 자재인 '회로기판 조립모듈(이하 회로기판이라 한다)'

2. 발생 사유 : 당사 거래처인 미국 제조사의 비정기 생산으로, 주문 후 약 6~8개월 소요

3. 협조사항

 - **19. 10. 30까지 구매요청 완료 요망

 - 공급 납기는 **20. 05.30로 지정 필요

4. 기타 : 상기 외 장기소요 원자재 발생 시, 즉시 통보 예정

5. 첨부 : 21년 월별 판매 예상 물량 및 20년 생산계획    



 문서가 다소 어렵게 쓰여 있는데 간단히 해석하면 ‘구매팀이 회로기판을 구입하는데 최소 6개월 이상이 소요된다. 그런데 영업팀 판매계획은 **21년 1월로 반영되어 있고, 이를 근거로 수립한 생산계획을 확인해 보니 회로기판이 사용되는 시점은 **20년 6월 이후다. 따라서 생산팀은 적어도 다음 달(**19.10.30)까지는 구매요청을 해 주어야 안정적으로 회로기판이 공급될 수 있다. 왜냐하면 미국 제조사의 제작기간을 충분히 고려해야 되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구매팀이 확인한 사항이다. 회로기판 이외에 조달기간이 오래 걸리는 자재가 추가로 확인되면 즉각 알려주겠다. 아무튼 생산팀은 구매요청을 제 날짜에 빨리해 달라’는 내용이다.   

 

 평소에 큰 문제없이 구매 가능한 자재가 있다. 어디서든 쉽게 구할 수 있는 상용품 또는 협력업체의 협조도가 높은 품목이 그렇다. 반면에 특정한 시점을 놓치게 되면 구매가 무척 힘든 품목도 있다. 협력사가 주문받은 품목을 제작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는 경우다. 그게 수입자재라면 더욱 문제다. 이처럼 조달기간이 장기간 소요되는 원자재는, 구매팀이 수요를 미리 파악하여 충분한 준비 기간을 확보하는 것이 최선이다. 따라서 영업에서 판매물량을 예상하면, 구매는 즉시 장기 소요자재를 구별해야 한다. 그리고 생산으로 하여금 미리 구매요청을 하도록 협조를 구해야 한다. 그래야 생산이 원하는 시점에 원자재가 공급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 구매팀은 판매물량과 생산계획 그리고 협력사 공정 특성까지 알고 있어야 한다. 소싱 담당자가 단순히 생산팀에서 구입해 달라는 품목만 구매해서는 안 되는 이유 중의 하나다.    


 위와 같이 적절한 시점에 사전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구매는 1년 내내 힘들어진다. 즉 장기소요 원자재의 경우 구입 절차를 미리 서두르지 않으면, 결국 구매가 감당해야 할 일거리만 나중에 늘어난다. 소싱 담당자가 구매 시기(timing)를 놓친 수입자재를 예로 들어보자.    


먼저 소싱 담당자는 추가 협상을 해야 한다. 그것도 돈을 주면서 말이다. 15% 이상의 급행료(Expediting fee)를 제시하고 자사의 주문품을 만들기 위해, 잔업(Over Time)이나 특근을 요청하는 것이다. 조달 기간 단축을 위한 특단의 조치로 시간을 돈으로 메꾸는 셈이다. 구매담당자는 ‘시간이 곧 돈이다’라는 사실을 여기서 배우게 된다. 하지만 이것도 항상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주문 물량이 이미 가득 차 있을 경우에는, 거래업체의 생산 일정이 이미 확정되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다 흔들어야 한다. 따라서 거래업체가 급행료를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 경우 협상의 주도권은 거래업체에 있다. 출발부터가 구매에 불리한 상황일 수밖에 없다. 이래저래 거래업체 일정 조정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둘째 소싱 담당자는 거래업체가 자재를 만드는 즉시, 소량이라도  분할 출고를 요청해야 한다. 어떤 식으로든지 계획된 일정에 생산라인은 가동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 달에 한 번 받았던 물량이라면 일주일에 한 번씩, 한 달에 네 번이라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이때 문제는 물류비, 운반비용이 추가로 발생되는 문제가 있다. 역시 돈이 문제다. 이 경우에도 구매는 최대한 원가손실이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따라서 합리적인 방식으로 거래업체와 운반비용 분담을 진지하게 논의해야 한다. 만약 거래업체와 분할 출고에 따른 추가 운반비용 분담이, 도저히 해결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자사가 전액 부담할 수밖에 없다. 운반비용이 생산라인이 멈추어 서는 것보다 원가에 미치는 영향이 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구매 입장에서는 공급의 안정화가 더 시급하다. 따라서 구매물량이 정상화될 때까지 거래업체 모니터링이 중요하다. 최악의 경우에는 이런 짓(?) 즉 분할 공급을 1년 내내 할 수도 있다.    



 셋째 여기저기 있을만한 재고물량을 확인해 본다. 다행히도 장기소요 자재가 상용품인 경우, 동일 자재의 재고가 있을 확률이 매우 높다. 거래업체가 보유하고 있는 다른 고객업체의 물량이거나 대리점 등에 대기물량 형태로 있을 수도 있다. 소싱 담당자는 주요 대리점에 연락하여 일부 물량이라도 구매 가능 여부를 확인하여야 한다. 미주나 유럽에서 생산하는 원료나 부품도, 중국에서 동일 규격으로 제조되는 경우가 최근에는 흔하다. 따라서 규격 등 관련 자료를 바탕으로 대체업체를 중국에서 찾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물론 전반적인 품질 측면에서는 다소 차이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넷째 우리 회사의 생산일정을 바꾸어야 한다. 소싱 담당자가 급행료를 지불하고 분할 출고를 검토하고 재고물량을 확인하는 등 모든 방법을 강구하여 납기 단축을 검토한 결과, 뚜렷한 해법이나 방안이 없으면 결국은 생산일정을 조정할 수밖에 없다. 특히 제작이 필요한 경우, 거래업체의 납기를 바꾸기란 정말로 쉽지가 않다. 기본적으로 제작에 소요되는 시간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이를 무시하면 오히려 품질문제로 인하여 나중에 더 큰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따라서 현실적인 거래업체의 제작기간을 감안하고 생산일정을 조정하는 것도 현명한 방법이다.    


마지막이다. 생산일정 조정이 어렵거나 조정해도 해결방안을 도저히 도출해 낼 수 없다면, 소싱 담당자는 당장 거래업체를 찾아가야 한다. 물론 업체 현장을 방문한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바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직접 쫓아가 성실하게 설명하고 진지하게 협의를 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정중한 자세로 하소연도 할 필요가 있다. 사람이 얼굴을 보고 얘기하는 것과 단지 전화 통화만으로 대화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구매는 어떻게든지 문제 해결을 위한 설루션 도출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회사 내외의 네트워크도 활용하고 협조 공문도 정식으로 발행하여 적극적인 의사표시를 할 때, 거래업체도 여기에 상응하는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소싱 담당자는 그 과정 속에서 문제 해결에 필요한 미세한 열쇠(key)를 발견할 수도 있다. 그것이 곧 ‘구매의 힘’이다.    

생산팀이 구매요청을 늦게 했다손 치더라도, 자재는 필요한 시점에 공급되어야 하는 것이 상식이다. 돈을 주고 물건을 사 오는 것이다.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어느 누구도 구매 때문에 생산라인이 멈춰서는 불행한 사태를 마냥 보고 있지는 않는다. 특히나 회사 경영진은 더욱 그러하다. 따라서 어떤 식으로든지 생산팀이 요청한 시점에, 필요 자재는 입고되어야 한다. 문제는 거래업체에서 제시하는 견적 납기와 회사가 필요한 요구 납기에 차이(gap)가 많다는 데 있다. 사태가 이 정도쯤 되면 ‘생산팀이 구매요청을 너무 늦게 했다느니 또는 구매팀이 미리 챙기지 못했다느니’ 등의 책임소재를 따지게 되는데 별로 의미가 없다. 우선은 생산이 돌아가야 한다. 일단 발 등의 불부터 끄고 봐야 한다. 자재 공급 문제로 인한 회사 매출 계획의 펑크(puncture)는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 하늘이 무너져도 자재는 공급되어야 한다. 구매의 개고생은 바로 그때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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