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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멜 Nov 03. 2019

춤추는 공급계획, 부품 소싱은 어떻게?

CPSM이 알려주는 구매 부서 적응 비법(12)

 

오랜만에 찾아온 K와 저녁식사를 마치고 식당 근처의 카페에 마주 앉았다. K가 묻는다.    


“팀장님, 저희 회사는 자재 공급계획이 너무 자주 바뀌는 것 같아요. 제가 근무한 지 채 한 달도 채 안됐는데 옆에서 지켜보면.. 구매업무가 완전 전쟁터예요.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까지는 상상도 못 했거든요.”

“후훗. 이제 어느 정도 구매쟁이처럼 얘기하군요. 맞아요. 원래 구매가 하는 일이 그래요. 이 바닥이 변수가 워낙 많거든요.”    


그렇다. 구매업무는 예측하지 못한 요인들이 넘쳐난다. 당장 생산 일정이 그렇다. 고객의 요구는 바람에 움직이는 갈대처럼 변한다. 영업의 매출 계획이 거기에 따라 휘날리고 생산일정 또한 같이 펄럭인다(물론 생산의 경우, 인력이나 capa에 따라 생산일정이 변하기도 한다). 그래야 갈대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갈대들이 모여 있는 곳이 바로 시장이다. 시장의 상황에 따라 회사라는 조직은 살아남기 위해 끝없이 변신한다. 여기에는 상생을 원하는 협력업체도 그 뜻을 같이한다. 서로의 거래는 시장에서의 생존을 전제로 가능하다. 어느 한편이라도 숨이 멎으면 정상적인 성장은 담보할 수 없다. 그래서 상호 간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구매는 이러한 협력업체들의 협조를 잘 이끌어내야 한다. 이게 미흡할 경우, 자재 공급계획은 널뛰기 시작하고 생산일정은 느슨해지며 매출 목표는 흔들리게 된다. 결국 구매가 생산과 매출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애기다. 따라서 자재의 조달이나 공급계획을 반영하지 않고, 생산실적과 매출 달성만을 계획하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이다. 그럼에도 자재 공급은 당연한 것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내가 다시 K에게 묻는다.    


"그래, 무얼 보고 그렇게 느낀 거예요"

"저희 소싱 파트 선임이요. 어제 생산팀 담당자와 통화를 엄청 화를 내는 거예요."

"왜요?"

"담당자가 생산계획을 짰는데 자재 수급여부는 전혀 개의치 않고, 잘 들어오겠지 생각하고 일방적으로 짜 버렸나 봐요"    


나는 또다시 K에게 물었다. 그때 그 상황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해 달라고. 그러자 K는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다고 몇 번을 거절하더니, 거듭된 나의 요청에 어쩔 수 없이 애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다음은 K가 설명하는 당시의 상황이다. 참고로 K의 선임자는 박 대리이다.    


“야, 김대리, 생산계획 짤 때 우리 쪽에 구매 가능 여부 좀 묻고 해라. 그냥 말만 하면 물건 들어오는 것아 아니라니까. 젠장! 도대체 몇 번을 애기해야 알아먹을래.”

“박 대리, 정말 미안하다. 위에서 생산계획 바로 달라고 하는데 낸들 어쩔 수 있냐. 그리고 위에선 구매는 신경도 안 써요. 당연한 걸로 안다니까. 너희 팀장한테 얘기해서 우리 팀장하고 한번 푸닥거리하라고 해.”

“야~ 아침부터 헛소리 그만하고, 일단 전화 끊어봐. 나 협력업체들에 연락해서 공급에 문제없는지부터 확인해야 돼. 한 군데라도 문제 있으면 그 생산계획 말짱 꽝이야. 아무 의미 없는 거라고.”

“내 말 좀 들어 봐, 박 대리, 이 생산계획 짜느라고 우리 생산팀이 얼마나 생고생한 줄 아냐? 이게 베스트야. 더 이상 수정, 난 못한다. 그러니까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업체들 조져서 물건 제 때 넣어달라고 그래라. 응. 구매하는 일이 원래 그거잖아.”

“아주 웃기는 소리 하고 자빠져 있네. 원자재가 하나라도 안 들어오면 생산이 되냐? 야! 그리고 뭐, 업체를 조져. 이게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큰일 날 소리 하고 있어. 나중에 네가 이 자리 와서 일할 때 그렇게 해 봐, 난 그렇게는 못하겠으니까, 전화 끊어!”

“야! 야! 박 대리! 아무리 그래도 구매 때문에 라인 끊기면 안 돼. 알았지. 응.”    



구매의 공급계획은 늘 변수가 많다. 협력업체의 사정에 따라 구매담당자는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다. 어디 협력업체의 수가 좀 많은가? 그중의 한 곳이라도 이상이 생기면 소싱 담당자의 마음은 다급해진다. 위의 대화에서 구매팀 박 대리의 마음이 그렇다. 따라서 공급계획에 영향을 주는, 협력업체의 변수는 구매에게 매우 중요한 관리 포인트다. 협력업체에 돌발 변수는 늘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산계획을 수립할 때 원자재 공급 가능 여부를 사전에 점검해야 한다. 제 아무리 훌륭한 생산계획을 짜면 뭐할 것인가? 원자재가 들어오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다. 이야기를 끝내자 궁금한 게 있다며 K가 나에게 말을 건넨다.    


"그런데 팀장님, 협력업체에 돌발변수가 뭐가 있나요? 자체적으로 사전에 점검하고 예방하면 충분히 막을 수 있지 않나요?"

"물론 그렇게 생각할 수 있어요. 원자재는 또 업체가 꾸준히 공급했던 것이기도 하고. 생산설비나 제조시설에 갑자기 이상 현상이 발생할 리는 없지요."

"그러면 됐잖아요. 굳이 업체에 확인을 할 필요도 없는 거잖아요."

"최소한, 업체 입장에서도 생산계획을 짜야하니까 미리 알려줘야지요. 또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업체에 발생할 수도 있고 실제 그러기도 해요."

"어떤 일들이죠?"

"자, 내 말 잘 들어요."    


나는 내가 실제로 경험했던 협력업체 돌발변수 몇 가지 사례를 다음과 같이 K에게 알려 주었다. 먼저 협력업체의 화재사고 발생이다. 당시 언론에 보도된 내용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대형 화재로 생산라인과 보관창고 등 공장시설이 손실된 A사에 대한 주식 거래가 정지됐다. A사의 거래 재개 여부는 다음 달 중순 이후 가려질 전망이다. 배터리 부품을 생산하는 A사는 지난 22일 충남 △△ 공장에서 발생한 화재로 인해 최소 6개월 동안 생산을 중단한다고 24일 공시했다. A사는 이번 화재로 건물과 기계장치는 물론 차량운반구, 비품, 재고자산 등의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 공장에서 생산한 제품의 매출이 이 회사 전체 매출의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사실이다. A사 관계자는 “관계사 및 협력사와의 생산 협조를 통해 일부 제품을 제작하면서 신속히 복구할 계획”이라며 “복구 자금은 화재 보험금 등으로 해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공장은 화재 등으로 손해를 볼 경우 상당 금액을 돌려받을 수 있는 재산 종합보험에 가입돼 있다.』    

아! 이런 경우에는 정말 대책이 없다. 눈앞이 캄캄해지고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다. 구매담당자의 억장이 무너진다. 당장 필요한 자재를 어디에서 구한단 말인가? A사 관계자는 “관계사 및 협력사의 협조를 받아 제작하면서 생산라인을 신속히 복구할 계획”이라고 말하지만 이는 공식적인 답변에 불과하다. 달리 할 말이 뭐가 있겠는가? 하지만 그런 대책으로 정상적인 자재 공급은 가능하지 않다. 따라서 구매는 전체 협력사 공급계획을 송두리째 수정해야 한다. 이게 어디 쉬운 일인가? 그러나 그게 현실이다.    



두 번째로 협력업체의 부도이다. 필자가 원자재 구매담당자로 근무했을 당시, B사가 기억난다. B사가 심각한 자금난으로 경영위기를 맞았을 때, CEO가 직접 찾아와 자재의 조기 입고를 당사에 요청한 적이 있었다.  

   

“사장님, 사정은 잘 알겠지만 당장 사용하지도 않을 부품을 1년 전에 받기는 좀 그래요. 보관 문제도 있고 재고부담도 만만치가 않거든요. 그리고 금액도 적은 금액이 아니잖아요. 1억이 넘어요.”

“그래서 대리님한테 간곡히 말씀드리는 겁니다. 물론 제가 무능해서 그렇습니다만 행여 저희 회사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원청업체도 타격이 크잖아요. 저 좀 살려주세요.”

“아니, 제가 무슨 힘이 있나요? 일단 위에 보고는 드려 볼게요. 그리고 제가 할 애기는 아니지만 굳이 위험부담을 안고 그렇게 신규 사업을 확장하시려는 이유를 잘 모르겠네요?”

“그러니까 말입니다. 다 먹고살려고 하는 짓인데 그게 이렇게 어렵네요. 하하하. 아무튼 대한민국에서 중소기업 사장으로 살아가기가 정말 힘드네요. 대리님이 위에 보고 좀 잘해주세요. 어차피 대리님 손에 달린 거잖아요.”     


당시 B사는 납품대금이라도 미리 댕겨 받아야 자금운용이 가능할 정도로 어려웠다. 필자는 이런 상황을 먼저 구두로 보고하고, B사를 직접 두세 번 방문해 현장을 확인하였다. 최종 문서 기안을 올리기 전에 B사의 CEO와 구매팀장의 면담이 이루어졌다. 구매 입장에서는 조기 입고를 통해 B사를 지원하는 것으로 방향이 잡혔고, 유관부서의 협조 등을 통해 결국은 경영진의 최종 결재를 받아냈다. 협력업체의 부도 방지를 위해 공급계획을 앞당겨 수정한 셈이다. B사는 그 후에도 조기 입고를 한두 번 정도 더 요청받고 나서야 어둠의 터널을 벗어났다. 그게 벌써 10년이 넘은 일이다.    


세 번째, 멀쩡했던 자재가 공급이 중단 또는 중단이 예상될 때다. 그동안 안정적으로 구매되었던 자재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이유로 공급이 불가능하게 되는 경우다. 협력업체의 책임도 아니다. 예를 들어 생산 공정에 필요한 세정제를 지속적으로 공급받고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그 원자재가 환경규제물질로 지정된다면 더 이상의 구매나 공급은 불가능해진다. 또한 국가 간의 정치적인 갈등으로 더 이상 수입이 어려워지는 경우도 있다. 최근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로 인한, 반도체 핵심 자재인 폴리이미드, 포토레지스트, 에칭 가스(고순도 불화수소)의 공급 중단이 대표적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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