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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멜 Nov 11. 2019

소싱, '꽈대기'와 '시스템'이 공존한다.

CPSM이 알려주는 구매 부서 적응 비법(13)


구매가 하는 일을 보면 의외로 손으로 하는 작업이 많(았)다. 구매 품의서를 수기로 작성하고 발주서를 일일이 프린터로 출력해서 거래처에 팩스로 송부한다. 때에 따라서는 거래처별로 계약서를 맺어야 한다.이걸 다 담당자가 직접 해야 한다. 이를 업계의 전문용어로 ‘꽈대기’라고 부른다. 완전히 ‘노가다’ 작업이다. 머리를 쓰기 보다는 반복적인 일에 지치고 힘만 사용하게 된다(아참, 품의서 기안은 머리가 다소 필요하다). 문제는 여기에 적지 않은 시간이 소모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꽈대기 작업을 줄여야 한다. 그래서 ERP와 같은 전산시스템이 필요로 하게 되었다.   

  

예전에 한 번 K가 나에게 ERP가 뭐냐고 물어봤던 적이 있다. K가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에 입사하기 전의 일이다. 내가 그런 프로그램을 어떻게 알고 있냐고 물어봤더니, 구매업무를 할려면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것으로 자기는 주위에서 들었단다. 맞는 말이다. 구매업무의 대표적인 전산 시스템이 바로 ERP다. ERP와 같은 전산시스템이 도입될 수록 담당자의 꽈대기는 줄어들게 된다. 당연하다. 따라서 많은 기업들이 꽈대기를 줄여 줄 전산시스템을 도입하고 운용하는데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꽈대기는 시스템에 맡기고 구매담당자는 머리 쓰는 일에 집중하자는 것이다. 결국 전산시스템이 발달해야 구매담당자의 역량도 발휘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전산시스템은 한순간에 완벽하게 구현되거나 곧바로 정착되지는 않는다. 조직의 문화나 자재의 특성에 따라 나름의 개선절차와 발전과정을 거치게 되어 있다. 자, 다음은 내가 K에게 설명해 주었던, 구매업무의 전산시스템 발전과정이다.    


초창기     


모든 구매업무가 수(手)작업으로 이루어진다. 구매요청에서부터 발주 및 납품 확인까지 온통 서류와 문서로 넘쳐난다. 때로는 구매담당자가 현찰을 들고 직접 업체나 시장에 가서 자재를 사가지고 오기도 한다. 순도 100% 꽈대기였다. 이제 막 창업한 회사나 구매부서가 별도로 없는 조직에서도 볼 수 있다. 시기적으로는 1990년대 초반까지도 제조기업의 일부에서 사용했던 구매방식이다.    


“과장님, 다음 주에 필요한 자재 사러 나가겠습니다.”

“어! 그래 오늘이 벌써 금요일이지. 근데 구매할 자재가 많나?”

“다다음주가 휴가 기간이라 그런지 평소보다 요청 건수가 별로 많지는 않아요.”

“그럴 거야. 업체는 어디 어디 들릴 건가?”

“오전엔 밸브업체 A사와 시약업체 B사를 들렸다가, 오후에는 공구업체 C사하고 유공압 업체 D사 정도를 방문할 생각입니다.”

“제법 양이 되겠구만. 싣고 올 차량은?”

“1톤 업무차량 배차 해 놨습니다.”

“그래. 알았어. 운전 조심하고 너무 늦지 않도록. 잘 갔다 와.”    



도입기     


구매업무에 전산시스템을 도입한다. 일단 종이 서류가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한다. 다른 부서도 마찬가지이다. 자기 업무에 필요한 전산시스템을 구현한다. 구매관리 따로, 생산관리 따로, 인사관리 따로 각자 업무 특성에 맞는 프로그램 체계를 운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부서 간의 전달체계는 옛날 방식 그대로이다. 따라서 구매와 생산, 구매와 개발 사이에는 여전히 서류와 문서가 전달기능을 유지한다. 그렇다보니 이런 방식은 종종 부작용을 낳기도 하는데, 중간에 구매요청서가 분실되어 팀 간의 분란이 일어나는 경우가 그것이다.    


“박대리, 생산팀 구매요청 서류 접수 안 됐냐.”

“네, 팀장님. 이 친구들 나중에 또 구매에서 자재 늦게 넣어 주었다고 오리발 내밀까봐 계속 독촉해도 반응이 없네요.”

“아닌데. 오전 주간회의 때 생산팀장 말로는 구매요청 지난 주 초에 결재했다고 하던데.”

"그래요. 아직 도착한 게 없습니다. 접수대장 다시 확인해 보겠습니다.”

“야! 또 담당자 중 누군가의 책상 안에 잠들어 있는 거 아니야. 빨리 확인해 봐. 저번에도 한 번 생산팀 담당자 책상 밑에 쳐 박혀 있는 거 한 달 뒤에 찾아냈잖아.”

“네. 알겠습니다.”

“글구, 전산팀 애들은 뭐래. 구매요청 전산화 해달라고 한 게 언젠데 아직까지 아무 반응이 없냐. 이거 전산화하지 않으면 이런 일이 매번 발생한다고.”

“지난주까지 확인한 바로는.. 올해 투자에 반영했고요. 조만간에 TFT 만들어서 다음 달부터 본격적으로 움직인다고 합니다.”    


발전기     


대부분의 서류가 전자 문서화 된다. 구매요청서, 결의서, 발주서 등이 모두 On – line 으로 운용되면서 구매담당자 책상 위에 서류가 사라지는 단계이다. 또한 ERP(Enterprise Resource Planning 전사적 자원관리)가 회사 전산시스템으로 확산되면서 다른 부서업무와 유기적으로 작동된다. 오라클 및 SAP 등 각종 패키지 프로그램이 등장하는 시기이다. 부서 간에도 서류와 문서는 최소한으로 유지한다. 물론 완벽하지는 않다. 이 세상에 100% 란 없다. 구매 입장에서는 시스템의 도입으로 구매이력과 발주실적, 거래정보 등의 관련 자료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이 정도만 해도 훌륭하다. 하지만 정보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담당자의 노력이 추가적으로 필요하다. 자사의 특성이 반영되지 않은 패키지 프로그램의 한계이다.    


“김대리, 작년도 월별 구매실적 좀 뽑아봐.”

“네, 팀장님. 근데 용도는.”

“아니, 별다른 건 아니고 업체별 실적 좀 보게.”

“구매액은 바로 나오지만 그건 좀 시간이 걸리는데요.”

“얼마나 걸리지?”

“아무래도 이틀 정도는 주셔야.”

“이틀씩이나, 그건 너무 긴데.”

“다른 업무도 밀려 있고, 업체별로 다 꽈대기를 해야 되는 작업이라서.”

“야! 김대리, 그거 ERP 전산 돌리기만 하면 되는 거 아니야?”

“로(raw) 데이터는 팀장님 말씀대로 ERP에서 돌리면 되지만 어차피 업체별로 다운받아 집계하고 가공은 제가 해야 되거든요.”

“뭐 ERP가 그래. 사람 손이 또 들어가야 되는 거야.”

“저희 회사에 도입된 ERP는 아무래도 패키지 사양이다 보니.”    



확장기    


구매를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협력업체도 시스템 활용이 가능해야 한다. 기존의 전산 및 정보시스템은 순전히 내부 고객을 위한 프로그램이다. 특히 경영진의 의사결정을 위한 도구의 성격이 강하다. 대부분의 회사들의 경우, 외부 고객을 위한 시스템 구축에는 관심도가 낮다. 하지만 미래의 경영환경은 협력업체의 도움이 절대적이다. 동시에 공정하고 투명하게 구매가 진행되어야 한다. 견적의뢰, 입찰 및 업체선정, 계약체결, 입고주문 등은 업체들 간의 이해관계가 치열하게 얽혀있다. 공정하지 않거나 투명하지 않은 결정은 반드시 업체들의 뒷말이나 불만을 낳게 한다. 따라서 담당자의 수작업은 외부의 불필요한 오해를 일으킬 수 있다. 외부 고객과의 전산시스템이 절대적이고 시급하게 필요한 까닭이다. 이를 위해 일부 회사들은 자사 특성에 적합한 시스템을 구입하거나 외주업체에 의뢰해 만들기도 한다.    


“김과장님, 소문 들으셨어요?”

“무슨 소문?”

“기획팀 애들이 그러는데 구매시스템 개선방안을 사장님께 보고 드렸다는데요?”

“개들이 늘상 하는 일이 그거잖아. 새삼스러운 것도 아닌데 뭐.”

“과장님 말씀이 맞는데요. 근데 이번에는 분위기가 많이 다르데요.”

“기획 애들 또 설레발치는 거겠지. 개들 항상 그러잖아.”

“에이 아니라니까요. 이번에는 외부업체에 용역을 준다는 거예요. 아예 컨설팅까지 포함해서요. 용역비도 몇 억대라는데 이거 장난 아니잖아요.”

“그으래. 근데, 사장님이 과연 승인 하실까?”

“보고서 네 번째 리젝(reject) 당하고 이번에 다시 올리는 거래요. 기획 애들 독기가 잔뜩 올라와 있어요.”

“하긴 우리 회사 구매시스템이 구닥다리이긴 하지.”

“그것도 그거지만 작년에 B사가 업체선정 절차에 수긍하지 않고, 사장님한테 투서까지 넣었잖아요. 아마 그게 결정적인 게 아닌가 싶어요.”

“그렇지. 작년에 그런 일이 있었지. 구매팀 아주 박살났지. 그 말 들으니까 생각나네. 올해부터는 하도급법 규제도 장난이 아니라는데.”

“야. 이러면 누가 구매팀 가고 싶어 하겠어요. 완전히 3D 업종 같은데. 구매 애들 퇴근 시간도 요즘 보면 계속 늦던데.”

“글쎄 말이다. 선배들 말 들어보면 옛날 구매팀은 끗발 엄청 좋았다고 하던데. 그땐 서로 가고 싶어서 난리였대.”    


100% 전산화된 구매시스템이란 없다. 시스템이라는 컴퓨터 도구를 사용하는 것도 어차피 구매담당자, 사람이기 때문이다. 시스템이 제아무리 좋아도 어차피 문제해결은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이다. 균형이 중요하다. 인터넷을 이용한 On-line 업무와 직접 사람을 만나고 협상하며 회의하는 Off-line 업무는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On-line의 기본이 효율성의 극대화라고 한다면 Off-line은 여전히 구매담당자의 역할과 역량이 중심이다. 따라서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균형과 조화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번듯한 전산시스템만 도입되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고 믿는 경영자도 의외로 많다. 이른바 시스템 숭배자들이다. 필자가 근무하는 회사에도 이런 사람들이 많다. 시스템이나 프로그램 판매 회사만 좋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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