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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멜 Nov 16. 2019

MRO 소싱, 속도가 우선이다.

CPSM이 알려주는 구매 부서 적응 비법(14)

    

오늘은 오후에 협력업체 방문 계획이 잡혀 있다. 개발용 원자재를 공급하는 협력사다. 회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어, 시간에 대한 부담은 별로 없었다. 방문 전에 최근의 발주 이력과 입고 현황 그리고 거래실적에 관한 자료를 정리하였다. 특별한 이슈가 있어서 가는 것은 아니고 정기적인 정보 교류가 목적이다. 그래서 다소 발걸음이 가볍다.    


오전에 급한 업무를 마치고, 회사 건물을 나와 협력업체로 발길을 돌렸다. 협력사 주요 공실의 작업현장을 우선 확인하고 사무실로 올라가 대표와 티(tea) 타임을 가졌다. 그는 개발물량에 대한 아쉬움과 함께 양산물량에 대한 기대를 감추지 않았다. 가동률 측면에서는 단발성인 개발 자재보다는 지속적인 양산 자재가 무엇보다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는 모든 개발 관련 협력사의 바람이다. 그리고 사장은 올해 안에 법인 사업자로 전환할 계획과 좀 더 넓은 장소로 공장을 이전할 계획을 알려 주었다. 다행이다. 업체를 방문할 때마다 느끼는 점이 있다면, 개발업체의 발주물량이 많았으면 하는 점이다. 특히 오늘 방문한 협력사는 필자가 근무하고 있는 회사의 매출이 절대적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작별 인사를 하는 대표를 뒤로하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회사로 발길을 돌렸다. 바로 그때 휴대폰에 문자 하나가 도착하는 신호음이 들렸다. 확인해보니 K다.    


팀장님, 지난주까지 원부자재 OJT 기간이 끝나고 다음 주부터는 MRO 자재를 배웁니다. 그런데 그쪽 파트장님이 워낙 깐깐하다고 소문이 자자해서요. 제가 미리 알아야 할 내용이 없을까요? 팀장님이 좀 알려 주세요. 많이 바쁠 실 텐데 죄송합니다.    


뭐라고 답을 해 주지? 한동안 생각하다가 K에게 답장을 쓰기 시작했다.    


구매팀에 근무하다 보면 갑자기 입고 요청을 받게 되는 경우가 많아요. 이른바 긴급요청이지요. 특히 MRO(Maintenance Repair & Operation) 소싱 담당자가 경험할 확률이 매우 높아요. 전에도 얘기했던 것처럼, MRO가 기업 활동을 유지(Maintenance)하고 설비를 보수(Repair)하고 효율적인 운영(Operation)을 위하여 투입되는 자재를 말하는 거잖아요. 즉 제조업의 생산 활동과는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으나 간접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투입되는 자재들을 일컫지요. 흔히들 간접구매라고도 해요. 어때요. 기억나지요. 더 자세히 애기해 볼까요.    


유지 및 보수(Maintenance & Repair) 자재로는 기계부품, 전기 스위치, 볼트와 너트 등 설비와 공사 그리고 안전용품 등이 대표적이어요. 운영(Operation) 자재로는 사무용품(Office Supply), 전산소모품, 비품 등을 들 수 있고요. 물론 회사에 따라 구매권한을 한 조직에 집중하거나 여러 부서에 분산하기도 하지요. 만약 구매팀 한 곳에서 구입을 하게 되면, 구매 파워는 막강해져요. 반면에 업무의 효율성을 살리기 위해 전산장비는 전산팀, 사무용품과 비품은 총무팀, 위탁연구와 같은 용역성 구매는 기획팀 등에 구매권한을 위임하는 경우도 있어요. K가 근무하는 곳은 어떤 방식으로 하는지 궁금하네요. 아무튼 어느 방법이 옳다거나 그르다고 단정할 수 없어요. 회사의 이익이 되는 방법을 선택하면 될 테니까요. 참고로 내가 근무하는 회사는 업무의 신속성을 위해 구매권한을 분산하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어요. 아무래도 사용하는 부서나 팀에서 바로 구매를 하게 되면, 시간이 단축될 수 있잖아요. 


말이 나온 김에, 우리 사무실 MRO 소싱 담당자인 김대리 애기 좀 해 볼게요. 아무래도 그게 K 입장에서는 가장 피부에 와 닿겠네요. 지난주인가? 김대리가 생산팀 구매 요청자 하고 한참 동안 격렬하게 통화 한 내용을 들었어요. 아마 김대리는 내가 사무실에 없는 걸로 착각한 모양이에요. 당시 상황을 그대로 옮겨 볼 게요.

   

“여보세요. 김대리. 나야, 나! 생산에 박 대리. 지난주에 내가 구매 요청한 거 있잖아?”

“야, 생산팀에서 요청한 게 어디 한두 건이야. 날짜를 말해봐.”

“가만있자. 그게 아마... 21일 목요일이네.”

“좀만 기다려봐. 21일.. 21일.. 서류들이 어디 있지. 아, 여기 있네. 그래 대외 안전점검 지적사항 후속조치 건으로 구매요청했네. 근데 뭐? 납기도 아직 멀었네.”

“맞아, 우리가 요청했던 납기는 다음 주까지냐.”

“그런데 왜? 기다리면 되지, 출근하자마자 새벽 댓바람부터 전화를 했어?”

“야, 내가 그냥 했겠냐. 어제 오후에 사장님이 안전팀장 하고 함께 생산 공실 점검했잖아. 공실 돌면서 왜 아직까지 후속조치가 제대로 안 됐냐고 사장이 우리 팀장하고 안전팀장 졸라 깼어. 내일까지 다 조치 완료해 놓으래.”

“뭐라고? 내일. 야! 안 돼, 아직 팀장 결재도 못 올렸단 말이야. 그리고 대외 안전점검도 아직 멀었잖아.”

“그것 때문에 안전팀장 엄청 깨졌어. 네 말대로 후속 조치 이행여부 확인이 원래는 다음 달이었는데, 갑자기 앞 당겨진 거야. 이번 주말 아니면 다음 주 초로. 근데 그걸 안전팀장이 사전에 감지를 못했나 봐.”

“야! 근데 마지막 불똥은 꼭 구매로 떨어지냐? 그리고 네가 더 잘 알겠지만 그게 어디 내일까지 들어올 수 있는 품목들이냐.”

“난 모르겠다. 다른 것은 하루 정도 여유가 있는데 부동액은 내일 반드시 들어와야 돼. 뉴스 봤지. 내일 밤부터 기온이 급격히 떨어진데. 사장님도 뉴스 보셨나 봐. 부동액 엄청 강조하시고 가셨어. 보일러 동파되면 가만 안 두시겠단다.”

“인마, 그러면 구매요청을 빨리빨리 했어야지.”

“그게 말이 되는 소리냐. 내가 구매요청하면서 날씨까지 예측하리.”

“야~ 그럼 나는 ‘네가 금 나와라 뚝딱’하면 금방 나와? 내일 당장 어디서 부동액을 가지고 오냐고.”    

 

통화가 끝나자 나는 김대리를 불러다가 구매 진행 사항을 물어봤어요. 담당 팀장이고 또 사장님이 직접 지시하신 내용이라 신경을 안 쓸 수가 없잖아요. 하지만 대체로 구매는 소싱 담당자가 하는 업무를 웬만해서는 간섭하지 않아요. 그만큼 담당자의 권한이 그만큼 크다고도 할 수 있어요.     


먼저 우리 회사의 MRO 구매방식을 설명해 줄게요. 소싱 담당자가 구매요청을 접수하게 되면 관련 협력업체에 견적요청서를 뿌려요. 견적서를 넣어 달라는 애기예요. 물론 2개 이상의 복수 업체를 협력업체群(POOL)에서 임의로 소싱 담당자가 선택을 해요. 협력업체群은 가공, 금속, 화학, 전기, 기타 등 업종별로 구분되어 있어요. 수년간 우리 회사와 거래관계를 유지해 온 협력사(들)이지요. 이번 건은 기타에 국내 대행업체 흔히 말하는 종합상사에 해당하는 품목들로 볼 수 있겠네요. 이제는 김대리한테 직접 애기를 들어 봐야겠어요.    



“김대리, 방금 통화했던 구매 건은 진행이 어디까지 된 건가요?” 

“네. 팀장님. 생산팀 박 대리가 구매 요청한 품목들은 지난주 금요일에 이미 A사와 B사에 견적요청을 의뢰한 상태입니다. A사 견적서는 오늘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메일을 통해 도착 확인했고요.”  

“B사는요?” 

“B사도 오후 정도에는 견적서를 받아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B사가 견적 회신이 원래 좀 늦는 편인가요? 생산팀에서 아침부터 저렇게 난리인데 마냥 기다릴 수만 없지 않겠어요?” 

“네. 그래서 곧바로 B사에 독촉 전화를 할 생각입니다.” 

“두 회사를 비교하면 어때요? 소싱 담당자 입장에서” 

“A사가 좀 답변이 빠른 편입니다. 사장이 정부 산하 기관 공단에서 구매팀장을 했던 분이라 나름 센스도 있고요. 하지만 직원이 사장과 사무실 여직원 단 둘이라, 사장이 자리를 비우면 당장 일이 진행이 안 되는 단점이 있습니다. 반면에 B사는 A사에 비해 제법 규모가 있고요. 사장도 이 바닥에서 젊었을 때부터 고생해서 나름 성공한 자수성가형입니다. 지금은 직원도 한 10명 가까이 되고요. 상당히 보수적으로 회사를 운영하는 성격이라, 반응이 그리 빠르지 않은 편입니다.”  

“그렇군요. 그래 이제 어떻게 진행할 건가요. 특히 부동액이 당장 급하다는데” 

“최대한 빨리 B사의 견적서를 접수해서요. 두 회사의 견적서를 비교한 후에, 경쟁우위가 있는 업체에 구매를 결정하도록 하겠습니다.” 

“경쟁우위라는 게 가격인가요? 아니면 납기?” 

“우선 구매요청 품목들이 상용품이라 품질에는 크게 차이가 없을 겁니다. 따라서 가격과 납기로 판단을 해야 하는데” 

“그렇지요. 통상적으로 QCD 즉 품질(Quality), 가격(Cost), 납기(Delivery)가 기준이지요.” 

“이번 건의 경우는 두 회사의 가격의 큰 차이가 없다면, 납기를 기준으로 판단할 생각입니다.

“가격의 큰 차이가 없다는 게 대략 어느 정도를 말하는 거지요?” 

“제 생각에는 15% 안팎입니다.” 

“그러면 예를 들어 A사가 115천 원이고 B사가 100천 원이어도, A사가 납기를 내일까지 맞춘다면 그쪽으로 구매를 하겠다는 말이네요.” 

“네.” 

“그러면 우리 회사 입장에서는 15천 원을 손해 보는 것 아닌가요?”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그렇습니다. 하지만 부동액이 내일까지 들어오지 않아서 만약 밸브가 동파라도 된다면 그 손실액은 15천 원보다 훨씬 클 것이기 때문에 납기가 우선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저도 그 말에 동감합니다. 하지만 김대리가 미리 부동액을 확보했다면, 물론 그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15천 원을 버는 거잖아요. 물건을 사는 구매가 돈을 버는 셈이지요. 내가 김대리를 탓하려고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니에요. 상황에 따라서는 납기가 가격보다 중요할 수 있어요. 다만 구매가 중요하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어서 그러는 거예요. 구매금액이 크다고 생각해 보세요. 소싱 담당자의 판단에 따라 회사가 절감(Save)할 수 있는 여지가 상당하지요.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걸 잘 몰라요.” 

“말씀 듣고 보니 그렇네요, 팀장님. 제가 그 부분까지는 생각을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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