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매란 무엇인가?(No.1)
K는 제조기업 구매부서에 근무한다. 특히나 그가 다니는 회사는 방산물자(쉽게 말해 무기체계)를 만드는 방산업체다. 회사에서 그의 역할은 구매담당으로서 물건을 사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물건을 사는 것은 아니다. 회사가 생산하는 최종 완성품 제작에 필요한 물품만 구입한다. 이런 구매품을 회사에서는 ‘자재(materials)’라고 하고, 이를 돈을 주고 사는 것(buy)을 ‘구매(purchasing)’라고 칭한다.
K는 각종 자재를 구입하여 생산부서에 공급한다. 물론 때에 따라서는 개발부서가 필요로 하는 자재도 구매하고, 공무 부서나 품질부서에서 요청하는 자재도 구매한다. 그래도 가장 큰 내부고객은 생산부서다. 제조업체에서는 생산부가 가장 덩치가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 달라는 자재도 다양하고 빈번하다. 중요한 것은 K가 다루는 구매품(자재)들은 반드시 최종 완성품 제작(그것이 생산이든 개발이 든 간에)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이다.
이처럼 구매란 자재를 돈을 주고 구입하는 것이다. 간단하게 표현하자면 그렇다. 이를 좀 더 멋있게 포장해서 설명해보자. 구매란 어떤 주체가 상당한 반대급부인 대가를 지불하고 필요한 물품을 취득하거나 서비스(용역)를 빌리는 것이다. 서비스를 취득하는 것도 일반적으로 구매에 포함시킨다. 다만 자재가 유형의 물품이라면 서비스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으로 일정한 규격이나 절차에 따라 행해지는 사람의 노력이라는 점이다.
제조기업 측면에서 한정해 보면, 구매란 기업이 필요로 하는 자재를 사용부서의 요구사항을 만족시키면서 최적의 조건으로 확보하는 활동을 말한다. 그렇다면 회사 내부의 사용부서가 요구하는 자재의 종류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여기에는 생산이나 개발 활동에 필요한 원재료, 부품, 소모품, 설비 등이 있다. 구매부서는 이러한 자재를 외부에서 구매품 형태로 구입해야 한다.
이러한 구매품도 유형이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상용품과 주문 제작품이 그것이다. 상용품은 표준품이라고도 하는데, 시장에서 누구나 쉽게 구입할 수 있다. 반면에 주문 제작품은 특정한 규격을 요구하는 고객 요청에 의하여 제작되는 특수한 품목을 의미한다.
물론 구매와 유사한 개념도 있다. 조달(procurement)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는 서로 차이가 있다. 구매가 대가를 지불하고 외부로부터 자재나 서비스를 구입하는 기능이라면, 조달은 반드시 대가의 지불이 수반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다르다. 그래서 조달은 정부나 공공기관에서 많이 쓰인다. 예를 들어 전쟁과 같은 위급한 상황이 발생하면 정부는 무상으로 민간의 물자를 활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넓은 의미에서 조달도 구매에 포함된다는 것이 통상적인 해석이다.
아무튼 자재는 K가 근무하는 ‘구매부서’를 통해야만 구입할 수가 있다. 물론 개별 회사의 특성에 따라 구매방식은 조금씩 달라질 수도 있다. 어쨌든 그래서 구매담당자는 되게 바쁠 수밖에 없다. 구매부서가 다른 조직과 크게 다른 점이 있다면 돈 쓰는 것에 특화된 조직이라는 점이다. 다른 부서와 달리 구매 조직은 자재를 구입하기 위하여 회사 돈을 주로 사용하는 부서다. 돈을 쓰는 부서이다 보니 자재를 값싸게 사는 것이 지상 최대의 과제다. 그게 회사의 이익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회사의 내부감사 일 순위 대상이다. 회사 돈을 제대로 사용했는지를 따져 보는 것이다. 구매담당 입장에서는 이것도 상당히 귀찮은 일이다.
일부 기업에서는 자재 이외의 서비스까지 구매부서에 담당하는 곳이 있다. 그런데 구매부서 입장에서는 자재만으로도 업무는 충분히 차고 넘친다. 따라서 구매가 주로 다루는 대상은 역시 자재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K 역시도 서비스를 구매하지 않는다.
고로 앞으로 쓰게 될 이 글은, 주로 자재와 구매에 관한 이야기다. 경우에 따라서는 물류도 대상이 될 수 있겠다. 참고들 하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