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매의 근간이 되는 구매방침

by 카멜

금요일 출근길은 언제나 발걸음이 가볍다. 이른바 불금이다. 그래서 나는 평소보다 좀 일찍 집을 나서는 편이다. 오늘도 마찬가지다. 사무실에 도착해보니 역시나 나 말고는 아무도 없다. 약간의 여유로움을 가지고 커피를 마신 후에, 천천히 내 책상 앞에 앉았다. 정면에 우두커니 자리한 PC를 켜자마자, 간밤에 와 있는 메일이 우르르 쏟아져 나온다. 하나 씩 클릭을 해 가면서 위에서부터 메일을 확인하는 과정 중에, 중간에 K가 보낸 메일이 눈에 들어온다. 무슨 내용일까?


팀장님!

안녕하세요? 저 K입니다.

지난번 김밥 회동(?)은 저에게 너무나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다음에는 저녁 식사를 여유 있게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때는 제가 사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팀장님, 또 궁금한 게 있어서 이렇게 메일을 보냅니다.

어제 저희 구매팀 하반기 보고회가 있었습니다.

각 팀이 사장님께 상반기 실적과 하반기 계획을 보고하는 자리인데요.

어제는 구매팀 순번이라, 구매팀장과 팀원들이 참석했습니다.

물론 저는 처음이라 무척 긴장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사장님이 구매팀장을 엄청 혼내시는 거예요. '왜 아직까지 구매방침을 만들지 않았냐? 내가 지시한 게 올해 초다. 우리 정도 회사 규모에 구매방침이 없다는 게 말이 되냐'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제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회사의 구매방침은 사장님이 직접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게 CEO의 구매 의지를 외부에 알리는 거라고 예전에 팀장님이 말씀하셨잖아요.

그리고 꼭 회사에 구매방침이 있어야 하는 건지요? 없으면 안 되는 거예요.

혹시 팀장님 회사에도 구매방침이 있으세요?

바쁘시겠지만 빠른 답변을 부탁드리겠습니다.

K 올림.



K의 메일을 읽고 나서 한참을 생각했다. 우리 회사의 구매방침? 있다. 그렇다면 K가 말했던 것처럼 회사에 구매방침이 반드시 있어야 하는가? 아니면 없어도 무방한 것인가? 실제로 없는 회사도 적지 않다. 하지만 이게 없으면 구매에 관한 회사의 로드맵이 없는 것과 같다. 구매 경영에 있어서 회사 즉 CEO가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기계적으로 구매만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극단적으로 심부름센터로 전락할 수도 있다. 더욱이 기업의 구매전략은 구매방침에 기반하는 것이 지극히 정상적이다. K 회사의 사장님도 이런 부분을 지적하신 것이 아닐까?



구매전략 달성을 위한 추진계획은 구매팀의 기획파트가 수립한다. 구매방침도 마찬가지다. 기획파트가 초안을 마련하고 경영진의 검토를 거친 후에, CEO의 철학과 의지를 반영하여야 한다. K 회사의 사장님이 구매팀장에게 구매방침을 수립하지 않았다고 질책을 하였던 것도 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구매방침에는 해당 기업의 비전(VISION)과 미션(MISSION) 그리고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GOAL)가 드러나 있어야 한다. 기획파트는 이를 근거로 구매팀의 한 해 농사인 전략과제 추진계획이 작성한다. 그해 특별한 이슈가 없다면 전략과제도 큰 변화가 없을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현업의 구매담당자들은 구매방침과 전략과제를 항상 염두 해 두어야 한다는 점이다(필자도 그래서 업무수첩 맨 앞장에 복사본을 붙이고 다닌다). 또한 담당자별로 자기의 업무목표에 구매방침과 전략과제를 반영해서 성과지표 산출의 근거로 반드시 활용하여야 한다. 조직의 방향과 일치되지 않는 자기만의 업무란 아무런 의미가 없다.


PC 모니터 너머로 사무실 출입문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팀원 중의 누군가가 출근을 하는 모양이다. '팀장님, 안녕하세요?'라는 낯익은 목소리가 귀에 다가온다. 이제 K에게 답장을 보내야겠다. 좀 있으면 업무시간이 시작된다. 간단하게 핵심만 정리해서 메일로 송부하자. 어차피 자세한 내용은 만나서 설명하는 게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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