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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멜 Sep 15. 2019

K, 입사를 결정하다

CPSM이 알려주는 구매 직무 취업 비법(02)


문자를 보내고 나서 일주일 뒤에 K로부터 연락이 왔다.    


“안녕하세요. 팀장님. 저 K입니다. 지난주 팀장님의 문자를 받고 나서 한참을 고민했습니다. 가야 되나 말아야 되나? 결국은 팀장님 말씀대로 지원을 했고요. 며칠 전에 면접을 끝마쳤고 어제 합격 통보를 받았습니다. 다음 주부터 출근입니다. 당장은 제 마음에 차지는 않지만 최선을 다해 볼 생각입니다. 구매업무는 처음이라 상의할 일이 있으면 종종 연락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K는 원래 대기업 구매팀을 희망하고 있었다. 면접도 수없이 보았지만 최종 면접에서 매번 결과가 좋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눈높이를 낮추어 중소기업의 문을 두드린 것이다. 나이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대기업 구매팀에 신입으로 들어가기는 여간해서 쉽지가 않다. 대체로 서울에 본사가 있는 경우가 많아 인기가 좋다. 따라서 그만큼 경쟁도 치열하다. 웬만한 스펙(specification)으로 합격의 결과를 이루어내기가 어렵다. 다음은 내가 알고 있는 K의 스펙이다.    


대학 : 수도권 사립 중위권 

전공 : 상경계열 전공, 중국어 복수 전공

어학 : 토익 920, 오픽 IH

자격증 : 컴퓨터 활용능력 1급, 구매자재 관리사

기타 : 해외 인턴 1회, 교환학생 1회, 동아리 회장    


이 정도 스펙이면 나쁘지 않은 편이다. 그럼에도 대기업은 어렵다. 그게 현실이다. 그래서 내가 K에게 제안했던 방법이 경력채용이다. 일단 중소기업에서 구매경력을 쌓아서 신입이 아닌 경력으로 지원해 보자는 것이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K의 고민도 거기에 있었을 것이다.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구매팀에 취업하는 방법도 신입과 경력, 크게 두 가지 경로가 있다. 신입의 경우에는 대부분의 기업에서 발전 가능성을 위주로 정기적으로 선발한다. 이 경우에는 구매 역량도 선발 기준이 되지만 이후에 기획, 인사, 원가, 영업 등 다양한(general) 업무수행 여부를 함께 고려한다. 간단히 말해서 회사의 철학이나 문화에 적응 가능성 여부를 검토하는 것이다. 지원자의 구매 역량과 상관없이 조직에 융화되지 못할 것으로 판단되면 긍정적인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그래서 모집분야 및 자격요건도 구매 역량에 대해 상세한 조건을 달지 않는다.    


 

하지만 경력채용은 분위기가 약간 다르다. 경력직은 철저히 전문성(special)을 중시한다. 구매 경험이 있는지, 있다면 기간은 어느 정도인지 또는 특화된 자기만의 구매 영역이 있는지를 검증받게 된다. 회사가 신사업에 진출하는 시기라면 관련 품목의 구매 경험이 큰 장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한 마디로 구매 역량이 절대적 기준으로 작용한다. 회사에 입사하면 실적이나 성과를 바로 보여주어야 한다. 따라서 과거의 구매실적이 있다면 적극 어필해야 한다. 아래의 경력사원 채용공고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담당업무 : 중국 현지 Sourcing(구매) 담당자

나이/경력 : 35세 전후(대리~과장급), 남녀 무관

적합 전공 : 상경, 공학, 어문, 법정계열

우대조건 : 중국어 상급 필요

기타 사항 : 벤더(Vendor)를 끼고 소싱한 경력은 인정되지 않음. 지원자 본인이 직접 공급처에서 구매한 경험이 반드시 필요    


신입 채용은 정기적으로 발생한다. 반면에 경력채용은 그때그때 소요가 있을 때만 자리가 나온다. 신입으로 대기업 입사가 어렵다면 구매 역량을 축적하여 경력 입사를 노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 곧바로 나아갈 수 없다면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돌아서 가는 것도 생각해봐야 하는 것이다. 지금 K가 그런 상황이다. 한참을 생각하다 K에게 답장을 보냈다.    


“낯선 길을 간다는 것은 새로움보다는 두려움이 항상 앞서는 법입니다. 더구나 처음부터 원하지 않았던 길이라면 더욱 그렇지요. 그래도 원래의 꿈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입사한 회사에서 다양한 구매 경험을 쌓으시기 바랍니다. 기회는 언젠가 반드시 한 번은 찾아오기 마련입니다. 그때까지 지치지 않고 버티는 게 중요합니다. 저도 기원하겠습니다. 제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다면 언제든지 연락 주세요. 파이팅입니다!”     


최근 구매 직무의 채용에서 강조되는 것은 구매 경험이다. 경력사원은 앞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구매 경험이 채용의 절대적인 기준으로 작용한다. 문제는 신규채용의 경우다. 서로가 동일한 조건이라면 구매 경험이 있는 지원자가 높은 점수를 받을 확률이 높다. 나중에 자세히 설명할 기회가 있겠지만, 입사 후에 현업에 투입되면 곧바로 자기 업무를 꿰차야 한다. 담당자별로 맡고 있는 구매 품목이 제 각각이다 보니, 유독 구매업무는 독립성이 강한 특성이 있다. 따라서 누가 대신해 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구매담당자의 하루는 굉장히 바쁘게 움직인다. 좋게 표현하면 역동적이고 나쁘게 말하면 이슈(issue)가 발생하지 않는 날이 없다. 물건을 빨리 좀 사달라는 아우성, 들어온 자재가 원했던 규격이 아니라는 불만, 구매단가가 너무 비싸다는 상사의 태클, 더 이상 단가 조정(negotiation)은 불가하다는 업체의 협박 등 사방이 온통 지뢰밭이다. 이런 전쟁터 같은 곳에서 자기 업무를 스스로 감당해내지 못하면 주변 동료들에게 민폐가 된다. 다행히 마음씨 좋은 선배나 동료사원을 만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럴 경우 팀 전체의 효율성을 떨어트리는 공공의 적으로 간주될 수 있다.    


물론 공통적인 구매절차나 업체 선정 기준 등에 관해서는 입사 후에 따로 교육을 받는다. 비공식적인 노하우(know-how)나 요령도 동료들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실무에서 적용되고 응용되는 설루션(solution)은 고스란히 본인이 감당해야 할 몫이다. 문제를 인식하고 어떤 방식으로 해결할 것인지에 대한 자기만의 방식이 필요하다. 구매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처럼 자기 색깔(character)을 찾는 기간이 단축될 수 있다. 각자의 역량에 따라 곧바로 자기 입지를 구축하는 능력자도 간혹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회사가 유경험자를 선호한다.  

   


몇 년 전, 신입사원 선발을 위해 면접관으로 참여한 적이 있다. 기업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필자가 근무하고 있는 회사의 경우, 팀장급 3명이 한 조가 된다. 1차 서류 전형을 통과한 지원자들을 상대로 2차 면접을 실시한다. 지원자 1명씩 50분 정도의 시간을 할애해서 집중적인 질의응답을 하게 된다. 당시 8명의 지원자 모두, 대체로 스펙이 비슷했다. 그랬으니까 1차를 통과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구매 직무에 대한 인식이나 경험을 확인해봐야 한다. 여기서 확연히 각자의 차이가 드러날 것이다.    


“평소 일상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구입할 때 제일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 게 무엇입니까?”

“서울에서 부산까지 이동 시 운반 수단-비행기, 기차, 버스, 자가용 등-을 선택할 경우 비용, 시간, 편리성 중에 우선순위를 매긴다면 본인은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구매업무를 경험해 본 적이 있나요?”

“인턴사원 경험이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맡은 업무에 대해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위에 질문들은 필자가 지원자들에게 공통적으로 물어봤던 내용이다. 지원자 중 남자는 6명, 여자는 2명이었다. 재학 중 중국 전역을 여행한 사람, 4년 내내 알바를 했던 친구, 구매 직무 관련 자격증을 취득한 지원자, 국가고시 준비를 했던 나이 많은 졸업생 등등. 나름 자기 삶의 열정을 갖고 치열하게 살고 있는 젊은이들이었다.    


개중에 유독 눈에 띄었던 친구가 1명 있었다. 외국계 회사의 한국 지사에서 인턴사원으로 자재업무를 담당했던 지원자였다. 인턴 프로그램이 뭐 대단한 일을 맡기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래도 분위기를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분명 차이가 있다. 더구나 이 친구는 군수물자를 다루는 보급계에서 軍 생활을 마쳤던 이력도 가지고 있었다. 나를 포함한 다른 면접관들의 질문에, 본인의 구매 경험을 가감 없이 잘 설명해냈다. 우리 회사가 필요로 하는 최적의 요건을 갖춘 셈이다. 2차 면접 결과는? 당연히 상위에 랭크되었다. 마지막 관문인 임원면접을 무사히 통과하고 지금은 나와 함께, 같은 사무실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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