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계산대 너머의 봄날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건네던 아이들

by 지화


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걸 좋아한다.

편의점 A는 유독 학생들이 많이 오가는 곳이었다.

아이들은 내가 편했는지 일하는 나를 붙잡고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참 많이 했다. 나는 그런 아이들이 귀엽기도 했고, 나의 학창 시절이 겹쳐 보여서 한두 번은 음료수를 사주기도 했고, 편한 언니처럼, 누나처럼 이야기를 들어주곤 했다.

기억나는 아이들이 몇 명 있다. 매번 같은 시간에 오는 여자아이가 한 명 있었는데, 학교 다닐 나이지만 교복이 아닌 사복을 입었고, 항상 몸이 조금 부어 있는 상태였다. 자주 오니까 자연스럽게 말이 트였고, 어느 날은 자기 이야기를 해줬다. 어릴 때부터 몸이 아파서 몇 차례 수술을 받았고, 그래서 학교에 다니지 않고 홈스쿨링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래도 친구들이 있어서, 틈틈이 이 편의점에서 만나서 이야기 나누고 간다고 했다. 애가 얼마나 또렷하고 의젓한지. 바쁘지 않을 땐 테이블에 앉아서 이야기를 들어주곤 했다.

또 한 명은 항상 밝게 인사하던 여학생이었다. 편의점 올 때마다 나를 붙잡고 "언니~" 하면서 졸졸 따라다니며 수다를 떨었다. 그러다 어느 날 울 것 같은 얼굴로 와서 조용히 말했다. 자기가 말 한마디를 잘못해서 학교에서 혼자가 되었다고. 나도 비슷한 일을 겪은 적이 있어서 전후 사정을 들은 뒤에 괜히 내가 다 화가 났다. 결국 이 친구는 전학을 선택했지만, 운동하는 친구들이랑 선배들 하고는 잘 지낸다고 했다. 그래서 하교 후 자주 편의점에 와서 간단하게 식사하고 가곤 했다. 나도 그 선배들과 친해져서 밥도 사주고, 간식도 챙겨줬다. 아이들이 기특했다.

또 어느 날은 남자아이들이 우르르 들어왔는데, 용돈이 부족해서 컵라면이랑 삼각김밥으로 대충 저녁을 채우고 있었다. 내가 물어보고 김치랑 이것저것 더 챙겨줬다. 공부가 뭐라고, 저렇게 제대로 된 식사도 못 하고 있는 게 짠했다. 남자아이들은 항상 "누나!" 하면서 편의점에 들어왔는데, 그 우렁찬 목소리에 깜짝 놀랄 때도 있었다. 말하는 내용은 여자아이들처럼 시시콜콜한 이야기였지만, 나랑 이야기하고 호응해 주는 게 편했던 모양이다. 학원 가기 전에는 꼭 들러서 나한테 전부 이야기하고 가곤 했다. 나도 남동생들이 있지만 살갑게 지낸 사이는 아니었다. 어릴 적 동생들과의 거리감이 이런 기억들과 겹쳐져서, 편하게 다가오는 그 아이들이 더 정겹고 재미있게 느껴졌다.

그때 그 아이들은 이제 모두 성인이 되었을 것이다. 내가 이 이야기를 쓰고 있는 지금은 2025년, 편의점 A에서 일하던 나는 20대 초반이었다. 지금쯤 그 아이들은 사회에 나가 첫발을 내디뎠을지도 모르고, 여전히 자신의 길을 찾아 헤매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는 그 시절의 따뜻한 기억을 품고 살아가고 있기를, 그리고 그 기억 속 어딘가에 내가 남아 있기를 조용히 바란다.

어쩌면 그 아이들은 편하게 속을 털어놓을 어른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는, 우연히도 그 역할에 어울렸던 사람 중 하나였던 것 같다. 그렇게 잠깐 동안이나마 ‘쉼’이 되어줄 수 있었던 건, 아마 나도 학창 시절 그런 어른을 바랐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아직도 계산대 뒤에 서 있던 나를 또렷이 기억한다. 어느 날 갑자기, 문이 열리고 그 아이들이 다시 들어올 것만 같은 느낌도 든다. 그 시절의 얼굴들, 나에게 이야기해 줘서 고마웠던 아이들. 그리운 마음을 담아, 그 아이들이 지금도 자신을 잃지 않고 잘 살아가고 있기를 조용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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