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힌 공기를 바꾼 한마디
휴게소에서 일하며 가장 신경 쓰였던 건 의외로 반려견 손님들이었다.
강아지를 데리고 오는 사람들 자체가 불편하다는 건 아니었다.
문제는 목줄도 없이 강아지를 풀어놓고선 주변을 살피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내가 있던 코너 앞에는 야외 테이블이 있었고, 그 너머엔 작은 쉼터 같은 공원이 이어졌다.
그 끝은 바로 차량이 빠져나가는 출구였다.
주말이면 가족 단위 손님이 많았고, 어린아이들이 뛰어다니는 모습도 흔했다.
그런 상황에서 목줄 없이 풀려 있는 강아지가 눈에 띄면 우리는 계산대를 비우고 나가서 안내드릴 수밖에 없었다.
바쁠 때는 안에서 최대한 큰 목소리로 말씀드렸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짜증 섞인 말투와 눈빛이었다.
“우리 애는 안 물어요.”
“강아지한테 너무하네.”
심하면 “불친절로 신고하겠다”, “너 내가 누군지 알아?” 같은 말도 들었다.
실제로 불친절 신고가 접수돼 위에서 조사가 내려온 적도 있었다.
목줄 하나 하지 않은 건 주인인데, 곤란한 입장에 서는 건 늘 우리였다.
어떤 손님들은 야외 테이블 위에 강아지를 올려놓고 사진을 찍거나 밥을 먹이기도 했다.
사람이 음식을 먹는 자리인데 강아지가 올라가 있으니,
다른 손님들이 얼굴을 찌푸리며 우리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정중하게 말씀드리면, 이런 말이 돌아왔다.
“행주 가져와서 닦아. 그게 너희가 할 일이잖아.”
모른 척할 수도 있었지만, 다른 손님들이 “왜 가만히 있냐, 주의를 좀 줘라” 하고 요구하기도 했다.
어느 쪽으로도 곤란한 상황이 반복됐다.
그럴 때면 우리 대신 다른 손님이 직접 나서기도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한 아저씨였다.
목줄도 하지 않고 강아지를 풀어놓은 주인이 야외 테이블 주변을 어지럽히자,
그 아저씨는 혼잣말 같지만 모두 들으라는 듯 크게 내뱉었다.
“아씨, 밥맛 떨어지게. 여기가 사람이 밥 먹는 데지, 개새끼가 밥 먹는 데냐? 개새끼 집구석도 아니고, 씨발.”
그 말에 주변 시선이 한 번에 몰렸고, 비매너 손님은 강아지를 안고 도망치듯 자리를 떴다.
우리는 뒤돌아서 웃음을 터뜨렸다.
답답하게 막혀 있던 게 풀린 듯, 속이 뻥 뚫리는 웃음이었다.
나도 반려동물을 키우지만, 욕을 먹어야 할 건 강아지가 아니라 주인의 태도였다.
그렇다고 늘 이런 불쾌한 기억만 있었던 건 아니다.
힘든 와중에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순간들이 있었다.
어느 날, 계산대 앞에서 한 중년 남성이 나를 뚫어지게 보더니 먼저 말을 걸었다.
“혹시 ○○에서 일하지 않았어? 목소리가 똑같네.”
나는 순간 놀랐지만 반가워서 웃으며 대답했다.
“네, 맞아요. 거기서 일했었어요.”
짧게 안부를 나눈 뒤 내가 물었다.
“근데 저를 어떻게 기억하세요?”
그 남성은 주저하지 않고 말했다.
“목소리가 특이하잖아. 그래서 바로 알았지.”
그 말은 오래 남았다.
내 목소리와 말투는 늘 반반이었다.
누군가는 그걸로 나를 기억하고 좋아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그 때문에 불편해하며 싫어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목소리와 말투를 단점으로만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장점이자 강점, 그리고 개성이라고 여겼다.
그렇다고 해서 무심하게 내버려 두는 건 아니다.
상대가 불편해하지 않도록 늘 조심하려 했다.
그럼에도 결국 받아들이는 건 각자의 몫이었다.
휴게소에서도 그 대비는 뚜렷했다.
손님은 내 목소리를 특징으로 기억해 줬지만, 같은 공간에서 함께 일하는 이모들은 정반대였다.
주방 이모는 사람들 앞에서 갑자기 나를 빤히 보며 말했다.
“너 발음 진짜 안 좋아. ‘ㄹ’ 발음이 안 되네. 그거 고쳐야 돼. 우리 딸도 발음 안 좋아서 교정했어. 너도 해야 돼.”
맥락 없이 툭 던진 말이었고, 그 뒤로도 그 이모는 나를 볼 때마다 같은 지적을 반복했다.
또 다른 이모는 내 말투 자체를 불편해했다.
내가 말을 할 때 무의식적으로 한숨을 섞는 버릇이 있었는데,
그게 자기 눈에는 비웃는 것처럼 보였다고 했다.
그래서 나와 대화하는 게 싫다는 말도 직접 들었다.
설명할 틈도 없었고, 듣는 순간 억울하면서도 씁쓸했다.
같은 목소리와 말투였지만, 누군가에게는 장점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단점이 됐다.
그래서 그 손님의 말이 더 오래 남았다.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기억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지쳐 있던 순간 큰 위로가 됐다.
또 다른 날에는 내 안색이 너무 안 좋아서인지,
하루 근무 내내 손님들이 피로회복 음료를 건네주기도 했다.
어떤 분은 음료를 올려놓으며 말했다.
“학생, 얼굴이 지금 당장 쓰러질 것 같아요. 젊다고 무리하지 마요.”
또 다른 분은 계산을 마치며 작은 병을 하나 더 내밀었다.
“이거 마시고 오늘은 그냥 집에 가요. 이러다 큰일 나요.”
그날은 몸은 여전히 무거웠지만, 마음은 조금 가벼워졌다.
작은 배려 하나가 하루를 더 버틸 힘이 되어 주었다.
그러나 그마저도 오래가진 못했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퇴사의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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