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과 시작이 만나는 자리
퇴근을 15분 앞둔 저녁 7시 30분, 새로 부임한 지 몇 달 되지 않은 관리 담당님이 나를 불렀다. 의자에 앉아 한숨을 내쉬며 이야기를 시작하는 모습에서, 속으로 짐작할 수 있었다. ‘심각한 일이구나.’
대화의 요점은 이랬다.
주말에 소떡 두 개를 산 한 중년 남성이 각각 비닐봉지에 포장을 요구했는데, 내가 거절해서 문제가 커졌고 대응하기 힘들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우리 매장은 애초에 포장 서비스를 하지 않았다. 규제 때문에 일회용 봉투와 관련한 민원이 많았고, 근무자인 우리 역시 늘 곤란한 상황에 놓였다. 봉투를 요구하는 손님들과, 방관하는 윗사람들 사이에서 우리는 샌드위치가 되어 있었다.
포장을 요구하는 손님은 많았고, 우리의 고정 멘트는 “죄송합니다, 저희는 포장 서비스가 없습니다”였다.
그러다 중간부터는 일회용 봉투를 1인당 한 장씩 제공하기 시작했다. “죄송합니다, 한 장밖에 못 드려요”라고 말할 때마다 불만이 터져 나왔고, 컴플레인이 접수되거나 싸움으로 번지기도 했다. 그 때문에 우리 코너는 휴게소 내에서 가장 기피하는 곳이 되었다. 카운터에는 안내 문구를 붙여 두었지만 읽는 이는 거의 없었다.
내가 근무하던 막바지에는 윗사람들도 지쳤는지, 아니면 규정이 달라진 것인지 아예 요구하는 대로 다 주라는 분위기가 되었다. 결국 우리 모두 같은 방식으로 일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담당님은 나를 불러 이렇게 말했다.
“손님이 우리 휴게소 단골입니다. 목소리를 들으니 누군지 알겠더군요. 그런데 ○○씨는 모르나요? 그분이 올 때마다 머리 짧고 안경 쓴 아가씨가 짜증 내며 포장을 거절하고, 사과도 안 한다고 했습니다. 그게 ○○씨 아니에요? ○○씨는 고객 응대가 문제입니다.”
담당님은 한숨을 크게 내쉬며 말을 이었다.
“○○씨, 일은 잘하는데 고객 응대는 문제가 많아요. 오전부터 오후까지 휴대폰 녹음기를 켜 두세요. 응대하는 걸 녹음해 두고, 쉬는 시간마다 들어보면서 고치세요. 신입이라면 제가 교육을 시키겠지만, ○○씨는 여기서 1년이나 근무했잖아요. 그래서 제가 어떻게 할 방법이 없어요.”
내가 무슨 말을 하려 하자 담당님은 손사래를 치며 끊었다. 듣기 싫다는 얼굴, 닫힌 태도. 그 순간 생각했다. ‘이게 과연 관리자의 모습인가.’ 그리고 마음속으로는 이제 더는 버틸 수 없겠다고 느꼈다.
나는 차분히 말했다.
“제가 아무리 친절하게 응대해도 변하는 건 없습니다. 듣는 사람이 기분이 좋으면 좋게 받아들이고, 나쁘면 싸우자고 나옵니다. 저는 그렇게까지 해서 제 자신을 바꾸고 싶지 않습니다.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담당님의 대답은 단호했다.
“못하시면 멈추셔야죠.”
그 한마디로 모든 게 끝났다.
나는 알겠다고 대답하고 출퇴근 승합차 시간이 되어 서둘러 퇴근했지만, 마음은 이미 무너져 있었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동료 파트너에게 전화를 걸어 하루 일을 쏟아냈다. 결론은 하나였다. 12월까지만 버티고 그만두자.
다음 날 나는 담당자에게 말했다.
“어제 일 곰곰이 생각해 봤습니다. 저는 못하겠습니다. 12월 말까지만 근무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담당자는 기다렸다는 듯 웃으며 답했다.
“알겠습니다. 새 사람 구하겠습니다.”
나는 그렇게 12월 말까지 일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며칠 뒤, 퇴근 20분 전 다시 불려 갔다.
“○○씨, 길면 길고 짧으면 짧은 1년이 끝나네요. 최대한 ○○씨 피해 안 가도록 하려고 했습니다. ○○씨는 1년을 다 채웠으니 퇴직금은 지급됩니다. 인수인계자도 구했으니 다음 주 화요일까지만 근무하세요. 원래 파트너 ○○씨가 먼저 그만둔다고 해서 인수인계자를 구해놨는데, ○○씨가 입사 순서가 빨라서 ○○씨가 먼저 나가야 합니다. 마지막 주말 잘 마무리하시고 월요일에 사직서 작성합시다. ○○씨, 일은 정말 잘해요. 다들 압니다. 그런데 고객 응대는 고쳐야 합니다. 끝마무리가 아쉽긴 하지만, 마지막 날은 그냥 웃으면서 조용히 마무리합시다.”
그렇게 끝이 났다.
사직서를 작성하러 사무실에 올라간 날, 종이 한 장과 볼펜이 놓여 있었다. 개인 신상정보를 담담히 적어 내려갔다. 담당자는 옆에서 계속 웃었다. “수고했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자리를 나왔고, 담당자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퇴사 이틀 전, 상품을 담당하던 대리님과 나를 챙겨 주던 또 다른 대리님께 마지막 인사를 문자로 보냈다. 상품 담당 대리님은 놀라서 아침 일찍 매장으로 달려왔다.
“○○씨, 그만둔다고 해서 너무 놀랐어요. 도대체 무슨 일이에요?”
그분은 내 얘기를 끝까지 들어주었고, 대신 시원하게 욕도 해 주었다. 덕분에 마음이 조금은 풀렸다.
대리님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지금 휴게소를 망치는 건 새로 들어온 관리 담당이에요. 독단적으로 처리하는 게 많습니다. ○○씨가 원하면 부당해고로 신고하세요. 충분히 해당됩니다. 진짜 문제는 편의점 쪽 여사님들이에요. ○○씨도 알잖아요. 일은 안 하고, 밖에서는 ‘우린 꿀 직장이다’ 자랑이나 하고. 그러니 컴플레인이 들어올 수밖에 없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여사님들 중 두 명은 앞장서서 나를 따돌리던 사람들이었다. 나이 많다는 이유로 반말을 당연하게 하고, 손님 응대를 거부하며, 멘트를 인쇄해 코팅해 붙여 놓았다. 같은 근무시간, 같은 월급이었지만, 힘든 일은 젊은 사람이 맡아야 한다는 분위기였다.
이게 정상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리님은 마지막까지 내 편에 서 있었다.
“○○씨, 진짜 수고 많았어요.”
나는 울음을 꾹 참고 말했다.
“그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대리님이 떠나고 매장에 혼자 남은 나는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그 눈물은 억울함만도, 분노만도 아니었다. 버틸 만큼 버틴 끝에, 끝과 시작을 동시에 실감하며 흘린 눈물이었다.
시간이 흐르면 이것도 결국 과거가 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에도 퇴사를 망설이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나는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당신은 최선을 다했습니다. 이제 그만 놓아주세요. 그동안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렇게 3년을 버티겠다고 마음먹었던 일은 겨울에 시작해 겨울에 끝이 났다. 그 계절은 내게 끝과 시작을 동시에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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