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감기처럼 앓고, 계절처럼 지나온 시간

이력서에 적을 게 없었지만, 나에게는 중요한 시작이었다

by 지화


휴게소에서의 1년은 단순한 노동의 시간이 아니었다.
고되고 버거운 일터였지만, 동시에 내가 매일 속해 있던 세계였고,
반복되는 일상 안에서 살아 있음을 확인하던 유일한 공간이었다.
그 세계를 완전히 떠난다는 건, 단지 회사를 그만두는 일이 아니었다.

익숙했던 카운터도, 손님 응대도, 직장에서의 따돌림도,
뜨거운 기름 앞에 서 있던 일도 전부 낯설게 느껴졌다.

몸보다 마음이 먼저 무너진 것 같았다.
이전에는 ‘어떻게든 다시 일어나면 된다’는 마음으로 버틸 수 있었는데,
이번엔 ‘정말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더 컸다.

그럼에도 나는 계속 웃었고 쉬지 않았다.
감기 기운이 남아 있었지만, 다음 날 바로 치과에 들러 임플란트 치료를 시작했다.
퇴사와 동시에 지갑에서 큰돈이 빠져나갔다. 각오했던 일이지만 조금은 허무했다.
그다음 날엔 바빠서 만나지 못한 사람들을 보기 시작했다.
퇴사 기념으로 휴게소 동료 언니 집에도 다녀오고, 그동안 못다 한 인사를 전하듯 하루 이틀 계속 사람들을 만나러 다녔다.
송년회에도 참석했고, 그렇게 내 일상은 다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음 일자리를 위해 다시 일자리지원센터에 방문했다.
그곳에서 나를 휴게소로 연결해 주었던 여성 팀장님이 나를 보자마자 당황한 얼굴로 말했다.
“어머, ○○씨 맞아요? 못 알아봤어요. 살이 너무 빠져서…”

나는 웃으며 인사했지만, 그 웃음 안에는 지난 시간의 무게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짧은 근황을 나누고, 상담이 시작됐다.

이번에는 음식점이나 매장 일이 아닌, 전혀 다른 분야에서 일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사무직 쪽으로 상담을 요청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현실적이었다.

“고졸이고 관련 자격증도 없고 실무 경력도 없다면 시골에서 사무직은 쉽지 않아요. 여기는 자격증, 학력 많이 봐요.”

순간, 사무직은커녕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과연 있긴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팀장님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래도 방향을 바꿔본 건 정말 잘하신 거예요. 건강부터 회복하시고요, 자격증은 하나씩 준비하면 돼요.
내년 4월에 컴퓨터 자격증 교육 프로그램이 있으니까, 그때 신청하게요.”

그 말을 들으며 나는 마음속으로 결심했다.
사무직은 나와 맞지 않을 거라 생각했고, 휴게소 근무가 사실상 마지막 회사라고 마음먹은 적도 있었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필요한 자격증은 하나씩 따보자고.
가능하다면 사이버대학교든 학점은행제든 등록해서 학위도 취득해 보자고.
그건 단순한 재취업이 아니라, 내 삶을 다시 설계하는 일이었다.

아마 이 시기가 내 인생에서 오랜만에 찾아온 전환점이었는지도 모른다.
그토록 바라던 전문학교에서 졸업도 못하고 도망쳤던 순간부터 나는 늘, 눈앞의 일만 처리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이때는 처음으로, 지금보다 조금 더 먼 미래를 상상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긴장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하면서 잠깐 안심이 되었고, 그 순간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그제야 나는 앓아눕게 되었다.

단순한 감기몸살이라고 하기엔 무거운 열이 며칠을 내리지 않았고,
출근하던 시간에 눈이 떠져도 몸을 일으킬 수 없었다.
시간은 생겼지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감기 기운이 가시고, 열이 내리고, 밤마다 길었던 잠이 줄어들 무렵이 되어서야
나는 조금씩 다시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전과는 다르게, 이번에는 ‘내가 뭘 하고 싶은지’부터 돌아보고 싶었다.

며칠 뒤, 일자리지원센터에서 연락이 왔다.
단기 아르바이트로 공정선거지원단을 모집한다는 내용이었다.
망설였지만 집에서 눈치만 보며 가만히 있는 것보단 낫겠다 싶어, 이력서를 작성해 이메일로 보냈다.

사실 이력서에 쓸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서류 통과 연락을 받았을 땐 놀라움이 컸다.
면접 당일, 1:1 면접 정도는 익숙했기에 큰 걱정 없이 갔지만, 앞에 앉은 면접관이 세 분이었다.
정식 면접은 처음이라 긴장한 탓에 말이 꼬이고 머릿속이 하얘졌다.
그날 집에 돌아오는 길, 나는 분명 떨어졌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며칠 뒤, 합격 연락이 왔다.
그 순간의 기분은 지금도 또렷하다.
믿기지 않았고,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나 자신이 조금 대견하기도 했다.

2024년 2월, 나는 공정선거지원단 단기 계약 근무를 시작했다.
현장 2팀 소속으로 벽보 관리와 현장 단속이 주 업무였다.
첫 일주일은 교육을 받았고, 시험도 봤다.
동료들과 함께 밥을 먹고, 웃고, 조금씩 익숙해졌다.

근무 시간엔 차를 타고 이 마을 저 마을을 돌아다녔다.
그렇게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을 새롭게 보는 경험이 묘하게 즐거웠다.

투표 당일에는 개표사무원 아르바이트까지 했다.
새벽 6시에 출근해 다음 날 새벽 1시에야 집에 도착했다.
긴 하루였지만, 오랜만에 가슴이 뜨겁고 뿌듯했다.

무엇보다, 그 현장에서 만난 동료들 덕분에
나는 ‘실업급여’, 정확히는 ‘구직급여’라는 제도에 기댈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그리고 가장 큰 변화는 내 진로였다.

주변 사람들은 시골에서 여자가 일하며 먹고살기엔
사회복지사나 간호, 영양사 같은 자격 있는 직업이 안정적이라며 추천했다.
사실 나도 그게 정답인 줄 알았다. 그래서 학업도 그쪽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 현장에서 본 세계는 낯설었고, 동시에 오랜만에 가슴이 뛰는 경험이었다.

사무직에 다시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공무직을 가까이서 바라보며 생긴 감정도,
뜻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했던 순간도
모두 그 시절의 나를 조금씩 변화시켰다.

무엇보다, 이력서 하나에 걸었던 용기.
누군가에겐 작아 보일지 몰라도,
그 시기의 나에게는 분명, 중요한 첫걸음이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dbsh7799


https://brunch.co.kr/brunchbook/dbsh3366

금요일 연재
이전 06화5화 겨울 끝에 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