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건넨 쪽지 한 장에서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우리 시대는 대학 진학을 위해 공부하는 게 전부였고,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지는 알려주지 않았다.
고등학교 시절, 아버지가 전화번호가 적힌 쪽지 하나를 내밀었다.
그 작은 종이가 내 첫 아르바이트로 이어졌고,
터미널 안 작은 편의점 계산대 앞에서
나는 처음으로 사회와 마주했다.
사복을 입고 어른들 사이에 서 있는 것도, 말을 붙이는 것도 처음이었다.
카드 단말기, 계산, 물건 진열, 응대까지 모든 것이 낯설었다.
뭐든 시키는 대로 따라 하느라 바빴고, 실수는 늘 따라다녔다.
사장님은 키가 크고 마른 체형에 곱슬머리를 하고 있었고, 안경을 썼다.
말이 많지도, 유쾌한 인상도 아니었지만
둘리에 나오는 ‘그 캐릭터’를 닮은 외모 덕분에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게는 항상 존댓말로 조곤조곤 설명해 주었다.
“그건 이렇게 해보세요.”
“응대하실 때는 말끝을 조금 더 부드럽게 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나는 말끝을 딱 잘라 버리는 습관이 있었다.
겉으로는 단정해 보였지만, 손님에게는 차갑게 들렸을지도 모른다.
그런 내 말투가 눈에 띄었는지, 사장님이 어느 날 조용히 조언했다.
“보이는 건 다 손님이라고 생각하시고요,
말끝을 조금만 더 길게, 부드럽게 해 보세요.”
그 말을 들은 뒤로, 말끝을 흐리고 길게 늘이는 습관이 붙었다.
“안녕하세요요요…”
“감사합니다아아…”
그건 몸에 배어버렸고, 지금도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온다.
누가 “왜 그렇게 말해?”라고 물어오면, 나는 그냥 웃으며 오래된 습관이라고 말한다.
그때 나는 사장님의 말을 의심하지 않았다.
‘말끝을 길게 하면 더 친절해 보인다’는 말,
‘모든 상황에 존댓말을 써야 한다’는 말.
사람을 응대하면서도 물건에게, 상황에게까지 존댓말을 붙였다.
무슨 말인지도 잘 모른 채, 믿는 만큼 실천했다.
근무는 주말 위주였고, 급여는 현금이었는지 통장이었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최저시급보다 낮았던 건 나중에야 알았다.
주휴수당 같은 건 들어본 적도 없었고, 계약서를 썼는지도 확실치 않다.
그저 내가 직접 일해서 용돈이 생긴다는 사실이 신기했던 시기였다.
그리고 그 일은 몇 개월 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렀다.
일을 그만두고 시간이 좀 지났을 무렵, 집으로 이상한 공문이 날아왔다.
내가 아르바이트했던 편의점에서 실제로 받은 것보다 훨씬 많은 금액으로 월급이 신고돼 있었고, 그 때문에 기초수급 대상이었던 우리 집이 탈락할 위기에 놓였다.
나는 상황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다.
장애가 있는 부모님은 더더욱 당황하셨다.
결국 고모들이 나서서 서류를 챙기고, 전화를 돌리고,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
사장은 이미 외국으로 나간 상태였다. 연락도 닿지 않았다.
나는 울지도 않았다.
그저 어리둥절했고, 머릿속에 “내가 뭘 잘못했지?”라는 생각만 맴돌았다.
일이라는 걸 처음 해봤고, 그 일이 누군가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그 기억은 오래도록 내 안에 남아 있었다.
그래서 성인이 되고 한참이 지난 어느 날,
나의 말투가 낯설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 시절이 떠올랐다.
“왜 물건한테 존댓말을 써요?”
“요 좀 짧게 말하면 안 돼요?”
“이상하잖아, 너무 웃겨.”
나는 이유를 몰랐고, 웃음 뒤에 묻어 있는 비아냥을 잘 해석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런 내 말투에 불편함을 느낀 사람들은 반복해서 지적했다.
말끝, 억양, 발음까지 꼬투리를 잡았다.
일하다가 바쁘고 정신없는 날이면 특히 더 그랬다.
긴장이 풀리면 말은 더 흐려졌다.
그 짧은 인사 하나로 여러 번 혼이 났고, 상처받지 않으려 애써 웃었다.
그 편의점에서의 시간은 길지 않았지만,
지금까지도 내 말투에는 그 시절이 남아 있다.
말끝이 흐려지고, 인사에 힘이 빠진 건
그때 사장님의 말 한마디에서 시작된 습관이었다.
그 시절은 지나갔지만, 그 말투와 자세는 아직 내 안에 남아 있다.
어쩌면 그게 내가 처음 배운 ‘일의 언어’였는지도 모른다.
계산대 앞에서 처음 맞이했던 그 사회는,
어설프고도 조용하게, 내 말 한마디에 스며들었다.
그 경험은 내 안에 남아 이후를 바라보게 했다.
학창 시절에는 주변에 어른들이 있으니까 괜찮다고 생각했던 내가 떠올랐다.
조금 부족해도 누군가 알려주고, 가끔 대신해 주는 보호막이 있었다.
하지만 성인이 되고 나서 혼자 부딪혀서 배워야 하는 게 훨씬 많았고,
방어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라서 다치는 일도 많았다.
그때마다 나는 생각했다.
공부도 중요하지만, 사회에 직면했을 때 꼭 알고 있어야 하는 것들이 있었다.
노동자라면 당연히 알고 있어야 할 권리,
노동자인 우리가 취할 수 있는 행동 같은 것들.
감기에 걸리기 전에 미리 독감 주사를 맞듯이,
어린 우리가 사회로 나갈 때 가장 필요한 것도
어쩌면 그런 준비였을 것이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해봤을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들이 모여,
내 삶을 기록하는 첫 문장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