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칼끝과 마주한 첫 감정

사라지지 않는 밤

by 지화


내 이야기를 글로 남기기로 마음먹었을 때, 나는 계산대 앞에 서 있었던 그 무수히 많은 시간들을 떠올렸다.
그 안에 어떤 기억들이 숨어 있는지 되짚기 위해, 나는 여러 도구를 빌렸다. 그중 하나가 블로그에 남겨 둔 기록이었다.

그 글은 코로나19로 인해 시골에서 잠시 일하며 머물던 무렵에 썼다.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 익숙한 얼굴 하나가 내 곁을 스쳐 지나갔고,
그 순간, 오랫동안 꺼내지 않았던 기억이 선명하게 되살아났다.
나는 그대로 주저앉을 뻔했고, 겨우 집에 도착했을 땐 손이 떨리고 숨쉬기도 힘들었다.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그 얼굴은, 내가 고등학생이던 시절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던 어느 날 마주쳤던 손님이었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흉기에 위협을 받았고, 죽을 수도 있다고 느꼈다.

기억은 다시 그날 밤으로 돌아간다.

늦은 밤, 그는 비틀거리며 문을 열고 들어왔다.
출입문과 카운터가 가까워서 그런지, 바람을 타고 술 냄새가 진하게 풍겨왔다.
그는 곧장 카운터로 다가왔고, 나는 담배를 사러 온 손님이라 생각하며 배운 대로 “어서 오세요” 하고 인사를 건넸다.

그런데 그는 지갑 대신 주머니에서 과일 깎는 작은 칼을 꺼냈다. 그리고 말했다.
“야, 왜 나 무시해?”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나는 고등학생에 불과했고, 그와 아무런 접점도 없었다.
아저씨의 말과 행동은 전후 사정이 없는, 그저 ‘위험’ 그 자체였다.
이런 일이 처음이던 나는 멀뚱멀뚱 그를 쳐다봤다.

그리고 그 순간, 어릴 적 기억이 겹쳐졌다.
술을 마신 아버지는 늘 인격이 달라졌고, 어린 나랑 동생들은 늘 도망 다녀야 했다.
그 기억이 겹쳐져서였을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눈만 깜박였다.

그는 칼을 칼집에서 꺼냈다.
칼끝은 내 얼굴 앞에서 흔들리다가 곧장 내 배를 향해 겨누어졌다.

“너 죽일 거야. 내가 어디 어디 회장인데, 네가 뭔데 날 무시해?”

욕설이 이어졌고, 칼은 점점 가까워졌다.
나는 얼어붙은 채 서 있었고, 그는 계속 소리쳤다.

“당장 무릎 꿇고 사과해! 지금 당장 내 앞에서!”

칼이 내 옷을 뚫기 직전이었다.

머리가 하얘졌다.
이 사람이 원하는 걸 해주면 끝날까.
나는 벌벌 떨며 카운터를 나와 차가운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죄송합니다. 용서해 주세요.”

그 말만 반복했다.
정말로 용서를 바랐던 건 아니었다.
살고 싶었다. 그게 전부였다.

그때, 매장 뒷문이 열렸다.
한 아주머니가 들어오셨고, 그 광경을 보자마자 크게 소리쳤다.
나를 끌어당겨 일으켜 세우고, 파출소에 바로 신고했다.

그분이 없었으면 어떻게 되었을지, 지금도 상상하고 싶지 않다.

그런데 다음 날, 그 아저씨는 다시 매장에 왔다.
술에 취해 그랬다며, 기억도 안 난다고 말했다.
웃으며 사과하는 그의 얼굴이, 그날의 칼보다 더 무서웠다.

시골이라, 나는 그 상황을 더 키우고 싶지 않았다.
사과를 받고 끝냈다.
그게 최선이라 믿었지만, 지금 돌아보면 너무 어려서 무력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런 일을 겪었음에도, 다음 날 아무렇지 않게 다시 계산대 앞에 서 있는 나도 참 아이러니했다.

그날 이후,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일이라는 것, 사람이라는 것, 그 어떤 것도 한순간에 위험해질 수 있다는 걸 처음으로 실감했다.

그땐 처음이라서,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
그런 손님이 왔을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도 몰랐고, 그저 “죄송합니다”밖에 할 줄 몰랐던 시절이었다.

지금이라면… 다르게 했을까?
나에게 처음으로 ‘흉기 난동’이라는 기억을 심어준 그 손님, 지금은 바뀌었을까?

하지만 그날 이후, 위협은 다른 얼굴로 반복됐다.

식칼, 각목, 야구방망이, 벽돌, 손바닥, 주먹, 성희롱, 성추행, 인격모독, 스토킹, 살해 협박까지—
나는 그리 평범하지 않은 학창 시절과 20대를 보냈다.
그리고 어쩌면 이런 일들이, 30대인 나에게 헌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길을 준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야기의 시작은 한참 먼 미래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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