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그때는 몰랐던 말들

처음의 불쾌함은 몸이 먼저 말해주고 있었다

by 지화


시골에서 두 번째로 일했던 편의점이었다.
도서관 앞, 작은 점포.
그날도 평소처럼 출근했다. 손님은 드물었고, 매장은 조용했다.

사장님은 유난히 말을 많이 걸었다. 평소보다 더 친절했고,
“요즘 정말 고생 많다”, “일 참 잘한다”라고 웃으며 말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내 어깨에 손을 올렸고,
천천히 주무르기 시작했다.

몸이 먼저 굳었다.
그 손길이 불편했다.
무엇보다 그의 몸이 내 등 뒤에 너무 가까이 있었다.
아니, 닿아 있었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실수도 우연도 아니었다.
나는 짧게 말했다.

“괜찮습니다. 이제 됐습니다.”

하지만 손길은 멈추지 않았다.
속이 울렁거렸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벗어나고 싶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 모든 게 처음이었으니까.

교제 중이던 남자친구가 있었지만 손만 잡던 정도였고,
성에 대해서는 배운 게 거의 없었다.
학교에서 배우던 성교육은 형식적이었고,
성에 관한 이야기란 조심스럽고 쉬쉬해야 한다는 분위기 속에서 자랐다.

그때, 출입문 종소리가 울렸다.
손님이 들어오자 그제야 그의 손이 내 어깨에서 떨어졌다.
나는 그제야 겨우 숨을 쉬었다.

그는 말없이 카운터 뒤편으로 물러났고,
그 후로는 내 눈을 제대로 마주치지 않았다.
며칠 뒤, 나는 아무런 설명 없이 일을 그만두겠다고 말했다.

불쾌했고, 수치스러웠지만 그게 정확히 무엇인지는 알지 못했다.
‘내가 예민한 건 아닐까’, ‘오해였을지도’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시골 마을 특유의 조용하고 폐쇄적인 분위기 속에서는
누구에게든 이런 일을 말하는 것 자체가 더 어렵게 느껴졌다.

그런데, 기억은 흐릿하지만...
당시 누군가에게 그 일을 털어놓았던 것도 같다.
친한 친구였는지, 아니면 학교 선배님들이었는지
내가 뭘 말했고, 어떤 반응을 들었는지도 지금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 순간이 분명 있었던 것만은 남아 있다.
잘 기억은 나지 않아도, 무언가를 꺼내려는 마음이
이미 내 안에서 조금씩 자라고 있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했다.

그 일 이후로 나는 편의점을 일부러 다시 찾아가곤 했다.
사장님의 표정은 좋지 않았고,
나는 오히려 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해맑게 웃으며 말을 걸었다.
그것도 일종의 제스처였다. 무의식적인 복수.
직접 말로 하지는 않았지만, 암묵적으로 전달하고 싶었던 말.

“그건 실수가 아니었어요.”
“당신도 어른이니까. 알지 않나요?”
“계속 후회하세요. 자신을 경멸하며 사세요.”
그런 메시지를 눈빛과 말투에 담아 건네려 했던 것 같다.
나는 그때 아직 어렸지만,
분명한 감정만큼은 내 안에서 일찍 자라 있었다.

한참 뒤, 성인이 된 후에도
성희롱이나 성추행을 겪을 때마다
문득 그날이 떠올랐다.

그날의 나는 어떻게든 감정을 숨기고,
말하지 못했고, 상황에서 벗어나는 법도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불쾌한 감정이 들면 바로 말할 수 있다.
무엇보다, 내 감정을 의심하지 않게 되었다.

뉴스를 볼 때마다 마음이 복잡했다.
어린 시절 겪었던 일들이 떠오르면서,
그때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막을 수는 없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교육이 조금만 달랐더라면.’
정답을 외우는 방식이 아니라,
감정과 경계를 인지하고 존중하는 태도를 배우는 시간이었다면.
가해자에게 처벌을 경고하는 교육이 아니라,
서로의 감정을 이해하고 배려하라는 교육이 중심이었다면.
이런 일들이 지금처럼 일상적으로 벌어지진 않았을 텐데.

그 일은 내게 많은 시작이었다.
첫 불쾌함.
첫 수치심.
첫 침묵.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한 첫 의심.

그런 일이 반복될수록 나는 자꾸 내 감정을 부정했다.
싫다고 느꼈지만 말하지 못했던 순간들.
불편했지만 이유를 설명하지 못했던 감정들.

‘내가 무지해서 그런 걸까.’
‘그 시절 성교육이 부족해서?’
‘아니면 그냥 내가 약했던 걸까.’

끝없이 자책했고, 끝없이 조용해졌다.
어떤 날은 그 생각이 너무 깊어져 스스로를 탓하기도 했다.

지금에서야 말할 수 있다.
그건 내 잘못이 아니었다는 걸.

물론, 모두가 그런 사람은 아니었다.
내 말투에 웃어주던 손님도 있었고,
아무 말 없이 곁을 내주던 동료도 있었다.
아마 그 조용한 따뜻함들 덕분에,
나는 아직도 사람을 완전히 놓지 않고
여전히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그 시간을 기록한다. 잊기 위해서가 아니라, 분명히 겪어냈다는 사실을 남기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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