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무서웠던 시절
기억을 더듬어 보려 했다.
고등학생 시절, 편의점에서 일하던 날들 중
좋았던 사람은 없었을까.
말 한마디라도 따뜻하게 건넨 사람이,
내 말투에 웃어준 손님이,
조용히 도와준 동료가
정말 단 한 명도 없었을까.
아마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떠오르지 않는다.
떠오르지 않는 이유는
기억력이 나빠서가 아니라,
그때의 내가 사람이 무서웠기 때문이다.
사람은 늘 갑자기 다가왔고,
예고 없이 화를 냈고,
무례했고,
내게 상처를 줬다.
나는 늘 긴장한 채로 있었고,
누가 다가오기만 해도 몸이 먼저 반응했다.
그러니까,
누가 나에게 친절했을 수도 있는데
그 친절조차도 받아들이지 못했던 거다.
내가 먼저 움츠러들었고,
좋은 사람을 사람답게 볼 수 없었다.
사람이 무서워서, 사람이 안 보였다.
그 시절의 나는
지켜야 할 게 너무 많았고,
내가 무너지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웃는 얼굴을 흉내 냈고,
싫다는 말도 삼켰고,
그냥 괜찮다고 말하면서 지나왔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집에 들어갔고,
다음 날엔 또 편의점 유니폼을 입고 출근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시절의 나는 참 단단하게 버텼구나 싶다.
하지만 그 ‘단단함’이라는 것도
사실은 나를 꽁꽁 감싸고 있던 두려움의 껍질이었다.
그 껍질 안에서는
따뜻함도, 위로도 잘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살아남는 게 전부였다.
그래도 한 가지는 또렷하다.
그 시절, 내가 일했던 편의점 두 곳은
지금처럼 브랜드 매장이 많지도 않았고,
스마트폰도 없던 시골의 작은 공간이었다.
터미널 안 편의점엔 어르신 손님들이 많았는데,
나를 손주처럼 예뻐해 주시기도 했다.
도서관 앞 편의점엔 학생들이 많이 들렀다.
“언니, 누나” 하면서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털어놓고
수다 떨다 공부하러 가곤 했다.
친구들, 선배들, 후배들도 자주 찾아와
일하는 중에도 심심하지는 않았다.
딱히 누구를 떠올리진 못해도
그 시절의 편의점은 늘 누군가의 이야기로
조용히 살아 있는 공간이었다.
지금은 조금씩 다르다.
말투를 이해해 주는 사람도 있고,
다정한 말 한마디에 가슴이 따뜻해질 때도 있다.
그래서 이제는
그 시절의 나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너 잘못한 거 하나도 없어.
그렇게 버틴 것만으로도 충분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