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서울에서 만난 사람들, 그리고 그날

서울은 낯설었고, 사람은 선명했다

by 지화


꿈을 좇아 서울에 올랐지만, 현실은 학비와 생계비였다.
학교는 휴학했고, 나는 하루하루 알바를 전전하며 버텼다.
짧게 머문 시간이었지만, 그 안에서 남은 기억은 지금도 선명하다.


지하철 2호선, 한 역 안에 있는 편의점. 환승 통로 안쪽에 위치한 작은 매장이었다. 지나가는 사람은 많았고, 나는 그 흐름 속에 하루를 녹여 넣으며 살았다.


쌍둥이처럼 닮은 남자 점장님 두 분이 있었고, 서른 살쯤 된 언니 한 분이 함께 일했다. 이분들은 내가 서울에서 만났던 사람들 중 가장 따뜻하고, 정이 많고, 눈물이 많은 사람들이었다.


그 편의점에서 내가 가장 기억하는 첫 번째 날은 내 생일이었다.


언니가 사무실로 불렀다. 지하에 있는 공간이라 창고처럼 어둡고 좁고, 무언가에 자꾸 걸리는 그런 복잡한 곳이었다. 그런데 그날만큼은 조용히 따뜻했다. 언니가 나를 보며 말했다.


“서울에 혼자잖아. 혼자인데 생일은 제대로 챙겨야지. 특별한 날이잖아.”


언니는 그렇게 말하며 작은 생일상을 차려줬다. 밥, 미역국, 잡채, 불고기, 케이크까지. 모두 언니가 직접 준비한 음식이었다. 나는 어쩔 줄 몰라서 “감사합니다”만 반복했고, 언니는 그냥 웃었다.


좁고 어두운 공간이 그날만큼은 환했다. 냄새도 좋았고, 음식은 눈물이 나게 맛있었다. 그때 처음 알았다. 누군가의 마음이 담긴 밥상이 사람을 어떻게 울컥하게 만드는지를.


그리고 두 번째 기억은 크리스마스 직전, 케이크 판매 시즌이었다.


매장 앞에는 케이크 진열대가 놓였다. 나는 열정적으로 케이크를 팔았다. 목소리가 쉴 정도로 큰 소리로 홍보했고, 하루 종일 웃으면서 손님을 응대했다.


그날은 유독 사람들이 많았고, 지나가는 이들도 들뜬 분위기였다. 그중에 점잖게 생긴 아저씨 한 분이 다가왔다.


“이거… 케이크 어떻게 되는 거예요?”

나는 반사적으로 미소를 띠며 케이크 설명을 해드렸다.


하지만 그 아저씨는 설명을 들은 후 또 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명찰을 보더니 내 이름을 계속 불렀다.

“○○ 씨, 이건 얼마야?”

“○○ 씨, 다른 건?”


그리고 내 팔을 자꾸 끌어당기려 했다.

나는 한 손으로 팔을 막아가며 계속 대응했고, 웃음을 유지하려 애썼다. 그 상황이 무서웠지만, 현장은 붐볐고 나는 일하는 중이었다.


가장 먼저 눈치챈 건 안쪽에서 일하던 언니였다. 언니는 말없이 다가와 나를 매장 안쪽 사무실로 보냈고, 아저씨 응대는 언니가 맡았다.


잠시 뒤, 밖에서 고함 소리가 들렸다.

아저씨가 “나는 저 아가씨한테서 케이크 살 거야! ○○ 씨가 해줘야 돼!” 하고 외쳤다.

나는 사무실 안에서 울먹이고 있었다.


퇴근길 사람들이 하나둘 몰려들었고, 역 안의 직원들, 경비원, 관계자들이 나타났다.

이곳은 검찰청과 법원 사이를 오가는 환승역이라 출퇴근하는 사람들 중 누가 봐도 법조인처럼 보이는 정장 차림의 남성도 있었다.

그분이 가장 먼저 다가와 상황을 정리하기 시작했고, 뒤이어 경찰도 도착했다.


잠시 후 언니가 사무실로 와서 말했다.

“저 아저씨가 ○○ 씨가 케이크 계산해 주면 그냥 간대.

네가 싫으면 경찰이 강제로 데리고 갈 거래. 어떻게 할래?”


나는 너무 싫었다.

정말 싫었다.

하지만 더 이상 민폐 끼치고 싶지 않았고, 모든 시선이 나에게 집중돼 있다는 생각에

결국 울면서 계산을 해줬다.


그 아저씨는 웃으면서 케이크를 들고 사라졌다.


언니는 나중에 와서 말했다.

“아까 그 법조인처럼 생긴 분이 명함을 주셨어.

나랑 점장님들 그리고 너한테.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연락하래. 도와주신대.”


나는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말이 나오지 않았고, 그 상황이 끝났다는 게 믿기지도 않았다.


서울은 크고, 사람은 많고, 상황은 빠르게 흘러갔다.

나는 그 안에서 계속 사람을 상대했고,

어쩔 줄 몰라하면서도 내 역할을 다 하려 애썼다.


두 날은 전혀 달랐다.

하나는 따뜻했고, 하나는 무서웠다.

그런데 둘 다 오래 남았다.


아직도 사람은 어렵지만,

그날 언니가 차려준 생일상처럼

누군가의 마음은 기억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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