흩어진 기억과 새로운 자리
서울에서 생활비를 감당하기 위해 나는 어느 회사에 지원했고, 운 좋게 합격해 수습 기간으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맡은 업무는 사무실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외주로 들어온 학원 홍보였다. 출근하면 명함과 유인물을 챙겨 아파트 단지나 상가 건물이 밀집된 곳을 돌며 사람들을 마주했고, 선배와 동료들과 함께 전단지를 나누고 설명을 건넸다.
첫 회사는 계산대에 서 있던 것과는 조금 달랐지만,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말을 걸고, 무언가를 설명하고, 그 반응을 견뎌야 했다. 사람들은 무심했고, 반응은 빠르고 차가웠다. 손을 휘젓고 지나가거나, 아무 말 없이 외면하거나, 아예 피하는 사람도 있었다. 처음 보는 얼굴을 향해 말을 건다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이었나 싶었다. 그래도 웃는 얼굴을 유지하며, 불편해 보이지 않도록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그렇게 차갑고 무심한 하루들 속에서도, 그 시절을 돌아보면 지금까지 선명하게 남아 있는 장면들이 있다. 회사 안에서의 일도 있고, 퇴사 직후 동료들과 얽힌 기억도 있다. 특히 세 가지가 또렷하다.
첫째, 입사 동기와 수다를 떨다 버스에서 내릴 곳을 놓쳐 종점까지 간 일. 다시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이 괜히 웃기고, 이상하게 오래 기억에 남았다.
둘째, 회사를 그만두고 동시에 남자친구와도 다투어 슬픔에 젖어 있던 시기였다. 동료들이 불러내 술을 마셨는데, 필름이 끊긴 채 응급실에서 눈을 떴던 기억. 웃지 못할 기억이지만, 동료들의 마음만큼은 오래 남았다.
셋째, 신입인 나를 처음 맞아준 상사였다. 그는 내 이름을 들을 때마다 휴대폰을 꺼내 여자친구 사진을 보여주며 자랑했다.
“○○ 씨, 내 여자친구랑 이름 똑같네. 봐봐, 내 여자친구 방송국에서 일하고, 나이도 어리고, 진짜 예쁘지?”
사진 속 여자는 같은 여자인 내가 봐도 정말 예뻤다.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그는 나를 볼 때마다 여자친구와 비교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어보며 말했다.
“○○ 씨는… 어휴, 그래서 연애는 하겠어?”
“치과도 좀 가보고, 미용실도 좀 다니고 그래.”
“같은 이름인데 이렇게 다르냐.”
현실에서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네, 진짜 예쁘네요.”
그러나 속으로는 같은 말만 반복했다.
‘당신은 키도 작고 뚱뚱하고, 배도 아저씨처럼 나왔잖아. 그 예쁜 여자분이 왜 당신 같은 사람을 만나지?’
‘그분이 보살이지. 신이 존재한다면, 언니가 하루빨리 정신 차리고 이 남자한테서 벗어나게 해 주세요.’
1993년생인 나는 그때 고작 스무 살 언저리였다. 사실 이런 일은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었다. 나는 이미 어릴 적부터 외모 때문에 놀림을 당했고, 따돌림도 겪었다. 성인이 된 뒤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잠깐 다녔던 전문학교, 레스토랑 주방, 지하철 안에 있던 편의점에서도 크고 작은 말들이 늘 따라붙었다. 왜 다들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려 드는 걸까. 그때마다 분노했고, 그 분노는 점점 피로로 바뀌었다.
첫 회사는 오래 붙잡지 못한 채 끝이 났다. 다시 알바를 이어가며 버텼지만, 마음은 점점 지쳐갔다. 더는 서울을 감당할 수 없었고, 결국 나는 도망치듯 시골로 내려왔다.
거기서 친구가 일하던 김밥집에서 잠시 일을 도왔고, 시골에 처음 들어선 햄버거 가게에 오픈 멤버로 들어가기도 했다. 친구는 부점장이었고, 나는 직원으로 1년 정도 함께 일했다. 하지만 우리 둘 다 도시에 가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나는 언젠가 장사를 하고 싶었고, 함께할 파트너라면 그 친구가 좋다고 생각했다. 친구도 내 제안에 동의했고, 우리는 계획을 세우며 꿈을 키웠다. 그렇게 준비 끝에 전주로 향했다.
전주에 도착해서는 고등학교 은사님과 우연히 연락이 닿아 고급 중화요릿집을 소개받아 아주 잠깐 홀 서빙을 했다. 그러나 그곳 역시 오래 버티지 못했다. 이유는 또 외적인 모습 때문이었다. 그 일로 선생님께 괜한 화를 냈고, 나중에 가서야 후회를 많이 했다. 선생님 탓은 아니었는데, 그땐 나밖에 보이지 않아 끝내 사과하지 못했다.
그 뒤 나는 편의점과 치킨집 두 곳에서 거의 동시에 일을 시작했다. 치킨집 사장님과 편의점 사장님은 형제였는데,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성격도, 가게 분위기도 전혀 달랐다. 편의점에서는 햄버거나 치킨 같은 음식을 만들어 팔았고, 치킨집 사장님은 연예계나 조폭 이야기를 곧잘 꺼냈다.
그러다 치킨집에서 좋지 않은 일을 겪었고, 결국 그만두게 되었다. 나는 자취방에 틀어박혀 지내며 벼랑 끝에 매달린 듯 버텼다. 그 무렵의 기억은 연속된 흐름이라기보다는 조각난 장면들로만 남아 있다.
사람을 상대하는 일 자체는 변하지 않았지만, 지금 생각해도 그 시절을 어떻게 버텼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겨우 다시 추스르고 집 밖으로 나왔다. 더 있고 싶어도 월세 때문에 버틸 수 없었다.
그렇게 다시 흘러가기 시작한 시간은 내게 또 다른 시작이었다. 나는 담담히, 다시 계산대 너머의 자리를 마주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