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감시받는 일상, 그 끝에 남은 흔들림
전주에서 나는 꽤 오랜 시간 편의점에서 일했다.
그중엔 자취방에서 걸어서 20분 정도 떨어진 도로변의 편의점 A도 있었고,
조금 뒤에는 자취방 바로 옆 골목에 위치한 편의점 B에서 일하게 되었다.
이야기는 편의점 A에서 시작되었고, 편의점 B에서 끝이 났다.
편의점 A에서 일하게 된 계기는 조금 특별했다.
큰 사건들을 겪고 자취방에 틀어박혀 있던 어느 날,
자취방 1층 미용실 원장님이 일자리를 하나 소개해 주셨다.
신기하게도, 소개받은 마트 사장님 부부는 예전에 내가 일했던 치킨집의 단골손님들이었다.
내가 서빙하던 모습을 보며 “요즘 애답지 않게 착하고 씩씩하다”며
택시비라며 팁을 건넬 만큼 다정했던 분들이었다.
그 인연으로 나는 마트에서 일을 시작하게 되었고,
하루하루 일을 익혀가던 무렵,
바로 옆 편의점의 점장 자리를 제안받았다.
사장님 부부가 믿고 맡겨준 자리였다.
나는 그 신뢰에 보답하듯, 편의점 A에서 점장으로 일했다.
어린 나이에 처음으로 직책을 달았고,
매장 운영과 발주, 아르바이트생 스케줄 조정, 각종 물류 응대까지 대부분을 전담했다.
급여와 관련된 민감한 부분은 사장님 부부가 처리했지만,
그 외의 전반적인 운영은 거의 내 몫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손님들과도 자연스럽게 얼굴을 트게 되었고,
그중에는 가볍게 인사를 주고받는 단골들도 생겼다.
그러던 어느 날, 자주 보던 40대 후반에서 50대 중반쯤 되는 남성 손님이
계산을 마친 뒤 나에게 물었다.
“남자친구 있어요?”
나는 그냥 웃으며 “없어요”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는 갑자기 이렇게 말했다.
“우리 아들이 혼자예요. OO 씨랑 밥 한 끼만 해보면 안 될까요?”
처음엔 당황했지만, 조용히 웃으며 정중히 거절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갔고, 그걸로 끝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 뒤로도 계속 같은 말을 반복하며 찾아왔다.
몇 번을 들으니, 이제는 웃으며 넘길 수 없었다.
나는 좀 더 단호하게, "죄송하지만 어렵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는 갑자기 얼굴빛이 바뀌더니 목소리를 높였다.
“내가 얼마나 괜찮은 사람인데! 아들이랑 밥 한 번 먹자는데 그게 그렇게 싫어?!”
나는 침착하게 말했다.
“이렇게 계속하시면 경찰에 신고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나갔다.
그 일이 있고 한동안 그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며칠 뒤였다.
그는 술에 취한 상태로 매장 안으로 들어왔다.
“아빠벌되는 내가 밥 좀 먹자는데, 그게 그렇게 싫어?
너 같은 게 뭔데 나를 거절해?”
나는 여전히 차분하게 “신고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제야 그는 움찔하며 "죄송합니다"라고 중얼거리고 돌아섰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시간이 흘러, 나는 편의점 B에서 다시 일을 시작했다.
편의점 B는 자취방 바로 옆에 있는 상가 골목에 있었고,
출입문과 계산대 앞이 전부 통유리로 되어 있는 구조였다.
매장 안에서도 바깥 도로가 환히 보였고, 밖에서도 매장 안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어느 날이었다.
멀리서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그 남자였다.
그도 나를 알아봤는지, 매장 앞 도로에 멈춰 섰다.
통유리 너머로 나를 뚫어지게 바라봤다.
나는 애써 고개를 돌렸고, 손이 떨렸다.
그는 매장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하지만 며칠 동안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 서 있었다.
아무 말도, 행동도 하지 않고 그저 매장을 바라보기만 했다.
편의점 B의 구조상, 나는 그 시선을 고스란히 받아야 했다.
근무를 마친 뒤에도 정문으로는 나가지 못했다.
가게 뒷문으로 돌아가 동네를 빙빙 돌아 자취방으로 향했다.
그렇게 며칠을 보냈다.
경찰에 신고도 고려했지만, 나는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직접적인 피해가 없으면 경찰은 개입할 수 없다는 것.
법은 정황보다 ‘결과’를 본다는 사실을.
내가 편의점에서 오랫동안 일하면서 깨달은 불편한 진실이었다.
공포감이 나를 잡아먹어가고 있을 즈음,
그 남자는 어느 순간부터 보이지 않게 되었다.
나는 조금 안심했다.
그 뒤로는 정문으로도 나갈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도,
뉴스에서 ‘손님의 스토킹’ 기사를 보면 나는 그날을 떠올린다.
아마도 그는 우연히 나를 발견했을 것이다.
그리고 수치감이 떠올랐겠지.
통유리를 통해 겁먹은 내 표정을 보고는, 웃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한동안 그 자리에 서서 바라만 보고 있었던 건 아닐까.
그날 이후로,
꽤 오랫동안 출근하거나 퇴근할 때
꼭 한 번은 유리문 너머를 먼저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