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간 휴가를 내서 스페인 여행을 다녀온 후 가장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다.
어떤 게 제일 환상적이었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예요? 여행을 통해 무엇을 배우셨나요?
꽤나 생각이 필요한 질문들을 뒤로한 채 1차원적인 질문을 선택한 건 상대방을 곤란하지 않게 하고 안도감을 얻기 위한 한국인 특유의 배려와 비교의 정서가 깔려있는 건 아닐까.
어찌 됐든 나름 고민해서 질문했을 테니 난 돌려 말하지 않고 한 번에 말해준다.
둘이서 10박 12일 여행하는데 총 780만원 들었어요..
교통비와 숙박비가 580만 원으로 전체 비용의 73%를 차지했다.
항공권은 최대한 빨리 예약하는 게 중요하고 며칠간 검색해서 추이를 비교해 볼 수밖에 없다.
바르셀로나에서 그라나다로 이동할 때도 비행기를 이용했다. 기차와 가격이 거의 비슷했다.
공항버스를 타고 사람들이 다 내리는 1터미널에서 내렸는데 알고 보니 우리는 2터미널이었다.
아마 국제선이 1터미널, 국내선이 2터미널인가 보다. 티켓에는 아무런 정보도 없었다.
공항 순환버스를 탔는데 2터미널까지 무려 15분 정도가 걸렸다. 다행히 비행기를 놓치진 않았다.
그라나다에서 세비야는 그리 멀지 않아서 가장 저렴한 버스를 이용했다. 알사버스라는 사이트에서 예약하면 된다. 세비야에서 마드리드는 렌페라는 스페인 고속열차를 탔다. 렌페코리아를 통해 예약하면 되는데 나중에 마드리드에서 프라도미술관을 가기 위해 열차시간을 바꾸려고 했는데 시차가 안 맞아서 상담이 힘들었다.
결국 내가 변경 불가능한 티켓으로 예약해서 시간은 바꿀 수 없었다. 예매할 때 변경 가능한 티켓은 1~2만원 더 줘야 하는데 그때는 굳이 그 돈을 더 줄 이유가 없었다.
숙소는 어차피 잠만 잘 거라 크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첫 번째 바르셀로나 숙소는 카딸루냐 광장 바로 옆의 호텔이 꽤 괜찮은 가격이라 고민 없이 예약을 했다. 2성급이라는 게 조금 걸렸지만 사진으로 봤을 때는 깔끔해 보였다.
하지만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다. 욕실과 화장실이 공용이었다. 딸과 나는 3일 동안 샤워를 안 하고 버텼다. 날씨가 선선해 땀이 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그라나다의 호텔은 가격이 더 저렴함에도 복층에 욕실도 크고 조리시설에 세탁기까지 있는 쾌적한 곳이었다.
세비야와 마드리드는 여행 도중 2~3일 전에 에어비앤비로 예약했는데 위치, 가격, 컨디션 모두 나쁘지 않았다. 호스트는 평점 관리가 중요하기 때문에 매우 친절하다. 영어를 거의 못하지만 번역기가 있으니 어려울 건 전혀 없다. 현지의 아르헨티나 식당까지 추천받아서 저렴하게 이베리코 고기도 먹을 수 있었다.
투어와 식비, 기념품을 합쳐 200만 원으로 전체 비용의 26%를 차지했다.
투어는 역시 평점과 리뷰다. 나 같은 경우는 마이리얼트립 가이드 2명을 추천받아서 예약했는데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역시 구매순위 1위였다. 문화 유적들을 그냥 보는 것과 투어를 통해 설명을 듣고 보는 것은 정말 하늘과 땅 차이다. 더불어 현지의 맛집과 정보들도 얻을 수 있으니 도시마다 1일 또는 반나절 투어는 필수다.
바르셀로나의 가우디 전일 차량투어,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투어, 세비야의 스페인광장부터 대성당까지 워킹투어, 마드리드에서 출발한 세고비아와 톨레도 근교도시 투어까지 모든 투어가 알차고 재미있었다.
플라멩코는 그라나다는 야시장, 세비야는 세종문화회관 같은 느낌이라고 한다.
그라나다의 플라멩코는 20대 남녀의 화려한 스킬과 열정이 감동적이었다. 어찌나 격렬했던지 여성 댄스의 머리핀이 날아와서 내 이마를 때리기도 했다. 세비야는 50대로 되어 보이는 남자 1명, 여자 2명이 춤을 췄다. 원숙미는 느껴졌지만 댄서들 배가 좀 나와서 상대적으로 감흥이 떨어졌다. 역시 난 야시장 쪽이..
식사는 하루 1끼 이상은 꼭 현지식을 먹었다. 물가가 비싸서 메뉴 선택의 폭이 한정적이었지만 그 나라를 이해하기 위해 음식은 필수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나니 한식과 일식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한국보다 저렴한 건 대형마트에 있는 음료와 과일뿐이었다.
스페인 음식은 대체로 입에 잘 맞는다. 실패했던 메뉴는 약간 구린 향의 소스가 들어간 파스타와 토마토 수프, 하몽이 들어간 바게트 빵 정도뿐이었다. 양도 많지 않고 맛도 있어 대부분 클리어했다.
음식점에 가면 일단 음료 주문부터 받는다. 레몬 맥주와 샹그리아 칵테일이 아주 달달하게 맛있다. 그리고 환타가 거의 오렌지에이드 수준이라 자주 먹었다. 오렌지 과즙이 8%나 함유된 환타는 오직 이베리아 반도에서만 먹을 수 있다고 한다.
기념품은 마지막 도시에서 사야 한다는 기본적인 사항을 망각했다. 가장 가성비가 좋은 국화꿀차 20통을 바르셀로나에서 사서 일주일 넘게 들고 다녔다.. 그 영향인지 모르겠지만 도시마다 냉장고용 기념자석을 샀는데 바르셀로나만 빠뜨렸다.
조금 더 챙겨야 하는 사람들은 립밤과 소금을 샀다.
립밤은 길거리에 많은 오렌지 나무의 오렌지로 만들었고 이비자 소금은 이베리안반도에서만 직접 살 수 있다고 해서 샀다. 실제 인터넷보다 많이 저렴했다.
딸은 쇼핑샾에서 1유로짜리 핸드크림을 발견했는데 검색해 보니 조회가 안 되는 브랜드라 친구들 선물로 14개를 샀다. 할머니 선물로는 스카프를 샀다. 가족들과 함께 맛보려고 스페인 전통간식인 뚜론도 몇 개 샀다. 견과류에 꿀을 넣어 바 모양으로 만든 디저트라는데 달콤하니 맛있다.
1. 교통비 : 4,080,378원 (전체 경비의 52%)
- 항공 : 3,130,200원 (인천 → 바르셀로나, 마드리드 → 인천) *1회 경유 국적기(에어프랑스, 네덜란드항공)
- 항공(도시이동) : 438,921원 (바르셀로나 → 그라나다)
- 기차(렌페) : 194,647원 (그라나다 → 세비야)
- 버스(알사버스) : 84,477원 (세비야 → 마드리드)
- 기타 : 232,133원 (공항버스 1회, 시내버스 2회, 택시 7회, 지하철 1회)
2. 숙박비 : 1,665,778원 (전체 경비의 21%)
- 바르셀로나(3박) : 772,811원 (호텔 모네갈) *평점 2점(공용욕실/화장실.. 위치는 굿)
- 그라나다(2박) : 281,670원 (스마트 스위트 알바이신) *평점 5점(전용욕실, 복층, 조리시설/세탁기 완비)
- 세비야(3박) : 333,209원 (에어비앤비) *평점 4.5점(전용욕실, 위치최고)
- 마드리드(2박) : 242,975원 (에어비앤비) *평점 3점(호스트가 같이 거주, 욕실/화장실 매우 협소)
3. 투어 : 931,627원 (전체 경비의 12%)
- 바르셀로나 가우디 전일(차량) : 104,000원
- 그라나다 알함브라 투어(도보) : 138,000원 (입장료 53,000원 포함)
- 세비야 스페인광장부터 대성당(도보) : 150,000원 (입장료 24,000원 포함)
- 세고비아&톨레도(차량) : 278,000원 (입장료 45,000원 포함)
- 그라나다/세비야 플라멩코(2회) : 119,060원
4. 식비 : 916,360원 (전체 경비의 12%) *1유로=1,417원
- 식당 : 748,176원 (총 20회, 평균 37,400원) *현지식 15회, 한식 2회, 일식 2회, 패스트푸드 1회
- 마트 : 168,184원 (물, 음료, 과일 등)
5. 기념품 : 179,321원 (전체 경비의 2%) *1유로=1,417원
- 국화꿀차 : 1.19유로 × 20통
- 이비자 소금 : 4.75유로 x 3통
- 핸드크림 : 1유로 x 14개
- 오렌지 립밤 : 4.90유로 × 5개
- 냉장고 자석 : 3유로 × 10개
- 스카프 : 5유로 x 2개
돈을 많이 쓴 건지 적게 쓴 건지는 잘 모르겠다.
사실 현지에서 쓰는 돈을 아무리 아껴봐야 전체 비용에 큰 영향을 못 미친다.
교통비와 숙박비가 관건이다. 항공권과 환율이 그 어느 때보다도 안 좋은 조건이었다.
남들처럼 1년, 6개월 전에 계획적으로 미리 예약하지도 못했다.
패키지를 이용했으면 상대적으로 비용이 줄었을 것 같다.
비수기도 아니었다.
나름 열심히 준비했지만 여러모로 남들보다 저렴하게 다녀온 건 아닌 것 같다.
하지만 그 여행의 가치는 여행의 당사자만 알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780만원의 여행이 1천, 3천, 5천만원의 가치가 있었는지, 아니면 5백, 3백, 1백만원의 가치밖에 없었는지는.
처음부터 끝까지 아빠와 딸이 함께 계획하고 준비했다.
낯선 곳에서 서로를 의지하고 격려하며 함께 고민하고 선택했다.
매 순간 웃고 즐기며 안전하게 다녀왔다.
여행의 가치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으니, 이번 스페인 여행의 가치는 오직 나와 딸이 각자 매길 것이다.
어떻게 매겨졌던 그 소중한 가치는 이미 우리의 추억이 되었고, 평생 우리의 머리와 마음속에 있을 것이다.
이로써 우리의 삶에 행복이 또 하나 추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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