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디타이거 Mar 14. 2023

바르셀로나행 비행기표를 2장 샀다

휴직을 제외하면 직장인이 낼 수 있는 최대휴가는 보통 2주다.

얼마 전에 알았는데 학생들이 현장체험학습으로 낼 수 있는 최대 기간도 국내는 연속 5일, 국외는 연속 10일 이내다.


결혼을 하기 전부터 가족이 함께하는 여행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그냥 보통의 여행이 아니라 큰 배낭을 메거나 캠핑카를 타고 장기간 온 가족이 동거동락하며 고생하는 그런 느낌의 여행말이다.

TV나 유튜브에서 볼 수 있는 그런 특별한 가족들은 그 시간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시간이었고 소중한 경험이었다고 한결같이 말한다.


나도 대학교 때 갔던 유럽과 미국 여행이 인생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난다. 모르면 용감하다고 20대의 패기 하나로 혼자서 계획도 없이 어떻게 그렇데  돌아다녔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그때의 경험을 이제는 가족들과 함께하고 싶다.

하지만 그전 같은 열정도 없을뿐더러 조금만 걸어도 쉽게 피곤하다. 그저 맛있는 거 먹고 좋은 거 보고 편한 데서 자는 여행이 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기만 기다렸다. 같이 배낭여행을 다니는 멋진 아빠를 꿈꿨다.

국내도 좋고 해외도 좋다.

새롭고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좋다. 그러려면 유명한 관광지만 돌아다니는 패키지여행이 아니라 조금은 고생스러워야 하고 돌발상황도 필요하다고 생각했.

국토대장정을 해볼까.

미국 횡단을 해볼까.

유럽 일주를 해볼까.


어느덧 아이들이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었다.

무언가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보려던 찰나 코로나가 터졌다. 3년이 지나고 아이들은 올해 중3, 중1이 되었다. 이제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 올해가 마지막 기회란 생각이 들었다.


사실 아들은 배낭여행에 매우 적합하지 않다.

걷기 싫어하고 항상 메뉴를 따지고 깔끔한 잠자리가 아니면 불편해한다. 자신만의 루틴이 있고 그런 원칙들이 흐트러지는걸 아주 싫어한다.


반대로 딸은 여행에 아주 적합하다.

매사에 긍정적이고 협조적이다. 음식은 아무거나 배만 채워주면 되고 잠도 아무 데서나 잘잔다.


3년 전부터 밤마다 딸과 야간열차 타는 연습을 했다. 예전 유럽 배낭여행 때 일주일 동안 야간열차로 이동했던 기억을 되살려 짐을 시건장치로 묶고 덜컹대는 기차 안에서 잠자는 모의 훈련이다.




우선 딸과 둘이 가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내년에 고등학생이 되는 딸이 앞으로 더 이상 아빠와 둘이 여행을 간다는 건 쉽지 않을 것이다.

아들까지 둘을 케어하기엔 자신이 없었고 아내는 직장에서 휴가를 길게 빼기가 힘들었다.


여름방학에 가는 건 너무 복잡하다. 어딜 가나 여행객들이 너무 많다. 1달은 가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타협해서 2주간 휴가를 내는 것으로 계획을 세웠다.

가장 무난한 서유럽 3국 패키지 프랑스-스위스-이탈리아 코스가 눈에 들어왔다.

선택과 집중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교육적 효과를 고려해서 이탈리아만 보는 것으로 변경했다. 이탈리아 주요 도시만 돌기에도 빠듯한 일정이었다.

작년에 가족들과 10일간 이탈리아를 다녀온 후배가 직접 만든 20장짜리 자료도 전달받았다.

그런데도 왠지 머릿속에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았다.


그러다 글쓰기 모임에서 알게 된 스티브 작가님이 생각났다. 스티브 작가님은 스페인에 사시며 여행 가이드를 하고 계셨다.

10일간의 코스를 추천받았다. 도시별 투어가이드까지 추천해 주셨다.

생각해 보니 내 기억 속에도 이탈리아보다 스페인이 훨씬 더 좋은 느낌으로 남아있다.

그래 스페인으로 결정했다!




스페인 책을 한 권 사고 항공권을 검색했다.

화요일 새벽에 사는 게 제일 저렴하다는 얘기, 검색기록을 다 지우고 검색해야 저렴하다는 얘기 등 수많은 정보로 머리가 아파왔다.

정말 검색할 때마다 가격이 조금씩 달라졌다.

2주간의 검색 기간을 거쳐 마침내 바르셀로나행 티켓을 결제해 버렸다.

2주간의 검색으로 최적의 티켓을 구입했다기보단 더 이상 검색할 에너지가 없어 포기하고 싶어 질 때쯤 적절한 가격이라고 생각되는 티켓으로 스스로 타협하고 말았다.

그 후에 로마가 더 저렴하길래 이탈리아로 다시 바꿔볼까 하고 티켓을 보니 환불이 안 되는 티켓이었다. 차라리 잘됐다. 


드디어 여행은 결정되었다.

날짜와 장소도 정해졌다. 시작이 반이라고 했다.

여권 갱신부터 숙소 예약, 일정 수립까지 해야 할 일이 많지만 여행의 컨셉부터 차근차근 즐거운 고민을 시작해야겠다.


스페인, 너는 자유다.

2001년 미국 여행중 최남단 키웨스트 섬에서


#글루틴 #팀라이트 #매일글쓰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