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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타이거 Jun 21. 2023

16살 딸과 스페인 여행을 다녀왔다.

10박 12일의 스페인 여행.


군 전역 후 복학하여 1달간 유럽 낭여행을 다녀온 이후로 23년 만이다.

20년간 회사를 다니며 2주씩이나 휴가를 낸  이번이 두 번째쯤 되는 것 같다.

아내와 아들도 같이 살고 있지만, 딸과 둘이 갔다.

심지어 딸은 중학교 3학년이다.


이 모든 난관을 뚫고 딸과 단 둘이 유럽을 가겠다는 목표를 이루어냈다.

패키지도 아니고 여행사와의 상담도 없었다.

준비 과정부터 의미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모든 걸 내 손으로 했다.

날마다 항공권을 검색하고 유럽여행 카페에도 가입하고 스페인 여행 책도 한 권 다.

자유여행이라 어느 도시를 가고 무엇을 보고 무엇을 먹을 것인지, 잠은 어디서 잘 것인지 하나하나 모든 일정을 고민해야 했다.

하지만 누구와 어디를  것인지 정했기 때문에 이미 준비는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단지 딸이 조금이라도 더 많이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기회가 되어야 한다는 나름의 목표가 준비하는 내내 나를 압박했다.

목표의 나머지 반은 낯선 환경에 우리를 그대로 내어놓는 것이었다. 순간순간 선택해야만 하는 상황 속에서 자연스럽게 판단과 선택, 책임에 대해 배울 수 있길 바랐다.

그래서 숙소를 절반만, 투어도 절반만 예약했다.

나머지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현장에서 그때그때 딸과 함께 채워가고 싶었다.    




스페인을 다녀왔다고 하면 사람들의 반응이 뜨겁다.

그리고 딸과 둘이 갔다고 하면 더 뜨거워진다.

그 딸이 중3이라고 하면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블로그나 유튜브를 찾아봐도 딸과 둘이 해외여행을 가는 아빠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대학생이나 성인이 된 딸이 주도적으로 준비한 효도여행 있을 뿐.


아빠와의 관계는 여성의 사회성과 독립성에 영향을 미치고 아빠와 관계가 좋은 여성일수록 자존감이 높다고 한다. 실례로 하버드대 아동심리학자가 알파걸과 비알파걸을 연구하면서 가장 큰 차이점 중 하나가 바로 아빠와의 관계라고 밝힌 바 있다.

이렇게도 중요한 게 아빠와 딸의 관계지만 사실상 가족 구성원 중에서도 가장 다르고 거리감이 든다.

성별도 역할도 생각도 감정도 모든 것이 다르니 서로를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오히려 서로를 통해 자극받고 배울 수 있는 상호보완적 관계라고 생각한다.


딸에게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새로운 경험을 시켜주고 더 성장하고 성숙해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랐다. 여행의 모든 요소는 딸의 성장을 향해 수렴되고 있었다.

나를 위한 여행으로는 크게 생각해 보지 못했다. 리프레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딸에게 아빠가 중요하듯 아빠도 똑같이 딸에게 많은 영향을 받을 것이다. 딸에게 좋은 여행이라면 나에게도 분명 좋은 여행일 것이다.

그래서 딸을 위해 준비한 스페인 여행은 결국 나를 위한 것이기도 했다.




학교와 학원으로 고단한 일상에, 친구와 학업문제로 머리가 복잡하고, 다양한 문화의 홍수 속에 가치관의 혼란으로 힘든 시기. 늘 졸리고 피곤하고 짜증이 나는 학창 시절의 중심에 있는 중학교 3학년 시절에 2주간의 시간을 내어 아빠와의 여행을 선택해 준 딸이 용감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졸업사진과 수행평가, 기말고사까지 많은 것을 포기하고 뒤로하면서 말이다.

여행하는 동안 여러 가지 이슈와 돌발상황 속에서 딸은 늘 나를 격려하고 위로했다.

여행을 갔다 오면 어른이 되어있을 거라 농담 삼아 얘기하곤 했지만 어른과 아이의 경계가 모호해질 만큼 딸은 이미 많이 자라 있었다. 우린 서로에게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서로의 지지자였다.

지금은 내가 보호자지만 머지않아 딸이 나의 보호자가 될지 모른다.


이제 고등학교, 대학교를 지나 사회의 구성원으로 성장해 가며 물리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아빠와 딸의 관계는 다소 소원해질 것이다.

하지만 스페인에서 서로를 의지하며 어려움을 헤쳐나갔듯 우리는 앞으로도 함께 할 것이다.


비록 신혼부부로 잠시 오해받기도 했지만 두 손을 꼭 잡은 우리는 아빠와 이다. 아주 특별한!

#스페인여행 #아빠와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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