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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타이거 Sep 23. 2024

글쓰기를 위한 글쓰기

근육은 반드시 생긴다!

추석연휴와 이어진 휴가다.

꿀 같은 늦잠을 자고 반쪽 하루를 시작할 수도 있지만, 출근하는 아내와 학교 가는 딸을 따라 무거운 몸을 일으킨다.

비 예보가 있어 그런지 삭신이 쑤시고 일어나기가 더 힘든 아침이다(언젠가부터 이 말이 진짜라는 걸 내 몸이 증명하고 있다)

하지만 이 순간만 이겨내면 나만의 온전한 하루를 만끽할 수 있다는 생각에 기적적으로 정신을 차린다.


읽고 싶은 책과 노트북을 챙겨 길을 나선다.

딸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너무 이른 시간이라 맥오리로 향한다.

모닝세트가 맛은 별로지만 가성비가 괜찮다.

친절하게 곳곳에 전원 소켓도 설치되어 있어서 별다방 커피 한잔 비용에 아침까지 해결하며 눈치 안 보고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오늘은 꼭 글 한편을 완성시키리란 다짐과 의욕이 가득하지만 우선 책부터 읽는다.

글을 쓰는 건 너무 귀찮고 어렵고 고통스럽고 힘든 과정이란 걸 잘 알기에 될 수 있는 한 뒤로 미뤄둔다.

독서도 지루해질 때쯤 핸드폰에 손이 간다.

위기다. 

나만의 소중한 시간을 순삭 해버릴 위기가 찾아온 것이다.

잠깐 머리만 식히자는 생각으로 손을 댄 게 실수였다. 

순식간에 나의 피 같은 한 시간이 삭제되었다.

극한의 절제력으로 핸드폰을 내려놓고 노트북을 연다.




난관을 헤치고 드디어 브런치를 연다.

시선을 끄는 흥미로운 제목들이 많다.

어쩜 제목들을 이리도 잘 짓는 걸까. 제목을 보고 읽을 글을 선택하는 건 당연하다. 그래서 매력적인 제목일수록 조회수도 오르고 다음 메인에 뜨는 행운도 찾아온다.

나에게도 2번의 행운이 있었지만 일부러 낚는 제목은 양심상 못하겠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거 없다란 말을 들을 바엔 유명해지지 않는 게 낫다.

평소 생각날 때 적어두었던 제목들을 다시 열어본다.

제목은 그럴듯한데 막상 시작하려니 한 줄도 쉽게 써지지 않는다.

역시 가볍고 일반적인 주제가 쉽다. 흔하고 뻔한 얘기지만 글은 쉽게 쉽게 써내려 가진다.

하지만 역시 지웠다 썼다를 수도 없이 반복한다.

개인적으로 제일 못 참는 일 중 하나가 뻔한 얘기 듣는 거다. 그런 내가 스스로 뻔하게 느껴지는 얘기를  쓴다는 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이토록 어렵고 하기 싫은 글쓰기지만 멱살이라도 잡는 심정으로 포기하지 않고 끌고 가고 있는 이유가 뭘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요즘은 나의 역사를 기록으로 남긴다는 점에 큰 의미를 두는 것 같다.

나이가 들수록 기억력이 감퇴함을 느낀다. 원래도 기억력이 좋지 않은 편이었지만 요즘은 더하다.

사람들의 신상을 물어보기가 겁난다. 꽤 가깝게 지내는 사이인데도 이 사람이 결혼을 했었는지 애기가 있었는지 갑자기 생각이 안 날 때가 있다.

그래서 기억해야 될 필요가 있는 사람들의 신상을 메모하는 버릇이 생겼다. 자녀 이름이라던지 하는 일이라던지 적어놓지 않으면 실수하고 만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중요하게 기억에야 하는 건 나에 대한 기억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는 어떤 마음과 생각과 태도로 살아왔고 또 살아가고 있는지. 

기록이 없다면 전혀 생각나지 않을 때가 올 수도 있다.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았던 기억보다 왠지 소홀했고 제대로 못 챙겼던 일만 머릿속에 남을지도 모른다.

그런 기억들이 후회와 아쉬움만 만들어 낸다면 나를 추억하는 일이 얼마나 괴롭겠는가.

예전 사진을 봐도 잘 기억이 안 날 때가 있다. 하물며 그때의 생각과 마음까지 떠올릴 방법은 없다.




글을 쓰는 건 정말 어렵다.

머릿속을 떠도는 수만 가지 생각 중에 쓸만한 것들을 잘 솎아내서 내가 하고 싶은 말로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문장으로 만들어가는 고차원의 복합적 뇌 운동이다.

글 쓰는 것도 운동과 같아서 꾸준히 하면 더 잘할 수 있는 근육이 발달한다고 한다.

그러기 위해 글쓰기를 위한 글쓰기가 필요한 것 같다.

주제가 떠오르지 않아도, 생각이 잘 정리되지 않아도, 바쁘고 힘들더라도 일단 적어야 한다.

가만히 기다린다고 주제가 떠오르거나 생각이 정리되거니 여유가 생기지는 않는다.


오고 가는 지하철 안에서, 병원에서 대기할 때, 식당에서 음식을 기다릴 때, 그리고 화장실에서도. 

틈틈이 한 문장씩 억지로라도 적어보자.

그것이 단지 글쓰기를 위한 글쓰기일지라도 글쓰기 근육은 미세하게 만들어지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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