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샐러리맨
직장인에게 점심시간은 참으로 소중하다.
회사에서 내가 주도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시간이다.
점심을 포기하고 낮잠을 청하는 선배, 1인석에 앉아 블루투스를 꽂고 너튜브를 시청하는 후배들, 함께 모여 수다를 떨며 식사를 하는 여사원들, 일찍 밥을 먹고 독서를 하고 있는 선배도 있다.
예전에 볼 수 없었던 자유로운 점심시간의 풍경이다.
1시간 남짓 짧은 시간이지만 각자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며 잠시 자유를 즐긴다.
하지만 점심시간에도 밥만 먹고 바로 업무로 돌아가야 하는 때가 있다. 물론 바쁜 업무가 있을 때는 누구나 그럴 수 있겠지만 늘 고정적으로 점심시간에도 일을 하고 있는 멤버들이 있다.
그들은 야근도 자주 한다.
바쁜 사람들은 늘 바쁘고, 여유가 있어 보이는 사람은 늘 여유로워 보인다.
직장생활의 미스터리다.
늘 바쁜 사람들은 직장 생활이 만족스러울까?
아니면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직장 생활이 더 즐거울까?
3년 정도 월급을 받아온 직장인이라면 이 질문의 답이 비슷할 거라 예상한다.
"어차피 직장생활 다 거기서 거기지머."
맞다. 바쁘면 바쁜 대로 머리가 복잡해서 스트레스고, 여유가 있으면 마음이 편하지 않고 압박을 느끼기 마련이다. 자본주의 시스템에 젖어있는 우리에게 내가 받는 월급보다 회사에 기여한 부분이 더 적다는 생각만큼 자존심 상하는 일도 없다.
물론 이건 개인의 기준치에 따라 상당한 차이가 있다. 옆에서 볼 때는 충분히 열심히 했다고 생각하지만 스스로 부족했다고 느낄 수도 있다. 반대로 본인은 많은 일을 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주위 사람들에게는 설렁설렁 일하는 사람으로 인식되어 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예전과 달리 일하는 문화가 상당히 자유로워진 요즘에는 직원들 간의 차이가 더 눈에 띄는 것 같다. 수직적인 업무지시와 철저한 납기준수가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던 그때는 개인별 업무량의 차이가 그리 크지 않았다. 결과물의 품질은 둘째치고 상사가 지시한 일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기일 내에 완료하는 게 기본 도리였다.
물론 요즘도 상사의 지시에 따라 일은 하지만 나의 의지와 노력에 따른 결과물의 차이가 커진 것 같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부분이 훨씬 많아졌다는 말이다.
스스로 비효율적인 업무 프로세스를 찾아 개선하거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고, 담당자가 정해져 있지 않은 애매한 일들을 적극적으로 나의 일로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YB 직원들은 일을 할 때 최소한의 에너지를 쓰기 위해 노력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효율성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마치 동료들보다 가장 적은 에너지를 쓰고 동일한 월급을 받는 것을 직장생활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면접 때부터 똑 부러지고 적극적이라 주목받던 후배가 있었다.
같이 입사한 동기와 비교되면서 좋은 평가를 받았던 후배였다. 하지만 입사 3년 차가 된 후배는 언젠가부터 소극적으로 바뀌었다. 먼저 의견을 내는 일도, 자발적으로 업무를 맡는 일도, 적극적으로 업무를 추진하는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의미보다 효율을 택한 것일까.
인정과 보상의 프로세스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평가시스템과 조직문화도 문제지만 나 스스로 열심히 의미를 찾지 않으면 직장생활은 건조하고 답답하고 재미없는 곳이 될 가능성이 크다.
연차가 좀 지나다 보면 회사의 보상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내 주변 사람들의 평가가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입사 초반에 형성된 나에 대한 평가는 회사생활 내내 웬만해선 잘 바뀌지 않는다.
그만큼 주변의 평판은 중요하고 사람은 잘 안 바뀐다는 뜻인 거 같다.
직장은 일을 하는 곳이지만 일도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찌 보면 사람으로 인해 생기는 스트레스가 대부분일지도 모른다.
정신승리라 부르는 자기 합리화로 직장생활의 가치를 효율로만 생각해서는 절대로 행복할 수 없다고 감히 단언한다(정신적으로 정상범위 기준으로). 스스로 행복하다고 느껴도 그건 거짓일 가능성이 높다. 남들이 인정하지 않는 행복이 의미와 가치를 부여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직장생활의 의미는 나 혼자 정신승리로 의미를 가진다고 해서 생기는 건 아니다.
타인의 인정으로 비로소 완성된다.
가끔은 비효율적일지라도 다른 사람의 업무를 먼저 도와줄 수도 있고 상사가 지시한 업무가 아니더라도 스스로 더 알아보고 정리해 볼 수는 마음의 여유가 필요하다.
직장을 나에게 있는 에너지를 최대한 적게 뺏겨야 하는 곳으로만 생각해서는 마음이 더욱 강퍅해지고 조급해질 뿐이다.
내 삶의 일부, 아니 큰 부분인 직장생활에 좀 더 너그러워지자.
효율보다는 의미를 찾자.
일을 하면서 성장하는 즐거움,
동료를 도와주면서 얻는 뿌듯함,
내 일을 통해 타인을 이롭게 하고 세상을 좋은 방향으로 변화시켜 간다는 기쁨과 보람 같은.
직장생활의 희로애락, 업무의 모든 성공과 실패에 나만의 의미를 입히는 순간 그것은 내 삶의 소중한 사건으로 기록되고 나의 직장생활을 풍성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