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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타이거 Aug 02. 2022

직장인의 생존 운동

너무 피곤해서 견딜 수 없었다. 오후 3시만 되면 어김없이 뒷골이 당기고 눈앞이 멍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업무에 집중이 안되고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았다. 더 이상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둘째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려면 7년이나 남았다. 매일 아침 어깨에 곰 한 마리를 얹고 출근하는 시간이 너무 괴로웠다.

이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이것저것 찾아보고 고민해봤지만 결국 솔루션은 운동이었다.


헬스, 줄넘기, 조깅, 자전거. 지금 당장 쉽게 시작할 수 있는 운동을 생각해봤지만 스스로 꾸준히 계속할 자신이 없었다. 약간의 강제성이 있으면서 운동도 많이 되고 재미도 있는 아이템을 찾다가 동네 복싱 학원에 등록했다. 일단 비용이 들어가니 강제성이 생겼고 계속 뛰니까 운동 강도는 높아 보였고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게 흥미로웠다. 체육관에는 TV나 영화에서 보던 것처럼 챔피언이 되려고 준비하는 비장한 모습의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부터 교복을 입고 온 중고등학생들, 다이어트를 하는 여성들, 직장인으로 보이는 남성들까지 회원들은 남녀노소 구분 없이 다양했다. 그동안 나보다 연장자로 보이는 사람은 많아야 3~4명 본 거 같다. 수강생이 100명은 훨씬 넘는듯하니 약 3% 안에 드는 고령자임이 분명하다.




체육관에 오면 몸풀기로 먼저 줄넘기를 4라운드 한다(1라운드는 3분). 거울 앞에서 쉐도우 복싱을 4라운드 정도 연습하고, 샌드백을 6라운드 치면 된다. 샌드백을 치는 중간에 보통 코치들이 와서 미트를 잡아준다. 처음엔 줄넘기도 쉽지 않았다. 몸은 무겁고 무릎은 아팠다. 너무 오랜만에 해서인지 박자도 잘 안 맞았다. 쉐도우 복싱은 더욱 난코스다. 거울 앞에서 폼을 잡는 게 여간 어색하고 쑥스러운 일이 아니다. 쉐도우 복싱은 원투부터 시작해서 쨉과 훅, 어퍼, 그리고 위빙, 더킹, 롤링 같은 방어기술에 턴과 스텝까지 콤비네이션으로 다양한 활용을 배운다. 보통 6개월 정도면 쉐도우의 기본 과정은 다 나가고 자유 연습을 하게 된다.

쉐도우 복싱이 끝나면 드디어 글로브를 끼고 샌드백을 친다. 힘들지만 스트레스가 풀리고 제일 재미있는 시간이다. 코치들의 미트 트레이닝으로 운동은 절정에 달한다. 보통 2라운드를 쉼 없이 미트를 때리고 나면 숨이 턱밑까지 차고 다리가 후들거린다. 가끔은 다 같이 타바타를 하거나 로드워크라고 밖에서 약 2km를 뛰고 오기도 한다. 그런 날은 땀이 비 오듯 쏟아지며 제대로 운동한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뿌듯하고 기분이 좋다.




아이들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태권도를 그만두었다. 수업이 너무 유아 놀이 위주이제 고학년이 같이 하기엔 시시해했다. 내가 복싱 학원을 한 달 정도 다녔을 때 나의 권유로 아이들이 합류했다. 운동량도 적당하고 분위기도 자유로워 아이들도 재미있어했다. 머지않아 아내도 합류했다. 우리는 4명이 함께 운동을 갔다. 학원비만 50만원이 넘었지만 소중한 건강에 투자한다고 생각하면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하지만 학원은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가 아니었고 나와 아내는 직장인이었다. 다 같이 시간을 맞추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운동이라는 것이 하고 나면 너무 뿌듯하고 기분이 좋지만 체육관에 들어서기까지가 너무 힘들었다.

6개월 후 아들이 제일 먼저 낙오했다. 그리고 아내와 딸이 줄줄이 포기하고 이제 나만 남았다.

                                                                      

2014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 함상명 선수와 한 컷


나 역시 매일 운동을 갈 때마다 내면의 갈등을 겪고 있지만 포기할 순 없었다. 나에겐 생존이 걸려있기 때문이다. 주 5일을 다 출석한 주도 있고 한 번도 못 간 주도 있었다. 최소한 주 3회는 채우는 게 내 스스로의 기준이다. 복싱 10개월 차에 접어들고 있는 요즘 내 몸에 드라마틱한 변화는 없지만 오후 3시만 되면 집에 가고 싶어 견딜 수 없었던 피로감은 어느덧 사라졌다. 퇴근시간까지는 버틸 체력이 생겼다는 점에서 꾸준히 운동을 해온 스스로가 대견하다. 그리고 원래 아침은 안 먹었는데 이제 세 끼를 꼬박 챙겨 먹는다. 그만큼 밥맛도 좋아지고 소화도 잘된다. 밤에 잠도 잘 온다. 내 평생 이 정도까지 꾸준히 해본 운동도 없었다. 복싱이 나한테 잘 맞는다기보단 생존을 위한 절실함이 나를 힘겹게 끌고 가고 있는 것 같다.

상위 1%의 고령자가 되더라도 나의 도전은 멈출 수 없다. 노장은 죽지 않는다. 다만 느리고 약해질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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