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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배의 생각나눔집 Dec 21. 2020

우울증 과연 약이 답인가?

끝없이 추락 할 수 있는 우울증 그것을 보호해줄 따뜻한 유대

 책을 읽으면서 배웠던 내용중 실전에 적용하려는 것을 먼저 쓰고 서평을 이어나가 보려한다.
우울증은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회복될 확률이 높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방치해도 될만한 아니다,그렇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내가 우울증에 걸렸다면 따뜻한 인간관계의 연결을 의식적으로 만들어 나갈 것이며, 타인과만의 연결이 아닌 나와의 연결 (내가 지금 무슨상태에 있으며 어떤감정인지 무엇을 앞으로 해야하는지를 적으며 구체화 시키고) 계속해서 긍정적인 암시(플라세보) 주면서 꾸준한 운동으로 몸을 먼저 건강하게 만들어 나갈 것이다.

반대로 상대방이 우울증 증상이 보인다면 나는  사람에게 무슨일이 있었는지 신경을 쓰며 그냥 지나치기 보다 따뜻한 말한마디 건네주며 긍정적인 에너지를  사람에게 전달하려고 할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신적으로 고통스럽다면 그때 전문가와 상담을 하면서 
약을 먹어야 하는 상황인지 아닌지를 그때가서 판단을 해야할  같다.

정신과의 약은 내가 증상이 있다고 해서 단순히 약을 먹어야지 하는 생각은 “프레질하다.   
왜냐하면 아직 정확하게 인과관계가 나온것이 아니도 정신과 의사도  이게 이렇게 되는것인지 모르기 때문이며 또한 부작용의 사례가 너무나도 많기 때문이다.

모든 정신과 약이 그렇다. 약물과 뇌의 복잡한 화학물질에 관해 확신할  잇는 사실은 하나뿐이다. 우리는 약이 작용하는 방법과 이유를 
과거에도 정확히 몰랐고 현재까지도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정신의학계는 아직 몸이 희생되지 않는 약을 찾지 못했다.  세상 모든 정신과 약은 ‘기브  테이크. 무엇이 희생되는지 확실하지 않은 경우도 있다. 약을 장기간 복용했을  뇌가 어떻게 되는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시작이 “”  그다음이 “

20세기 중반의 정신과 약은 대개 이런 식으로 

개발됐고 현재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약을 먼저 만들고 나서  약이 정확히 어떤 병을 

치료하는지 확인한다는 소리다.
약물 연구는 뜻밖의 발견, 직감으로 시작되고 

명확한 목표 없이 연역적으로 연구를 진행한다.
흘러들어 오는 정보의 조각들을 걸러서 정리하면 다음 단계가 보인다.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새로운 약이 등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약이 어떤 병을 치료하는지, 어떤 환자가 도움을 받을지에 대한 답은 여전히 모르는 경우가 많다.

생각해보면 모든 약이 그렇다. 분명 과학자의 연구에서 비롯됐지만, 진정한 뿌리는 깊은 , 상상에 있다. 용도가 명확한 약을 만드는 작업보다는 소설을 쓰는 작업에  가깝다.

가이기는  약을 임상 현장에서 사용할 수면제로 만들  있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이야기를 접할 때마다 약물 연구의 자유로운 성격에 놀라게 된다. 원래 가이기 연구 팀이  약으로 치료하려 했던 문제는 불면증이 아니었다. 특별히 불면증에 관심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특별히 불면증에 관심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많은 사례가 보여주듯  시작은 약이고 병은 그다음이었다.

소라진이 굴린 지식열차

그렇다면 어떻게,  효과를 보이는지 이론은 고사하고 가설도 없으면서 약을 처방한 의사들이 
무책임했던 것일까? 그렇다고 할수도 있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비밀이 밝혀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생명을 살릴  있는 약을 사용하지 않는다?
소라진은 우리에게 경험론의 순수한 힘을 보여준다.

사실 그때는 신경세포의 화학 신호 전달로 뇌가 작동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학자도 많았다.
대부분 뇌에서 벌어지는 신호 전달이 본질적으로 화학작용이 아닌 전기작용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소라진은 어떻게  효과를 보이는지 현실적으로 알아낼 방법이 없는 상황에서 출시된 셈이었다.

결과적으로 보면 소라진이 나왔기에 과학자들이 

소라진 작용의 비밀을 밝히려 애썼고 
그러다 신경의 결함을 발견했기 때문이다.이것이 바로 조현병의 정체였다. 이로써 소라진은 정신과학에 생물학적 혁명을 일으켰다. 새로운 언어와 사고방식을 받아들이며 정신과학은 의학으로 발전했다.

우리는 소라진의 이야기에, 소라진이라는 존재 자체에 감사해야 한다. 소라진 덕분에 굴러가기 시작한 지식의 열차는 아직 멈추지 않고 있다.


카리브해같이 눈부시게 투명한 염료는 프로메타진을 세상에 내놓았고 이후 소라진에 길을 내줬다. 그리고 소라진은 예민한 머리로 정신의학의 세계를 바꿔놓았다.

증가하는 우울증 , 유쾌하지 않은 실험데이터

그런데 이상한 현상이 나타났다. 프로작이 정말 우울증을 치료한다면 
출시와 동시에 우울증 환자 수가 급격히 늘어난 이유는 무엇일까?

모든 치료제는 각각 분명하고 확실하게  건강한 사회를 만들었다. 그런데 프로작은 반대였다. 프로작이 등장하면서 사회는 병들어갔다. 그것도  약이 치료한다는  병을 앓기 시작했다.

항우울제가 나온  우울증 발병률은 1000배로 뛰었다.

제약회사는 새로운 항우울제를 테스트할    가지 연구로 약의 효과를 증명하면 된다.
정보공개법에 따라 FDA에서 승인한 SSRI 비공개 연구 결과를 살펴본 이들은 
그리 유쾌하지 않은 데이터를 발견했다. 미국에서 판매되는 주요 항우울제 6종을 대상으로 실시한 실험 47  진짜 약이 속임약을 능가한 것은 겨우 21회였다. 반타작도  되는 수치다.
또한 FDA 약이 속임약보다 정확히 얼느 정도  효과적이어야 하는지 요구하지도 않는다.
평균을 내보니 진짜 약은 속임약보다 2점밖에 높지 않았다.  
하버드대 심리학 교수이자 속임약 연구 프로그램의 부책임자였던 어빙 키어시는 
 차이가 ‘미미하고 “임상적으로 의미가 없다라고 평가했다.


약을 먹은 환자와 약을 먹지 않은 환자

앞서 항우울제나 다른 정신과 약의 장기적인 부작용을 다룬 연구가 거의 없다고 했지만,
약을 먹은 환자와 약을 먹지 않은 환자의 운명을 비교하는 연구는 존재한다.
평생 정신과 약을 먹지 않은 성인 환자의 우울증은 23퍼센트가 1개월  치료 없이 완화된다.
기간을 6개월로 늘리면 67퍼센트, 1년의 경우는 85퍼센트가 우울증에서 벗어난다. 반면 약을 먹은 환자의 병은 점점 심해질 뿐이어서, 우울증 증상이 발현하는 간격은 갈수록 좁아진다.

항우울제로 “회복했다가 약을 끊은 우울증 환자의 상황은 특히 참담하다. 무수한 연구가 항우울제를 먹다가 끊을 경우 18개월 안에 우울증이 재발할 확률이 50~70퍼센트라고 증명한다.

그렇다고 조치를 안취할 수도 없는 우울증

아무 조치 없이 우울증 환자를 지켜만 보며 회복을 기다린다고 가정해보자. 수많은 연구자와 의사는 우울증이 우울증 치료제만큼 뇌에 해롭다고 했다. 우울증을 치료하지 않으면 뇌가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로 넘쳐나고 코르티솔에 장기간 노출되면 뇌의 전두피질이 약해진다.

우울증을 치료하지 않아도 뇌가 손상된다는 뜻이었다.
증상이 나타날  치료하지 않고 방치하면 회백질이 파괴돼 해마가 쪼그라들고 편도체가 회전하며 뉴런을 혼돈에 빠뜨린다.

맥락에 따라서는 안티프레질한 심리치료, 핵심은 따뜻한 연결

유형과 학파를 불문하고 심리치료를 받은 사람의 정신은 그러지 않은 사람보다 평균적으로 75퍼센트  건강하다. 남는 돈이   달러(혹은  천달러)있으면 심리치료에 투자해도 나쁘지 않다는 뜻이다.
불성실하게 띄엄띄엄 오는 환자도 치료를 시도한 것만으로 효과를 본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속마음을 털어놓는 행동  자체가 건강과 행복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그룹 가운데  번째 그룹에게는 평범한 일상에 대한 글을 쓰라고 했다.
예를 들어 현재 글을 쓰고 있는 연구실 풍경이나 접시를 닦고 말리는 행위를 묘사하라는 것이다.
 번째 그룹에게는 살면서 트라우마를 겪은 사건에 대해 쓰라고 했다.
 그룹은 자신의 이야기에 깊이 몰입했고  있고 강렬한 문체를 사용했다.
많은 학생이 글을 쓰면서 눈물을 훌쩍였다. 그들의 이야기는 읽는 사람에게도 장악력이 있었다.
그만큼 진심으로 와닿았다. 하지만 놀라운 결과는 따로 있었다. 펜네베이커는 글쓰기 숙제를 끝낸   개월 동안 학생들이 대학  상담소를   방문했는지  그룹을 추적해 확인했다.
 결과 트라우마 이야기를  학생이 사소한 일상에 대해  학생보다 상담소에 가는 횟수가 적었다.

고백하는 행위 자체에 건강과 행복을 증진하는 효과가 있었다. 그래서 어떤 종류든 심리치료가 대부분의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다. 의사의 전문 기술을 중요하지 않고, 결과를 좌우하는 것은 오직 환자가 선택한 이야기다. 단순히 과거를 되돌아보는 행위는 무의미하고 심리적인 성장이나 건강 증진을 가져오지도 않는다.
그보다는 “인과관계 나타내는 단어 “왜냐하면”, ”때문에”, “그래서  사용했을  문제의 근본에 도달해 건강이 좋아진다. 강력한 약은 언어다. 우리는 말로 면역력을 강화하고 염증 세포를 억누르고 뇌에서 엔도르핀을 분비시켜 행복해질  있다.

따라서 치료하는 의사는 중요하지 않다. 굳이 심리치료사의 도움 없이도 대화요법의 혜택을 누릴  있다는 것은 연구로 확증된 사실이다.

치료사의 경험과 치료결과의 상관관계가 0.01이라는 확실한 연구 결과가 있다. 다른 연구들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0.01 결국 0이다.  사이에는 아무 관계가 없고  사실은 수없이 증명됏다.

최고의 심리치료사를  그룹과 다정한 교수를  그룹 사이의 차이는 그리 크지 않았다. 연구 팀은 학생들의 긍정적인 변화가 “온정적인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치유의 덕분이라고 했다.
핵심은 따뜻함이었다. 연결이었다. 내게 신경을 써주는 사람과 의미를 찾고 이야기를 구성해나가는 과정이 중요했던 것이다.

플라세보

마음속에서 진심으로 느끼는 상처는 수학 교수가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다정하게 손을 잡아주기만 해도 치유할  있다. 누군가가 이야기라도 들어주면 인간은 절망을 견딘다. 그것이 속임약 효과의 본질 아닐까? 속임약을 뜻하는

 “플라세보(placebo)” 
내가 기쁘게 해주겠다( I will please)”라는 라틴어에서 유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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