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랑
나는 도시를 쉴 곳이 없는 곳이라 생각한다.
불안정한 시장은 청년들의 이상적인 주거지보다는 그나마 다행인 차악책을 고르도록 했고,
쉴만한 공간은 아이러니하게도 몰린 인파로 더 이상 쉴만한 공간이 아니게 되었다.
혼자만의 보금자리를 구분 짓는 벽은 본가의 거실과 안방을 구분 짓는 벽인지.
음악을 틀지 않으면, 공상은 불가능의 영역이다. 갑자기 들리는 낯선 소음들에 내 생각은 더더욱 컨트롤 불가한 상황. 집중력이 한없이 얕은 나를 탓해야 할지, 빌어먹을 집을 탓해야 할지, 경기를 탓해야 할지.
그렇게 쉴 곳 없는 도시를 어떻게 사랑해야 하나.
하늘이 기가 막힌 날엔 적당한 거리를 산책로로 활용하려 한다.
내가 정한 요즘의 산책로는 도서관을 가는 길. 퇴근 후 회사에서 30분 남짓 걸으면 도서관에 간다.
중간의 길이 아름답지는 않지만, 맑은 하늘을 향해 시선을 두면 그럭저럭 기분이 좋아진다.
하늘이 높고 구름이 유난히 하얀 날이었다. 빌려야 할 책이 있어 핑계 삼아 산책로 방문을 계획한다.
오후시간을 보내며, 집에 가고 싶어지는 욕구가 책은 다음에 빌려라는 마수를 뻗어온다.
오늘을 놓치면 한동안은 해야 할 일에 포함되어 있으려나. 굳이 안 가야 할 이유는 딱히 없어서 다행히 계획을 실천으로 옮긴다.
찰나의 고민은 부질없다는 것을 부러 티 내듯, 하늘은 유난히 아름답다.
사람마저 없으면 더 완벽할지도. 타인과 나의 공간을 평행세계처럼 만들면, 지금 이 거리는 온전히 나의 길일 텐데. 그럼 빈 가게네, 내가 뭔가 먹고 싶으면 어떡하지. 앞사람을 앞지르고 싶은 욕망에서부터 시작된 상상을 이어나간다. 뒤집어진 피부에 사려던 팩도 마침 보이는 드럭스토어에서 해결했다. 왠지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입가에 미소가 피어오른다.
책대출을 하고 나니, 광장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유년시절 당대를 아우르던 디바의 목소리. 한동안 푹 빠져있던 가수라 자연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멀리 서는 식별불가능한 실루엣에 내 시력은 누가 앗아갔나 투정하며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 가수가 맞다. 무대 앞에 멍하니 자리 잡는다. 온종일 집에 가고 싶었던 꽉 막힌 마음이 스르르 풀린다.
선선한 바람에, 오늘은 누구라도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마침 함께했던 피아노 연주자는 가수의 오랜 친구였고, 둘의 호흡은 시간이 증명한다는 듯 즉석으로 앙코르무대를 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던 곡.
그 곡이 끝나고 나서는 가수도 벅차올랐는지, 함께 한 시간에 대해 나눈다.
한동안 여운이 길겠다.
오늘의 도시는 꽤나 멋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