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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면글면 Jan 31. 2024

서른 넷에 대학원,
그리고 나를 사랑하는 연습

인생살이

11월부터 일을 쉬었다. 첫 회사를 그만두었을 때보다는 대책이 있는 상태였다.  

이직과 대학원 진학 준비를 동시에 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이직을 하는데 마음이 실렸지만, 원하는 조건의 회사와 포지션에 해당하는 공고도 적었고 면접에서도 번번이 탈락했다. '아직 내가 부족한가보다' 하는 심정으로 점차 대학원 진학에 더 힘을 쏟게 됐다. 


회사를 다니는 동안 일반대학원 24년 전기 모집 공고가 올라왔고, 총 4개의 대학에 지원했다. 일과 입시를 병행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이직이 원활하게 되지 않았던 터라 하나라도 붙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절박하게 준비했다. 이미 모집 기간을 놓쳐 지원조차 못하는 학교도 있었고, 급하게 딴 어학 점수도 마음에 들지 않아 아쉬웠다. 하지만 퇴사 후 일정이 없을 때 스스로 초조해하고 괴로워 할 내 모습이 눈에 선했기에 주어진 시간, 환경 안에서 최선을 다했다. 


서류 접수, 면접, 그리고 기다림. 

지원한 세부 전공은 마케팅이었는데, 나는 학부도 달랐고 타대생이었던데다 대학원에서 연구를 하기 위한 어떠한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 상태였다. 내가 가진 거라곤 관련 업계에서 약 6년간 일한 경력 뿐이었다. 그래서 솔직히는 다 떨어질 줄 알았다. 하지만 정말 감사하게도 세 군데에 합격해 행복한 고민을 하게 됐다. 물론 행복도 잠시 '공부하는 동안 돈을 못 벌텐데 어쩌지? 나는 월급의 노예인데...', '대학원 공부를 잘 따라가지 못하면 어쩌지? 돈과 시간만 날리는 거 아닌가?' 하는 걱정이 밀려왔다. 


하지만 길이 열린 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도전하는 건 멋진 일이라고 스스로를 격려하며 대학원 등록을 마쳤다. 입학 전에 선행학습 해두면 좋을 것 같은 파이썬, R 관련 강의를 찾아 들었고, 영어 논문을 잘 읽기 위해 영어 독해 공부도 시작해보기로 했다. 내 현재 상태로 대학원에 가면 정말 힘들 거라는 걸 알았기에 매우 열심히 해야했지만 루틴이 잘 잡히지 않았고 잡생각이 점점 많아졌다. 


잡생각이 많다는 건 내가 불안하고 초조한 상태라는 거다. 인생 자체가 불확실함의 연속이라지만, 그 속에서 정신없이 휘둘리고 있을 때는 어떻게 벗어나야 할 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내면이 단단하면 생기지 않을 일이라고, 나만 잘하면 된다고 마음을 다잡으려 해도 좀처럼 잘 되지 않는다. 그렇게 괴로워 하는 날이 계속 되면 나는 '결국' 글을 쓴다. 글을 쓰는 일은 나에게 즐거운 일인데, 언제부터인가 다른 해야만 하는 일들 뒤로 순위가 밀리곤 했다. 세상의 타임 테이블에 치여 사느라 정작 나를 살펴보는 일이 뒷전이 된 게 어쩐지 서글프다.


작은 일기장에 그간의 복잡했던 생각, 마음들을 솔직하게 적어내려갔다. 미래에 대한 불안, 사람 간의 관계에 대한 염려와 혼란한 마음... 남에게는 차마 할 수 없었던 나의 깊은 속 이야기들이 술술 풀려나왔고, 억누린 감정들을 토해내듯이 순식간에 노트 5-6장을 채웠냈다. '아 후련하다!' 싶을 때쯤 펜을 내려두었다. 


_

하루 세 끼 밥을 챙겨먹는 것, 삶을 영위하기 위해 돈을 버는 것.

내가 중요하다 여기고 또 매일 당연하게 해낸 일이다. 하지만 내 내면에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하는 일에는 소홀했던 것 같다. 내 몸에 다양한 영양소가 골고루 필요한 것처럼, 나를 지탱해주는 힘, 나를 나답게 살게 하는 힘, 세상에 휩쓸리지 않고 중심을 지키는데 필요한 힘을 기르는데도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오늘 나를 건강하게 하는데 필요한 에너지를 얼마나 공급했는가. 

성경을 묵상하고, 햇빛을 보며 가벼운 산책이라도 하고, 일기를 쓰고, 또 새로운 것에 관심을 갖고 도전하고 배웠는가. 매일 스스로에게 묻고, 부족함이 없도록 정성스럽게 살펴주어야겠다. 

그렇게 매일 나를 지키는 훈련을, 사랑하는 연습을 해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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