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배구] 사람은 사람에게 영향을 준다

내가 빠지게 된 배구에 대하여

by 매듭달

"꿈을 가지고 그걸 향해 정진하는 사람들이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축복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은 사람에게 영향을 준다. 이들과 좀 더 가까이, 오래 있고 싶어, 그럴 수 있을 방법을 생각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웹툰 '진눈깨비 소년'의 대사다. 주인공은 일반 마케팅 홍보팀에서 일하다가 고등학교 선배의 권유로 드라마를 제작하는 팀에 들어가게 된다. 드라마에 애정을 가지고 열정적으로 드라마 제작에 임하는 사람들을 보며 주인공은 그들의 열정을 닮게 된다. 자신이 원하는 목표를 향해 열심히 달려가는 사람들을 보는 것만으로 나의 삶을 열심히 살고 싶은 열정이 생긴다. 정말 사람은 사람에게 영향을 주는 것 같다. 나에겐 2021년 여름이 그랬다.


2021년 여름은 나에게 여자배구로 기억된다. 대한민국 여자배구의 첫 경기는 브라질이었지만, 그때는 배구에 큰 관심이 없었기에 그저 결과만 봤다. 가나 전 역시 마찬가지였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도미니카전부터 경기를 챙겨보기 시작했다. 올림픽 여자배구를 챙겨봤던 친구의 추천도 있었고, 아마 다른 종목의 경기 중에 관심 있는 경기가 없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즐겨보는 스포츠라고는 아빠와 오빠를 따라 보던 축구밖에 없던 내가 배구라는 세계에 처음 들어가 보았다.


경기가 시작되었는데, 코트 위에 아는 대한민국 선수라고는 그 유명한 배구황제 김연경뿐이었다. 사실 그마저도 그저 ‘나 혼자 산다’에 나왔던 배구 선수, 해외에서 뛰고 있는 배구 선수라는 것밖에 몰랐다. 그렇게 잘 알지도 못하는 선수들이 하는, 잘 알지도 못하는 배구를 보기 시작했다.


배구를 모르는 내가 봐도 도미니카 선수들의 체격과 파워는 우리나라 선수들과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코트에는 공을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악착같이 공을 따라가서 수비하고 상대 코트에 공을 떨어뜨리기 위해 어떻게 해서든 버텨서 득점을 해내는 선수들의 정신력은 신선한 충격이었고 재미였으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경기하는 선수들을 응원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나 계속해서 이어지는 랠리와 빠르게 진행되는 경기, 끈질긴 수비와 시원한 공격이 정말 재미있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배구를 봤다. 이렇게 재미있는 스포츠를 난 왜 지금에서야 알게 되었을까. 마지막 5세트까지 간 대한민국은 결국 도미니카를 이겼다.


배구의 재미를 알게 된 이후, 다음은 한일전이었다. 여자배구 한일전이 열리는 날, 비슷한 시간에 야구, 축구 모두 경기가 있었기에 아쉽게도 상대적으로 인기가 적은 여자배구는 TV 중계를 해주지 않았었다. 그래서 TV로는 아빠와 오빠가 축구를 보고 나는 노트북으로 지상파 홈페이지에 들어가 중계를 틀고 봤다.


일본의 수비는 정말 어나더 레벨이었다. 키는 작지만 빠른 발로 공을 쫓아가는 수비가 정말 대단했다. 하지만 우리나라도 그에 지지 않고 강한 공격과 상대적으로 큰 키의 블로킹으로 대응했다. 각자의 장점을 잘 살린 플레이들이 정말 재미있었다. 특히나 마지막 5세트는 정말.. 대역전극이었다. 1점만 내주면 경기가 끝나고 8강 진출이 불투명해지는 상황에서 선수들을 되레 침착했다. 자기 실수 한 번에 팀이 질 수 있는 상황에서 침착하게 자신이 해야 할 것들을 했다. 결국 듀스를 만들어내고 결국 일본에게 이겨 일찍이 8강 진출을 확정 지을 수 있었다.


그리고 대망의 터키전. 여자배구 세계 4위라는 터키를 과연 우리나라가 이길 수 있을까. 하지만 뭔가 이길 것 같았다. 일본 전부터 점점 여자배구를 보는 사람들이 많아짐을 느꼈기에. 우주의 기운이 우리나라를 응원하고 있는 기분이었달까. 그렇게 시작된 터키 전은 정말 심장이 두근거리면서 봤다.


한 세트씩 가져가고 3세트에서도 초접전이었다. 듀스를 이어가며 마침내 가져온 3세트. 하지만 분위기를 이어가지 못하고 4세트를 내줬다. 또 가게 된 5세트. 도쿄올림픽 여자배구는 5세트가 기본이었다. 하지만 도미니카전도 일본전도 모두 5세트를 가서 이겼기에, 질 것 같지 않았다. 올림픽 이전 경기들로 인해 성하지 않은 몸으로 이 악물고 수비하고 공격하는 대한민국 여자배구 선수들을 보면서 나 역시 이 악물고 응원했다. 공격적인 면에서도, 수비적인 면에서도 터키는 엄청난 경기력을 보여줬기에 5세트도 참으로 쉽지 않았지만 결국 이겨냈다. 눈물을 흘리는 선수들을 보며 나도 왜인지 눈물이 났다. 아무도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대한민국이 배구 강국 터키를 이기다니.. 감동이었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이야기했던 것을 결국 모두가 함께 끝까지 해내서 가능하게 만든 선수들이 대단했다.


배구 경기를 보다 보면, 중계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말이 있다. '기회는 반드시 옵니다. 그 기회가 왔을 때, 기회를 우리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별 것 아닌 말일 수 있었지만, 그 말은 나에게 참으로 힘이 되었고 용기를 줬다. 그리고 힘든 상황에서도 절대 포기하지 않고 악착같이, 끝까지 해내서 그 기회를 결국에는 자신들의 것으로 만든 선수들을 보면서도 힘을 얻었다. 당시 취업 준비를 하고 있었던 나에게, 매번 불합격과 마주했던 나에게 너무나 새롭고 좋은 자극이었다. 저들도 저렇게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데, 나도 무슨 일이든 끝까지 열심히 해야겠다, 열심히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보자, 해보자. 후회하지 말고’라는 말처럼 나는 다시 취업 준비에 나섰다. 그리고 나에게 찾아온 한 번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나의 것으로 만들었다.


비록 올림픽 4강에서 세계 2위 브라질을 만나고, 3,4위전에서 세르비아를 만나, 지면서 메달 없이 도쿄올림픽 4위에 머물렀다. 하지만 여자배구 선수들이 보여준 끈기와 열정 그리고 거기서 오는 배구의 재미와 매력 덕분에 나는 처음으로 국내 여자배구 프로 경기를 챙겨보게 되었다. 응원하는 팀도 생겼다.


가끔 지치고 스스로가 열정이 떨어진다고 생각할 때마다 도쿄올림픽 여자배구를 찾아본다. 그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다시금 내 안에 열정이, 끈기와 독기가 불타오른다. 그들이 보여준 열정을 닮게 된다. 덕질 DNA라곤 없는 내가 이렇게 오랜 시간 무언가를 좋아할 수 있다니, 신기할 따름이다. 그래서 역시나 사람은 사람에게 영향을 주나 보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과 영향을 주고받았지만, 중요한 시기에 접했던 배구라는 스포츠, 그 안에서 경기하는 선수들이 준 영향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