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10대를 질풍노도의 시기라 그랬는데 왜 앞자리 2가 익숙해진 지금까지도 방황하고만 있는 걸까.
나는 참 열심히 치열하게 살아왔던 것 같은데
최선을 다해도 돌아오는 건 '탈락'뿐.
어쩌면 열심히는 살았는데 잘 산 건 아닌가 보다 하는 생각도 든다.
매일 밤 잠을 뒤척이게 되었다. 잠이 오질 않는다.
해가 뜰 때까지 눈만 꿈뻑이며 새벽 내내 온갖 잡생각을 다 한다. 잡념의 대부분은 걱정이다.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네.
어릴 적 읽었던 책에서 본감명 깊은 구절이었는데, 이젠 이것도 안 통한다.
아무도 나를 원하지 않는 것 같은 좌절감과 미래에 대한 불안이 너무 커서 비관이라는 우물 속을 안식처로 삼는 개구리가 되려 하나보다.
10명 남짓을 뽑는 인턴직에 천 명 가까운 사람들이 지원했다. 수 백 명의 사람들 중 내가 10명 안에 들기는 어려웠나 보다. 나머지 수 백 명을 제치고 눈에 띌 만한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겨우 6개월짜리 단기 계약직, 그것도 정규직 전환 가능성이 0%인 일자리지만 그 일을 쟁취해내려면 남달라야 한다. 다 똑같이 생긴 서류 속에서 빛나는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인턴을 통해 경험을 쌓겠다며 호기롭게 뛰어들었다. 그러나 인턴을 지원하면서도 인턴 경험이 있는지를 묻는 질문에 답해야 한다. 그게 없다면 독창성 -10점 뭐 그런 걸까?
내 소원은 사방으로 다리 찢기를 할 수 있는 자취방으로 이사를 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요즘의 소원은 제발 면접이라도 보게 해 달라는 것이다. 아니면 나의 탈락 사유라도 알려줬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다. 탈락이 쌓이고 쌓여 이젠 제법 덤덤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새로운 탈락은 힘들다. 자존감이 바닥을 치는 요즘이다.
너는 잘못된 게 없다고 내게 말해주고 싶다. 너는 잘못 살아오지 않았다고, 너는 게을리 살아온 게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다.
나는 안다. 지금 나와 같은 시기를 겪고 있는 모두는 정말 치열하게 살고 있다는 걸. 이 세상에서 제 밥값은 하는 인간이 되어보겠다고 열심히 발버둥 치고 있다는 걸. 그 어느 세대보다 빛나는 스펙을 자랑하는 우리 대부분의 꿈은 월급쟁이다.
칼 세이건 作 -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
칼 세이건은 <창백한 푸른 점>을 통해 지구가 우주 속 먼지에 불과함을 알렸다. 광활한 우주 속 먼지만 한 행성 지구에서 그 면적의 30%가 채 되지 않는 땅을 딛고 선 70억 개의 미세한 먼지들.
우리는 밤하늘의 은하수가 빛나는 것을 알고 있다. 머나먼 거리의 항성과 행성들이 빛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저 멀리 어딘가에는 분주하게 움직이는 70억 먼지들의 빛을 지켜봐 줄 누군가도 있지 않을까.
우리가 무심코 바라봤던 이름 모를 별은 우리처럼 고뇌를 태우며 그 빛을 낸 건 아니었을까.
어느 한 사람이라도 우리의 빛을 봐주기를. 끊임없이 자신을 태우며 내고 있는 작은 빛, 희미하고 때론 창백한 빛이더라도 누군가는 발견해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