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 이야기
퇴사한지 3달째. 쉬고 있는 중. 음 말그대로 백수생활중이다. 나는 지금 제주에 와 있다. 제주는 내가 나고 자란 고향이다. 사실 태어난 건 육지다. 하지만 태어나자마자 제주로 내려왔고 이곳에서 출생신고를 했다. 내 주민번호에는 제주사람임을 증명하는 숫자 9가 어엿히들어가 있다.
삶이 힘들고 지칠 때마다 생의 기쁨과 슬픔을 처음 느낀 그곳. 누군가를 처음 떠나보낸 그곳. 사람으로 태어나 느낄 수 있는 모든 감정을 처음 느꼈던 그곳. 제주를 늘 떠올렸다.
제주를 떠나온 지도 벌써 30년이 지났다. 몇 해 전 여행차 몇 번 제주에 들렀었다. 20여 년 만이었다. 그땐 단순히 쉼이 목적이었다. 2~3일을 우도에만 틀어박혀 있다 온 게 전부였다. 그런데 그렇게 몇 번 우도를 다녀올 때마다 마음 한구석에 허전함이 밀려왔다. 켜켜이 쌓인 어떤 그리움이 멍울져 올라와 목이 메였다.
다시 가야 한다. 내 마음 안에 그리움의 발자국을 선명하게 새겨놓은 그곳에 가야만 한다. 아직 완전히 놓지 못한 어떤 마음을 제대로 마주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밀려왔다. 지금이 아니면 남아 있는 미련을 다시는 놓치 못할 것만 같았다.
더 이상 미루지 말자 다짐하고 바로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그리고 주민등록 초본을 뗐다. 000의 자녀 000. 5년 전 떠나보낸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이름 세 글자가 선명하게 써 있었다.
그녀와 그는 소개로 만났다고 했다. 그가 동생들과 세 들어 살던 옆방에 그녀가 살고 있었다. 그녀는 그의 둘째 여동생과 친하게 지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그와 가까워지게 되었다. 그녀의 마음을 안 그의 여동생이 둘을 소개했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둘은 한 집살이를 하게 되었다. 둘은 서로의 몸을 섞어 뜨겁게 사랑을 나웠고 자신들을 빼다 박은 첫 딸을 낳았다. 두 사람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핏덩어리 딸을 안고 제주로 내려갔다. 2년 후 그들은 그곳에서 둘째 아들을 낳았다.
내 역사는 대충 이렇게 시작되었다. 사실 자세한 이야기를 당사자들에게 직접 듣진 못했다. 둘을 잘 알고 있는 그의 여동생이 들려준 이 이야기가 내가 아는 전부다.
나는 천천히 주민등록 초본에 나온 주소를 살폈다. 그리고 노트북 앞에 앉아 네이버 지도창을 열고 주소를 검색했다. 지번으로 나온 구주소를 넣자 컴퓨터는 재빠르게 새롭게 바뀐 주소로 안내했다.
'역시 최신 문물이 좋긴 좋구나'
해당 주소가 어딘지 빨간 선으로 표시된 네이버 지도가 눈 앞에 펼쳐졌다. 일반지도, 위성지도, 지형 지도, 거리뷰까지 볼 수 있었다.
'어차피 찾아갈 건데 미리 봐서 뭐해. 그냥 보지 말까? 아니야, 혹시 잘못 찾아갈 수 있을지도 모르니 미리 봐두지뭐. 직접 보는거랑은 또 다르니까'
떨리는 마음으로 내가 찾아갈 첫 장소의 거리뷰를 클릭했다.
<사진출처: Pexels,Nick Demou 님의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