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있는 일에 대하여

by 지훈

삶을 왜 고통이라 부르는가.

고통이라 말하는 순간, 그 말에는 이미 과거의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고통이란 언제나 비교에서 온다.

어제보다 나쁜 오늘, 남보다 모자란 나, 가질 수 없는 무언가. 그 모든 비교는 과거를 전제로 한다.

그리고 그 비교의 축 위에서 우리는 결핍을 발견한다.


결핍은 소유를 부른다.

그리하여 우리는 삶을 내 것이라 부르고,

그 순간, 삶은 무게를 갖는다.


하지만 삶은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다만 한순간의 있음, 한 점의 깜박임일 뿐이다.

내 것이라 부르는 순간 그것은 이미 사라져 있고,

나라 부르는 존재조차 순간의 인연으로 이어진 환상일 뿐이다.


생(生)은 필사(必死)하며, 명(命)은 필암(必暗)한다.

이 단순한 사실을 우리는 늘 외면한다.

영원히 이어질 것처럼 하루를 붙잡고,

끊어지지 않을 것처럼 관계를 쥐고,

멈추지 않을 것처럼 나를 다그친다.

그러나 모든 것은 끊임없이 흘러가고 있다.

無常.


삶은 선이 아니다.

그저 점, 하나의 순간일 뿐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 점들을 이어 선을 만들고, 그 선 위에서 나라는 이야기를 쓴다.


그러나 그 선은 실재하지 않는다.

단지 점들이, 인연들이, 덧없이 이어질 뿐이다.


“이랬기에 이럴 것이다.”

이 말은 어쩌면 가장 세속적인 주문일지 모른다.

인과의 사슬 속에 자신을 묶어두고, 모든 고통에 이유를 달며 살아가는 주문.


하지만,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다. 인연의 법칙은 존재의 연쇄이지, 필연의 구속이 아니다. 그저 한 점이 사라지고, 다른 점이 나타나는 일.


그뿐이다.


고통은 그 단순한 흐름을 거스르려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마음, 다시 그때로 돌아가야 한다는 마음. 그 마음이 시간을 선으로 만들어 우리를 묶어둔다. 그러나 모든 것은 인연으로 생겨나고, 인연으로 사라진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고통은 더 이상 이름 붙을 수 없게 된다.


삶은 갖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이다.

그저 지금의 점으로 충분하다.

점은 그저 찍히는 일이며, 사라지는 일이다.

그것이 生이고, 또한 無이다.


아아, 조금은 알겠다.

삶이란 결국 그저 있음의 다른 이름이었다는 것을.


무상하기에 아름답고, 무소유이기에 자유로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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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훈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소속 KAIST 직업 학생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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