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소개서의 역설

by 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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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소개서를 쓴다는 일은 늘 어렵다. 고개를 숙이고 글을 쓰다 보면 머리가 아프다.

나라는 존재를 단어로 묶어 정리한다는 일이 쉬울 리가 없다.


나라는 사람은 매 순간 변화한다. 지금의 나는 방금 전의 나와 다르고,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달라질 것이다.

그런데 자기소개서를 쓴다는 것은 그 변화를 무시한 채, 내 모습을 몇 개의 단어와 문장으로 고정하려는 시도다.

더 나아가, 내가 나를 정리하는 이 표현이 진정 나를 담아낼 수는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자기소개서를 쓴다. 처음 시작은 보통 대학 지원서일 것이다.

대학이라는 집단이 요구하는 기준에 맞춰 내가 적합한 사람임을 증명하는 글.

이는 곧 내가 속하려는 집단이 나를 판단하기 위해 필요로 하는 기준에 나를 맞춰야 한다는 의미다.

이 과정은 나를 고정시키고, 내가 진정 어떤 사람인지 흐릿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과정은 사회에 있는 한 끊임없이 이어지겠지.


사람들은 자기소개서를 통해 나를 확실하게 드러내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 기대는 단지 집단의 안정감을 위한 것이다.

내가 변하지 않는 사람이라 믿고 싶고, 그래서 그들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 여기고 싶어 한다.

확실함을 원하는 마음은 개인의 것이 아니라 모두의 것이다.

자기소개서는 그런 마음이 만들어낸 도구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 글을 쓰는 과정은 한 가지를 깨닫게 한다. 나는 본질적으로 고정될 수 없는 존재다.

단어와 문장이 나를 담아내기엔 나는 너무 유동적이다. 그리고 그것은 나를 고정하려는 이 과정이 어렵고 괴로운 이유다.

자기소개서를 아무리 잘 썼다고 생각해도 만족할 수 없는 이유다.

제목이 ‘최종’, ‘최최종’, ‘진짜_최종’으로 늘어나는 이유이기도 하다. 완전한 자기소개서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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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소개서를 쓰는 일은 가치가 있다.

그것이 나를 가두려는 글이라 해도, 글을 쓰는 동안 나는 내가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글이 끝날 때쯤, 나는 이미 새로운 내가 되어 있다. 자기소개서는 내가 누구인지 명확히 보여주는 글이 아니다.

그보다는 내가 변화한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흔적이다.


결국 자기소개서는 내가 나를 정의하려는 시도이자, 동시에 그것의 불가능함을 깨닫는 과정이다.

그것은 불완전한 나를 드러내는 일이며, 그 자체로 내가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다.

이 글을 쓰며 나는 변화했고, 그 변화 속에서 또 다른 나를 마주한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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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훈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소속 KAIST 직업 학생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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