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과 쾌락의 공통점과 차이점
어느 날 문득, “행복과 쾌락은 어떻게 다를까?”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둘 다 분명 기분 좋고 즐거운 감정을 가리키는 말인데, 어쩐지 우리는 ‘행복’이라는 단어에 더 큰 가치를 두면서, ‘쾌락’이라고 하면 왠지 음지나 위험한 느낌을 연상하곤 한다. 게다가 살면서 행복한 사람이라는 말에는 동경이 담겨 있고, 쾌락적인 삶이라고 하면 마치 방종의 이미지가 함께 떠오르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사람들의 인식이 엇갈리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그 차이를 명확히 하고자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다 보니, 게임 스킬에 비유하는 방법이 의외로 효과적인 설명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먼저 사전을 살펴보면, ‘행복(幸福)’은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함, 또는 그러한 상태”라고 한다. 반면 ‘쾌락(快樂)’은 “감성의 만족, 욕망의 충족에서 오는 유쾌하고 즐거운 감정”이라고 말한다. 둘 다 ‘만족’이나 ‘기쁨’을 핵심으로 삼고 있으며, 정의만 놓고 보면 그 경계를 뚜렷하게 가르기 쉽지 않다. 하지만 일상적인 맥락에서 우리는 행복을 더 장기적이고 안정된 느낌으로, 쾌락을 그 순간의 강렬한 유쾌함에 가깝다고 인식한다.
실제로, 우리 뇌에서 일어나는 신경전달물질 분비 과정을 보면 행복과 쾌락이 동일한 뿌리를 일부 공유하는 것이 사실이다. 쾌감을 느낄 때 주로 작용하는 물질로 도파민을 들 수 있는데, 이는 보상 회로(reward circuit)를 직접적으로 자극해 즉각적인 희열이나 성취감을 준다. 예를 들어,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쇼핑으로 멋진 물건을 샀을 때, 혹은 게임에서 승리를 거두었을 때 우리의 뇌는 “좋아, 이건 다시 해도 좋아!”라는 신호를 보낸다. 동시에, 조금 더 장기적이고 안정된 감정을 만들어내는 물질에는 세로토닌과 옥시토신, 엔도르핀 등이 있다. 세로토닌은 전반적인 기분과 정서를 관리해 평온하고 만족스러운 기분을 유지하도록 도와주고, 옥시토신은 애착과 신뢰, 유대감을 강화하여 대인관계 속에서 따뜻함을 느끼게 만든다. 엔도르핀은 통증을 줄여 주고, 심신의 안정을 도와 몸과 마음에 활력을 선사한다. 이처럼 쾌락과 행복은 비슷한 생물학적 자원을 쓰면서도, 도파민 주도의 즉각적 보상과 세로토닌·옥시토신·엔도르핀의 안정적 만족이 만들어내는 심리적 효과에서 차이가 난다.
게임을 예로 들어 보자. 대부분의 게임에는 패시브 스킬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패시브 스킬은 캐릭터가 별다
른 조작을 하지 않아도, 혹은 특정 조건이 충족되면 자동으로 발휘되어 지속적으로 이득을 준다. 체력을 서서히 회복시켜 준다거나, 공격력을 조금씩 높여 준다거나 하는 식으로, 눈에 보이는 화려한 이펙트는 없지만 캐릭터의 기본 체력을 꽤 높여 준다. 이런 패시브 스킬이 튼튼하면, 전투나 탐험 같은 다양한 상황에서 캐릭터가 쉽게 쓰러지지 않고 안정적으로 활약할 수 있다.
행복이 바로 그런 패시브 스킬과 닮아 있다. 어떤 외부적 자극이 없어도, “아, 나는 지금 인생에 만족스럽다”라는 편안한 기분이 깔려 있는 상태라면, 일상에서 벌어지는 많은 문제들에도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 이때 뇌에서는 세로토닌이 안정적으로 분비되어, 전반적으로 차분하면서도 긍정적인 심리 상태를 만들어낸다. 또한 사랑하는 사람, 친한 친구와 함께할 때, 혹은 공동체 안에서 소속감을 느낄 때 옥시토신이 활발히 작용하여 따뜻한 안정감과 연대감을 강화한다. 이렇듯 행복 상태가 지속적으로 유지되면, 마치 게임 속 패시브 스킬처럼 삶의 ‘기본 방어력’과 ‘체력 재생력’이 올라간다.
반면, 액티브 스킬은 사용자가 적극적으로 버튼을 눌러 발동해야 하고, 발동과 함께 시원하게 폭발적인 피해를 입히거나 강력한 효과를 즉시 가져온다. 다만 스킬을 사용하기 위해선 일정한 자원(마나, 에너지, 혹은 게임머니 등)을 소모해야 하고, 쿨타임도 기다려야 한다. 예컨대 롤이나 RPG 게임에서 강력한 궁극기를 쓰려면, 그 순간에는 상대방을 확실히 제압하고 시원함을 느낄 수 있지만, 다시 스킬을 사용하기까지는 일정한 시간이 필요하고, 무턱대고 남발하면 자원이 바닥나 오히려 곤란해지는 식이다.
쾌락도 그렇다. 맛있는 음식을 사 먹으려면 돈이 필요하고, 게임의 스릴을 즐기려면 시간을 투자해야 하며, 술·담배 같은 자극적인 쾌락 요소에는 건강과 중독 위험이라는 대가가 따른다. 그래서 쾌락은 “더 큰 자극, 더 새로운 경험”을 향해 달려가게 하는 경향이 있다. 예컨대 한 번 자극적인 맛을 느끼면, 그다음에는 더 강렬한 맛이나 더 특별한 레스토랑을 찾아다니기 쉽다. 도파민이 순간적으로 치솟았다가 금세 원점으로 돌아가는 속성이 있어서, 항상 이전보다 더 큰 보상을 갈망하는 구조에 빠지기 쉬운 것이다. 이는 게임에서 액티브 스킬을 난사한 뒤, 재사용 대기시간이 생기는 것과 비슷하다. 단기적으론 강력하지만, 자원 소모나 쿨타임이 길기 때문에 결국 계속해서 쾌락의 스킬을 누리려면 더 많은 대가를 치러야 한다.
예시를 들어 좀 더 구체화해 보자.
• 맛집 탐방: 맛집을 찾아다니면서 진짜 맛있는 음식을 먹고 나면, 그 순간은 엄청난 쾌감을 느낄 수 있다. 고급 레스토랑에서 근사한 스테이크를 먹을 때, 혹은 인스타에서 핫한 디저트를 맛볼 때 도파민이 쏟아져 나온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배부름이 사라지면, “이번엔 더 맛있는 걸 먹어볼까?” 하는 욕구가 자연스레 생긴다. 즉, 계속해서 식비가 필요하고, 새로운 정보 수집이나 원정에 드는 노력이 필연적으로 뒤따른다. 이는 쾌락의 액티브 스킬을 구동하기 위해 자원(돈, 시간)을 계속 소모하는 예라고 볼 수 있다.
• 운동 습관: 반면에 꾸준한 운동 습관을 들여 몸과 마음을 건강히 다지면, 몸속에 엔도르핀과 세로토닌이 안정적으로 나오면서 기본 행복도가 높아진다. 운동 초기에는 힘들고 귀찮을 수 있지만, 어느 순간이 지나면 오히려 “운동 안 하면 찝찝해” 하며 자연스럽게 몸이 움직이는 상태가 된다. 이건 패시브 스킬처럼 자리를 잡은 예다. 한 번 운동 습관이 잘 형성되면 매번 거창한 자극(예: 값비싼 헬스 장비나 특별한 퍼스널 트레이너 등)에 의존하지 않고도, 일상의 작은 운동만으로 꾸준히 기분 좋은 상태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쾌락을 추구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이 주는 공허함과 위험성도 인지한다. 맛집을 찾거나, 쇼핑을 하거나, 재미있는 게임을 즐기는 건 분명 짜릿한 쾌감을 준다. 그러나 이러한 액티브 스킬은 사용할 때마다 자원이 필요하고, 그 스킬의 효과가 끝난 뒤에는 다시 “이보다 더 큰 쾌락은 없을까?”를 갈망하게 되기 쉽다. 더군다나 무리하게 쾌락을 좇다 보면, 돈과 시간, 심지어 건강까지 잃어버리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
그와 달리 행복은 한 번 제대로 자리 잡으면, 굳이 새로운 대상이나 더 큰 자극이 없이도 일상에서 “그래, 정말 괜찮은 삶이야”라는 안도감을 제공한다. 누군가는 화려한 액티브 스킬로 순간적으로 반짝 빛날 수 있지만, 정작 내면의 패시브 스킬이 부실하면 일상의 작은 어려움에도 쉽게 무너질 수 있다. 반대로 패시브가 튼튼한 사람은 어느 정도 스트레스나 변화가 오더라도 스스로를 회복할 기반이 있기 때문에, 흔들리지 않고 삶의 만족감을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
물론 행복이라고 해서 전적으로 내면만으로 달성되는 것은 아니다. 경제적 안정, 사회적 관계, 건강 상태 등 다양한 외부적 요인이 우리의 행복감에 영향을 끼친다. “그렇다면 결국 행복도 쾌락처럼 외부 조건이 필요하니 비슷한 거 아니냐?”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중요한 차이가 존재한다. 쾌락은 ‘명확한 대상’을 통해 순간적 보상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한 반면, 행복은 “내가 가진 자원과 환경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어떤 태도로 살아가느냐”라는 관점에 훨씬 더 큰 무게가 실린다. 즉, 행복을 높이기 위해서는 단순히 돈을 많이 버는 것에 그치지 않고, 주변 사람들과의 따뜻한 유대나 스스로의 가치를 인정하는 심리적 태도가 핵심이다. 이런 내면적 태도야말로 결국 패시브 스킬을 강화하는 핵심 요소라고 할 수 있다.
결국 “행복과 쾌락 중 어느 하나만이 옳다”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게임에서도 패시브 스킬이 아무리 좋아도 액티브 스킬이 전혀 없는 캐릭터는 전투에서 제 힘을 발휘하기 어렵고, 액티브 스킬만 난무하다가 자원을 관리하지 못하면 쉽게 쓰러져버린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어느 정도의 쾌락은 삶에 활력을 주고, 짜릿한 동기가 되어 준다. 맛있는 음식을 맛보는 기쁨, 좋아하는 사람과 즐기는 취미 활동, 음악이나 예술을 통한 감각적 환희는 우리에게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하며, 때론 힘겨운 하루를 버틸 자양분이 된다.
하지만 이 모든 쾌락을 온전히 누리려면, 궁극적으로는 행복이라는 패시브 스킬이 안정적으로 깔려 있어야 한다. 내 안에 “내 삶은 나름대로 의미 있고 좋다”는 생각이 단단히 자리 잡고 있을 때, 쾌락의 스킬을 쓰고 나서 찾아오는 공허감이나 중독의 위험성을 훨씬 더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패시브가 강한 사람은 필요할 때 쾌락의 액티브 스킬을 적절히 발휘하는 자원 관리 능력도 뛰어나다.
그리고 행복의 패시브 스킬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훈련과 시간이 필요하다. 규칙적인 운동과 식습관, 명상이나 취미 활동 등은 우리 뇌에 지속적이고 긍정적인 자극을 주어, 세로토닌과 옥시토신의 공급이 안정적으로 이루어지게 돕는다. 또한, 자신을 사랑하고 타인을 아끼는 감정은 마치 패시브가 지속적으로 체력을 회복시켜 주는 것처럼, 우리의 ‘정신적 HP’를 점진적으로 채워 주는 역할을 한다.
게임에서 스킬을 배분할 때, 패시브와 액티브 중 어느 한쪽만 몰아서 투자하면 극단적인 플레이가 될 수 있다. 액티브만 잔뜩 찍으면 순간 폭발력은 크지만, 자원 관리가 힘들어 장기전에서 무너질 수 있고, 패시브만 잔뜩 올리면 전투 자체는 안정적이지만 큰 몬스터를 상대할 때 화력이 부족할 수 있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다. 짜릿한 액티브 스킬로 일시적인 재미를 놓치고 싶지 않은 동시에, 제대로 된 패시브를 갖추어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살고자 하는 마음이 공존한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지금 어디에 어느 정도 비중을 두어야 할까”를 스스로 결정하는 일이다. 쾌락을 완전히 배제하고 금욕적인 삶만을 택하는 것 역시 부자연스러울 수 있으며, 반대로 쾌락만을 추구하다 보면 행복이라는 더 깊은 만족과 안정감을 느끼지 못한 채 계속해서 공허한 사이클에 빠질 위험이 있다. 행복이라는 패시브를 단단히 다져 놓은 상태에서, 때때로 쾌락의 액티브 스킬을 시원하게 발동시키는 게 이상적인 조합일 것이다.
이렇게 보면, “행복은 패시브 스킬, 쾌락은 액티브 스킬”이라는 비유는 단지 재미있는 말장난이 아니다. 이 비유를 통해 우리는 쾌락이 주는 순간적 쾌감과 행복이 주는 장기적 만족이 어떻게 다른지, 그리고 둘이 어떻게 우리 삶에서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지를 좀 더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순간적 전율인 쾌락이 잘못된 것도 아니고, 오래 지속되는 행복이 무조건 지루한 것도 아니다. 다만, 그 둘을 균형 있게 배분해야 나라는 캐릭터가 건강하고 탄탄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그리고 그 삶 속에서 우리는, 필요할 때마다 스킬을 적절히 활용하며 더욱 풍요롭고 즐거운 게임판을 펼쳐 나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