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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나라는 별

사회라는 우주

by 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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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밤하늘을 바라볼 때면, 반짝이는 별들이 도무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게 된다. 그 수많은 별은 태초의 빅뱅 이후 생성된 물질들이 중력을 매개로 뭉치고 엉켜 탄생한 것들이다. 빛의 속도로 팽창하던 우주가 서서히 식어가면서 형성된 첫 세대의 별들은 다시 그 잔해를 흩뿌려, 다음 세대의 별과 행성을 만들어 내는 재료가 되었다. 그렇게 별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나름의 색과 빛을 뽐내며, 저마다의 운동 방식을 이어 간다. 같은 은하 안에 속한 별들은 초거대질량 블랙홀과 그 밖의 중력적 끌림에 의해 서로를 느끼고, 때로는 미묘하게 흩어지거나 모이기를 반복한다. 이처럼 우주 안에서 벌어지는 별들의 군무는, 장엄해 보이면서도 동시에 아주 질서 정연하게 유지된다.


생각해 보면,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도 별들과 다르지 않다는 인상을 받는다. 인간은 태어난 순간부터 어느 집단에 속하게 된다. 가정, 학교, 직장, 나아가 국가나 문화권 등 다양한 범위의 ‘은하’ 안에서 우리는 자라나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별들이 초기 단계에서 원시성이 되어 준비 과정을 거치듯, 우리 역시 유년기를 거쳐 스스로 에너지를 내뿜을 준비를 갖춘다. 그러다 성인이 되어 주계열성처럼 한창 빛을 발하는 시기를 맞이하게 된다. 그 빛은 예술, 학문, 사업, 혹은 가정에서의 헌신 등 다양하게 나타나지만, 결국 자기만의 광도를 통해 사회라는 은하에 작든 크든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별의 빛과 아주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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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들의 세계에서 때로는 슈퍼노바 폭발처럼 극적인 사건이 벌어진다. 주변을 환하게 밝히는 동시에 파편을 온 우주 공간에 뿌려놓는 이 장관은, 별이 생의 마지막을 뜨겁게 불태우는 모습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에서도 누군가는 갑작스러운 사건으로 강렬한 족적을 남기고, 그가 흩뿌린 사상이나 성과는 또 다른 이들에게 영감을 주며 새로운 형태로 이어진다. 반면, 조용히 수명을 다해 백색왜성으로 남는 별도 있다. 어쩌면 그것은 그저 서서히 빛을 잃어가는 이들이나, 어느덧 무대 뒤로 물러나 옛 빛을 간직한 채 조용히 살아가는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강력한 리더십을 갖춘 이들은 블랙홀처럼 주위 사람들을 당겨 큰 집단을 이끌기도 하고, 반대로 무수한 사건의 충돌 속에서 스스로 파편이 되어 사라지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별이든 사람이든, 한 번 존재한 이상 어떤 식으로든 흔적을 남긴다는 사실은 변치 않는다.


별들 사이에는 의외로 많은 우연한 충돌과 접촉이 벌어진다. 작은 소행성이 지나가며 표면에 상처를 내기도 하고, 두 개의 별이 근접 궤도에 들어서 서로의 중력에 의해 합쳐지기도 한다. 사람 사이도 마찬가지다. 관계가 부딪히고 깨어지면서 아픔이 생기고, 갈등 속에서 새로운 시너지가 창출되기도 한다. 회사에서, 학교에서, 가족 안에서, 다정하게 혹은 격렬하게 부딪히는 수많은 상황들이 결국에는 우리를 조금씩 변화시키며, 때론 전혀 다른 길로 접어들게 만들기도 한다. 그런 충돌과 교차가 없었다면, 사회는 매일 똑같은 얼굴만 반복하며 지루함과 무기력에 갇혔을 것이다. 별이 자신의 잔해로 또 다른 별이나 행성을 낳는 것처럼, 인간관계에서 생긴 파편과 상흔 또한 새로운 연결고리가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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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별들이 모인 은하는 지금도 우주 공간을 가르며 서로 점점 멀어진다. 현대 우주론에 따르면, 우주의 팽창이 계속되어 결국 ‘Big Freeze’라 불리는 종말이 찾아올 가능성이 제기된다. 모든 은하가 서로 멀어지고, 별과 별 사이가 너무 멀어져서 우주는 극도로 차가운 상태가 된다고 한다. 그때쯤이면 별은 거의 다 식어 별빛이 사그라지고, 각자의 고립 상태로 돌입해 더 이상 상호작용도 어려울지 모른다. 혹자는 이것이 마치 개인주의가 극대화된 사회의 미래를 떠올리게 한다고 말한다. 사람들 사이의 거리가 점점 멀어져, 모든 이가 서로에게서 단절된 채 오직 자기만의 공간에서 살아가는 모습은, 어쩌면 우주가 식어가는 광경과 닮아 있다.


하지만 별들이 완전히 식기 전까지는, 그리고 사회가 완전히 고립되기 전까지는, 여전히 교류와 영향이 존재한다. 작은 별빛이라도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는 분명한 의미를 지닌다. 어쩌면 인간 하나하나는 먼 우주의 별처럼, 누군가에게 아련하게나마 빛을 비춰주고 있는 건 아닐까. 그 빛은 때로는 희미하고 때로는 눈부실 만큼 강렬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타인에게 다다라 온기를 전한다. 그래서 우리는 애써 주변과의 관계를 이어가면서, 끊임없이 자기 빛을 찾아내려 노력하는지도 모른다.


결국 너와 나라는 별은 이렇게 사회라는 은하 속에서 태어나고, 서로 영향을 주며, 각자 나름의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 누군가는 빠르게 타올라 일찍 폭발하고, 누군가는 오래도록 조용히 빛을 내다가 자취를 감춘다. 그리고 그 잔해들은 다시 다음 세대의 기초가 되어 또 다른 형태의 별과 행성을 낳는다. 인간 삶도 이와 다르지 않아서, 내 오늘의 경험과 기억은 언젠가 다른 누군가의 출발점이 되기도 한다. 결국 우리는 서로를 거대한 시공간의 무대 속에서 발견하고, 잊고, 연결되며, 때로는 충돌을 겪는다. 그 모든 것을 겪어 낸 뒤, 천천히 식어가는 우주 끝자락까지 도달하게 될 때, 지금 내 작은 빛이 누구에게 닿았는지 떠올려 보는 일만큼 의미 있는 일은 없으리라. 그리고 그것이 비록 한 사람의 마음 한구석에서만 반짝였더라도, 그 별빛은 이미 충분히 우주적이라고 말해도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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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훈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소속 KAIST 직업 학생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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