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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을 수 없는 건 있을 수 없다.

강철의 연금술사와 진리

by 지훈
52C43982-10EC-4F95-A9A4-5822BB424D69_1_102_o.jpeg 강철의 연금술사

있을 수 없다는 말은 우리가 일상에서 무언가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때, 혹은 상상조차 하기 힘든 상황을 맞닥뜨렸을 때 자연스럽게 튀어나오는 표현이다. 말 그대로 “그럴 리가 없다”, “그건 불가능하다”는 뜻을 담고 있지만, 사실 이 문장을 곰곰이 파고들어 보면 꽤나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흔히, 과학적·합리적 사고를 통해 세상을 해석하려 한다. 실험과 논리를 쌓고, 통계와 수치를 통해 높은 확률로 일어나는 일 혹은 설명 가능한 일을 진리로 삼으려 애쓴다. 그렇게 쌓아 올린 지식이 바로 과학이고, 또 그 지식을 응용하는 것이 공학이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진리”라고 부르는 것은 아주 높은 확률로 참인 명제, 혹은 아직까지 반박되지 않는 이론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진리”는 절대불변이라기보다, 거듭된 검증 과정에서 “이제껏 틀린 적이 없는” 것으로 간주되는 편에 가깝다.


그런데도 우리는 일상에서 “있을 수 없다”라는 단언을 자주 쓴다. 이는 곧, ‘내가 인지하고 있는 세계관 안에서 이미 어떤 결론에 도달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무언가를 불가능하다고 확신하는 순간, 그 불가능성을 뒷받침해 줄 만한 기존 지식이나 체계가 이미 우리 안에 존재하는 것이다. 하지만 뒤집어 생각해 보면, “있을 수 없다”는 것은 동시에 “상상조차 해 본 적 없는 새로운 가능성”이 아직 남아 있음을 시사하기도 한다. 완강히 부정되는 그 영역에는, 어쩌면 지금의 세계관으로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 현상이나 사물이 숨어 있을 수도 있다.


흔히 말하듯, 세상은 우리의 확신을 종종 비웃곤 한다. “있을 수 없다고 여겼던” 현상이 눈앞에서 벌어질 때, 우리는 비로소 과거의 판단을 새롭게 뒤집게 된다. 이를테면, 역사적으로도 과학계가 “설마 그럴 리가 없다”라고 단정 지었던 것들이 훗날 다른 데이터나 이론에 의해 정정된 사례는 셀 수 없이 많다.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돈다고 굳게 믿었던 시대를 지나, 결국 우리는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결코 있(을 수 없)다”라고 생각하던 것들이 새로운 관찰과 이론에 의해 전면 수정되는 과정, 그 자체가 과학 발전의 역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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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정말 확실한 진리가 있을까?’ 하는 의문도 자연스럽게 생긴다. 우리가 흔히 진리라고 말하는 것은, 사실 끊임없이 성장하고 변화하는 지식 체계 내에서 잠정적으로 정립된 일종의 현재까지 가장 안정적인 결론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므로 절대 틀리지 않을 것 같은 공식과 법칙도, 새로운 증거가 나타나면 결국 수정될 수 있다. 이는 무언가를 100% 확정 지을 수 있다는 욕망—마치 절대자가 되고 싶은 인간의 본능—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드러낸다. 과학이나 공학은 이 간극을 좁히려는 과정에서 생겨난, 우리 종(種)의 고유한 도전이라 할 수 있다.


“있을 수 없다”는 표현은, 그래서 흥미롭게도 이중적인 의미를 지닌다. 한편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강력한 부정을 담고 있으면서도, 그 부정이 확고해질수록 ‘새로운 가능성’을 더 깊이 감춘 아이러니가 형성된다. 인간은 끊임없이 안정된 세계를 추구하려는 본능을 갖는 동시에, 그 세계를 뒤흔드는 미지의 영역에 대한 호기심도 함께 품고 산다. 안정과 모험, 보수와 혁신이라는 양극단을 동시에 긍정하기에, 우리는 “있을 수 없다”는 말을 되풀이하면서도, 정작 어떤 날에는 그 말이 깨지는 순간을 은근히 기대하기도 한다.


결국 이런 모순된 모습이야말로, 인간이라는 존재가 지니는 독특한 특성 같다. “있을 수 없다”라고 선언하면서도, 막상 그 불가능이 가능으로 바뀌는 순간이 찾아오면 거기에 매료되어 또 다른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식이다. 때로는 믿고 싶지 않은 진실에 대해 “있을 수 없어!” 하고 눈을 감아버리지만, 또 한편으로는 “정말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과 호기심에 끌리는 부조리함을 보여주기도 한다.


결국 다시 한번 생각해 보면, “있을 수 없다”는 말은 단순한 부정문을 넘어 존재함과 존재하지 않음을 동시에 품고 있는 문장이다. 우리의 지식이나 관점이 확대되면, 언젠가는 그 없음이 있음으로 뒤바뀔지도 모르는 일이고, 반대로 확실한 증거가 없어져 그 있음이 다시없음으로 판명될 수도 있다. 이러한 인식 전환은 우리가 내리는 모든 판단이 결코 절대적이지 않음을 일깨운다.


인간이기 때문에 우리는 완벽한 확실성을 추구하면서도 동시에 완벽한 불확실성을 깨닫는다. 삶에서 수많은 “있을 수 없다”들을 만나고, 혹은 우리가 “있을 수 없다”라고 부정해 온 것들을 깨뜨리는 순간들을 통해, 우리는 새로운 국면으로 나아간다. 이 아이러니가 바로 인간의 운명이자, 지식이 발전하는 원동력일 것이다.


결국 “있을 수 없는 것은 있을 수 없다”라고 말함으로써 안정을 찾으려는 마음과, 오히려 그 있을 수 없음을 증명해 보고자 하는 호기심이 공존하는 삶을 사는 존재가 바로 우리 인간이다. 그리고 이 양극단의 특성을 동시에 지니기에, 우리는 끊임없이 과거의 인식과 미래의 가능성 사이에서 진동하며, 자기 세계를 확장해 나간다. 그런 의미에서 “있을 수 없다”라는 문장은, 동시에 “새로운 수많은 가능성이 잠재되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내포한 가장 역설적인 표현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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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훈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소속 KAIST 직업 학생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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