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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 Happiness?

언어의 함정

by 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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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초등학교 시절부터 늘 궁금했던 주제가 있다. 우리가 외국어 단어들을 번역해서 사용하는 이 과정은 누가, 어떻게 정의 내린 것이며, 왜 그것이 일반론적인 기준으로 굳어졌을까? 흔히 영어로 Happy를 행복한, Sad를 슬픈 이라 배운다. 물론 외국인이 “I am happy”라고 말했을 때, 그 뉘앙스가 우리의 “나 행복해”와 유사하다는 추정하에 그렇게 해석해 온 것이 맞다. 하지만 과연 이 둘이 감정의 결을 모두 똑같이 담고 있을까, 세세한 뉘앙스조차 완벽히 일치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예를 들어, 우리가 뜨끈한 국물을 마시거나 온탕에 들어갔을 때 “시원하다”라고 표현하는 건, 한국인이라면 당연히 수긍하지만 외국인의 관점에서는 의아하기만 하다. 따뜻하거나 뜨거워야 할 상황에서 왜 하필 “Cool”과 반대되는 맥락의 표현이 등장하느냐는 것이다. 비슷하게, 영어 표현 “I’m sorry”는 미안함을 나타낼 때만 아니라 내가 직접 잘못하지 않았어도 상대방에게 유감을 표하는 상황에도 쓰인다. 이것 역시 모국어 화자가 아닌 사람에게는 종종 혼란을 줄 수 있다.


결국 우리가 쓰는 단어나 표현이 특정 문화와 전통, 그리고 그 언어를 쓰는 사람들의 역사적인 경험 속에서 형성된 것이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단순히 사전에 있는 뜻만으로 정확히 치환해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한자 문화권 안에서 관습과 전통을 쌓아온 우리가, 전혀 다른 문화권에서 태어나고 발전된 언어를 ‘무리하게’ 매칭해 쓰고 있지는 않은가—이런 의문이 드는 것이다.


한국어의 드립이나 삼행시, 언어유희가 번역 과정에서 전혀 살지 못하고 그대로 무너지는 모습을 우리는 종종 아쉬워한다. 마찬가지로, 해외 영화나 문학, 시 등을 원문이 아닌 번역본으로만 접한다면, 창작자가 담아낸 미묘한 뉘앙스나 의도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오히려 이를 잘못 해석하거나 오해하는 상황까지 발생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문화적·언어적 차이를 어디까지 줄일 수 있을까? 사실 오늘날 단순한 ‘소통’을 목표로 한다면, AI 번역 기술로도 이미 상당 부분이 충족된다. 효율성과 간편성 측면에서 기계 번역은 나날이 발전하고 있으며, 간단한 의사소통 정도라면 무리가 없을 정도로 놀라운 수준에 이르렀다. 하지만 과연 ‘문화권을 이해하고, 나 자신의 세계관과 시야를 넓히기’ 위해서는 이것만으로 충분할까?


결론적으로, 언어라는 것은 단순한 의미 전달 수단을 넘어, 그 사회와 문화가 오랫동안 쌓아온 사고방식과 감정표현 방식의 집약체라고 할 수 있다. “행복”과 “Happiness”를 구분 짓는 경계가 혹은 “시원하다”라는 표현의 이중성을 설명할 수 있는 힘은, 결국 그 언어를 둘러싼 문화적 배경에서 나온다.


이렇듯 ‘언어=문화’라는 관점에서 볼 때, 진정으로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려면 어느 정도 시간을 들여 직접 언어를 습득하고, 언중들이 실제 대화 속에서 어떻게 단어를 쓰는지 귀 기울여야 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야만 우리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문화적 배경과 그들이 느끼는 정서를 생생하게 맛볼 수 있다.


정리하자면, “행복 = Happiness?”라는 질문은 단순히 단어 하나의 번역 문제를 넘어선다. 이 의문에는 ‘언어와 문화가 서로 얼마나 깊게 얽혀 있는가’, 그리고 ‘우리가 번역이나 해석을 통해 진짜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어디까지인가’ 같은 본질적인 고민이 함께 담겨 있다. 어느 수준까지 의사소통이 필요하다면 기계번역으로도 충분하겠지만, 정말로 그 나라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삶의 맥락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언어를 배우고 문화에 뛰어드는 수고를 아끼지 않아야 한다.


어릴 적부터 “행복이 정말 Happy와 같은 느낌일까?”라고 떠올렸던 의문이, 이제는 언어와 문화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에 대한 관심으로 확장된 셈이다. 언젠가 우리가 외국어를 배우고, 또 누군가가 우리말을 배울 때, 서로가 각자의 행복을 온전히 이해하게 될 날이 올까? 그날을 위해, 우리는 지금도 꾸준히 언어를 배우고, 번역을 하고, 또 문화를 나누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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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훈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소속 KAIST 직업 학생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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