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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적.

짜릿한 깨어있음

by 지훈

낭만이란 무엇인가?


낭만을 떠올릴 때면 문득 머릿속에 겹쳐지는 장면들이 있다. 한여름 밤, 푸른 잔디밭에 누워 별이 빼곡한 하늘을 바라보는 사람들, 혹은 겨울 새벽 어슴푸레한 등불 아래에서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주하고 잔잔한 수다를 나누는 모습. 이 모든 이미지는, 왠지 모를 설렘과 달콤한 여유를 동시에 자아내며 그 순간만큼은 세상이 조금 더 넓고 아름답게 느껴진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그래서 우리는 그 감정을 '낭만적이다'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막상 "낭만이란 무엇인가?"라고 물으면, 막연하게만 떠오르는 이 감각을 딱 잘라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800px-Caspar_David_Friedrich_-_Wanderer_above_the_Sea_of_Fog.jpeg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 -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


역사적으로 낭만의 어원을 살펴보면, 중세 유럽 시절 속 라틴어(Romance)에서 형성된 이야기 전승과 문학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사랑과 모험, 무용담 등이 주로 다루어졌던 로맨스가 발전하면서, 이는 훗날 낭만주의(Romanticism) 사조와 연결되기도 했다. 그 흐름을 따라가 보면 낭만이 곧 사랑의 열정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는 결론에 이른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부르는 낭만은 그저 연인 간의 달콤한 감정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누군가는 낭만을 대담한 여행이나 일탈에서 찾고, 또 누군가는 일상 속 작은 사치와 여유에서 발견한다. 어떤 이는 줄곧 연애 감정으로만 낭만을 얘기하는가 하면, 다른 이는 주변 환경을 깊이 사랑하는 태도에서 낭만을 느낀다.


결국 낭만은, 현실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고 내가 진정 좋아하고 아끼는 것에 집중할 수 있는 태도이거나 상태라 볼 수 있다. 그래서 낭만 이야기를 할 때면 사랑이 함께 오르내리는 것이 자연스럽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평소라면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 무언가를 해 보게 되거나, 마음 깊은 곳에서 신선한 감각이 샘솟는 걸 느끼기 때문이다. 낯선 도시 골목길을 헤매는 모험이든, 고요한 서재에서 혼자만의 창작 활동에 몰두하는 경험이든, 혹은 바쁜 일상 한가운데서 문득 창밖 풍경에 매료되는 순간이든, 우리는 그 대상과 하나가 되는 감각을 통해 "낭만적이네"라고 스스로 말한다.


문제는 이 낭만이라는 것이 쉽게 유지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직장 생활이나 학업, 경제적 조건, 사회적 책임 같은 현실의 크고 작은 부담들 앞에서 낭만은 곧잘 비생산적인 것으로 취급되기 십상이다. 예컨대, 늦은 밤 충동적으로 떠나고 싶어진 여행 계획이 "이 시점에 여행을 떠날 순 없으니 포기해야지"라는 생각에 부딪혀 취소되고, 혹은 도무지 수익이 안 나더라도 하루쯤은 마음껏 하고 싶은 일을 해 보고 싶다는 열망이 "너 그런 사치 부리면 어떡해?"라는 주변의 현실적인 시선에 꺾일 때가 있다. 그렇다고 낭만을 아예 배제하고 살면 인생이 너무 팍팍해져 메말라 버린다. 완벽한 현실 중심의 태도만으로는 얻기 힘든 깊고 부드러운 감정의 울림을 잃어버린다고 할까.


이 지점에서 중요한 건, 낭만이 결국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가능하느냐가 아니라, 낭만을 통해 내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가를 알아차리는 것이다. 과거에는 단순히 더 나은 나가 되는 게 목표였다면, 이제는 더 나은지 아닌지를 따지기 전에, 나는 지금 어떤 색깔로 달라지고 있나?를 스스로에게 묻는 과정이 낭만의 핵심이 되어간다. 예컨대, 예전에는 관심조차 없었던 꽃 한 송이에 눈길이 가고, 크고 멀게만 느껴지던 일탈의 꿈을 조금씩 현실로 끌어들이려 노력하는 내 모습을 볼 때, "아, 내가 이렇게도 변할 수 있구나" 하고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 변화가 기적처럼 순식간에 멋진 결과를 낳지는 않더라도, 그런 변화를 느끼는 순간 자체가 결국 내가 이 세계를 얼마나 좋아하고 있는지, 그리고 나를 얼마나 소중하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보여 준다. 낭만이라는 것이 내게 필요한 이유는, 그 인식의 과정을 자연스럽게 이어 가도록 돕기 때문이다.


Caspar_David_Friedrich_-_Man_and_Woman_Contemplating_the_Moon_-_WGA08271.jpg 달을 사색하는 남녀 -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

그 변화가 누군가에게는 사랑이라는 결실로 이어질 수 있다. 소중한 사람과의 관계일 수도 있고, 가족이나 친구와의 유대일 수도 있으며, 아예 사람과 상관없는 환경이나 사물, 혹은 취미에 대한 깊은 애정일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이 낭만의 시간이 쌓이고 쌓이다 보면 결국 누구나 사랑이란 게 꼭 남녀 간의 로맨스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지닌 애정과 마음의 결이 더 폭넓은 의미라고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그때, 작은 것에서 큰 것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랑을 체득하게 되고, 그 사랑을 통해 또 다른 변화를 맞이한다. 결국 우스워 보일 수도 있고 때론 멋져 보이기도 하는 내 여러 가지 모습을 허용하고, 보듬고, 스스로 즐거워하는 태도는 어찌 보면 내가 사랑하며 살고 있다는 암시가 된다.


낭만은 사랑이자, 나 자신을 사랑하는 길이라는 표현은 그런 점에서 타당해 보인다. 어떤 환경이나 사람, 혹은 경험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면, 나는 자연스레 "아, 내가 이런 걸 좋아하는 사람이구나"라고 깨닫는다. 그것이 누군가와의 연애일 수도, 열정적으로 몰두하는 취미일 수도, 아니면 취미나 일과는 전혀 다른 형태의 무언가일 수도 있다. 중요한 건, 그 대상과 내가 맞닿는 지점에서 새로운 감각과 사고방식, 그리고 살아 있음을 느끼게 된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그 짜릿한 깨어 있음을 두고 낭만이라 부르곤 한다.


이렇게 보면 낭만은 그저 달콤한 판타지가 아니라, 삶 속에서 내가 끊임없이 다른 모습으로 변할 수 있음을 기꺼이 인정하고 즐기는 일에 가깝다. 우리의 삶을 소소하게나마 풍요롭게 만들어 주는 무수한 순간들이 낭만의 영역에 속해 있으며, 그 순간들을 통해 "이 세상에 나를 던져 보겠다."는 의욕과 동시에, 작지만 불안한 떨림까지도 감싸 안는 것이 낭만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그 과정에서 현실과 부딪히는 갈등은 피할 수 없지만, 낭만이 전혀 없는 삶 역시 회색빛 터널 속을 지나는 듯 무미건조할 가능성이 크다. 사람들은 이 둘을 적절히 조합해 자신만의 루틴과 방식을 만들어 가고, 그 사이사이에 번쩍이는 낭만의 순간이 끼어들었을 때 비로소 인생의 즐거움을 찾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이 곧 “내가 지금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가”를 자각하게 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단지 더 나은 내가 되려고 애쓰는 것만이 아니라, 시시각각 변화하는 내 마음과 모습을 한 걸음 뒤에서 발견하고, 그 감각을 즐기는 것이다.


결국 낭만이란, 내가 이 세계를 좋아하고 아낀다는 마음을 원동력 삼아 조금씩 달라지고 있는 스스로의 모습을 헤아리게 만드는 힘이다. 사랑이라는 말이 반드시 연애나 특정 감정에만 국한되지 않고, 보다 넓은 개념으로 확장될 수 있듯이, 낭만도 우리 일상 곳곳에서 새로운 색채와 감각을 선사한다. 그 순간이 쌓이고 쌓여 어떤 결실을 맺을 때, 우리는 결국 낭만은 사랑이었고, 사랑은 나의 원동력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렇게 우습고도 대단한 내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조용히 미소 짓는 태도가 곧 낭만을 지속시키는 또 하나의 열쇠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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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훈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소속 KAIST 직업 학생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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